그러면 안된다는걸 아는데도 아이를 돌볼 때 자꾸 짜증이 나요. 나는 나쁜 엄마일까요? [이정민의 ‘내 마음의 건강검진’⑲]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4.10.02 10:53
수정 2024.10.02 10:53

아동심리상담센터에는 많은 자녀가 각자 다른 이유로 찾아오지만, 모든 보호자에게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과거 산후우울증이 있었나’에 대한 여부이다. 산후우울증을 경험했는가, 그리고 그 시기를 건강하게 보냈는가는 생각보다 가족 모두에게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과거 산후우울증 시기를 건강하게 지내지 못할 경우, 현재는 비교적 나아졌다고 해도 상당한 무력감과 감정기복이 남아있는 어머니들이 많다. 그리고 보호자의 만성적인 우울은 자녀의 정서 발달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부부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때문에 보호자의 정신건강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생각보다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심리검사 및 심리상담은 보호자의 안정적인 정신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아래 사례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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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가상의 사례입니다)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아는데도 아이를 돌볼 때 자꾸만 짜증이 나요. 나는 나쁜 엄마일까요?


A씨는 30대 초반에 아들을 출산하여 현재는 28개월이 되었다. 다른 엄마들은 이 시기쯤 되면 자녀가 너무 예뻐서 둘째 생각이 나기도 한다는데 A씨는 왜 이렇게 여전히 힘들고 짜증만 나는지 모르겠다. 물론 엄마를 바라보고 눈을 빛내며 품에 안겨오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충만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몸은 너무 힘든데 해야 할 일은 너무 많고, 아이는 절대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때문에 매일 피곤하고, 조급하고, 짜증이 난다. 그렇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아이에게 짜증내듯 화를 내는 일도 있다. 그러고 나면 죄책감이 밀려오고, 이도 저도 잘 해내지 못하는 것 같아 무기력해진다.


생각해 보면, 아이를 출산한 후 현재까지 여유가 없었다. 출산 후 1년은 그냥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자주 울었다. 하지만 남편은 너무 바빠서 자기 건강도 돌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지방에 사는 시댁과 친정은 육아를 도와주기 어려웠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돌볼 새 없이 육아에 정신없이 임했다. 지금이야 그때보다는 많이 여유로워진 편이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짜증이나 감정기복은 이제 내 성격이 된 것만 같다. 1년 전 복직한 후에는 더 버거워져서, 일은 일대로 힘들고 육아는 육아대로 힘들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


A의 성향 및 현재 마음상태 등을 알아보기 위해 종합정서검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검사결과: ‘예측, 통제 가능한’ 상황을 선호하는 기질.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A씨를 힘들게 했을 수 있음. 현재는 우울증에 대한 치료가 필요.


기질 및 성격검사(TCI) 결과, A씨는 신중하고 꼼꼼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기 때문에 실수가 적지만 임기응변에는 능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A씨는 정서적 예민성이 높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문제를 미리 경험하지 않게끔 통제하는 것에는 능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험하는 자신의 긴장을 돌보는 것은 익숙하지 않을 것으로 고려된다. 또한 A씨는 자녀 등 주변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일에도 미숙할 것으로 시사된다. 적절한 생활태도를 갖게끔 교육하는 건 가능하지만, 자녀가 미숙한 행동을 보였던 이유나 행동의 의도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리고 A씨는 우울증 진단이 내려졌다. 출산 후 산후우울증을 경험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것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채 현재까지 이어져서 일정 수준 이상의 우울감이 지속되는 모습이다. 그리고 현재는 우울감이 일상 전반에 만연해있다 보니 비교적 평화로운 상황에서도 만족감이나 안정감만을 뚜렷하게 누리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그보다는 이후에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면서 ‘버겁다’고 여기거나, ‘언제 어디서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긴장만을 경험했을 수 있겠다.


검사자 제안 : ‘돌발 상황에 쉽게 당황하고 우왕좌왕 하는 나’를 이해하고 돌봐주세요.

A씨는 현재 우울증으로 인해 자책감이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앞으로도 잘 키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만연해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A씨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잘 키우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쉽게 당황하고 지치는 나를 다독이는 법’을 익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양육인데, A씨는 기질적으로 이런 상황에 매우 취약하다. 남들보다 피로감이 배로 쌓일 수밖에 없고, 대처는 더욱 미숙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지금 내가 원래 잘 못하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 ‘이 기질에 이 정도 하는 것만해도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 것’임을 스스로 알아주고 다독여준다면, 정신적 피로감이 덜 쌓일 수 있다. 또한 나의 미숙한 면을 인정해주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양육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당황하는 나’ 또한 예측가능한 부분이 되기 때문에 비교적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현재 마음상태 상 혼자 힘으로 이렇게 스스로를 도닥이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때문에 우울증에 대한 약물치료 개입 및 상담 치료 개입을 권한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의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감당하고 나아가는 것을 볼 때, 아이와 가족들 또한 함께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민 임상심리사 ljmin09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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