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서에 대형견 끌고 와 소란 펴도 무죄?…"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했어야" [디케의 눈물 291]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입력 2024.09.24 05:04 수정 2024.09.24 05:04

피고인, 관공서에 대형견 데려가 20분간 소란 피운 혐의…재판부 "주취 상태 증명 어려워"

법조계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 가능한 사안…1심, 공판검사에 공소장 변경 요구 했어야"

"공무원에 욕설 했기에 2심서 '협박죄' 성립도 가능…5년 이하 징역·1000만원 이하 벌금"

"관공서 내 심각한 소란 행위 '음주 상태' 아니어도 처벌해야…법 개정 고려할 필요 있어"

ⓒ게티이미지뱅크

관공서에 대형견을 끌고 와 공무원에게 욕설하며 20분 간 소란을 피운 60대가 약식 명령에 불복한 정식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기소된 죄명인 경범죄 처벌법 위반 입증을 위한 '주취 상태'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법조계에서는 경범죄처벌법이 아닌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했어야 하는 사안이라며 1심 재판부가 검사 측에 공소장 변경 요구를 하거나 직권으로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한 유죄 판결하는 것이 사회적 준법의식에 부합하다고 지적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1단독 김도형 부장판사는 최근 경범죄 처벌법 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된 A(64)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월 26일 원주시의 한 행정복지센터에 자신이 키우는 대형 개를 데리고 들어가 '지방공무원이 갑질한다'며 큰 소리로 욕설하는 등 20분간 소란을 피운 혐의로 약식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벌금 60만원에 약식 기소된 것에 불복해 지난 6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A씨가 행정복지센터에서 공무원들에게 욕설하고 개를 끌고 들어와서 소란을 피운 행위는 현장 CCTV 영상과 진술 등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A씨에 무죄를 선고했다. 기소된 죄명인 경범죄 처벌법 위반으로 처벌하려면 술에 취한 채로 이 같은 행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경찰의 사건 발생 검거보고서에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는 A씨를 현행범 체포했다'고 기재됐지만, A씨가 술에 취해 있었다거나 '술주정'을 한 것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원.ⓒ데일리안

판사 출신 문유진 변호사(판심 법무법인)는 "형법상 경범죄처벌법은 중한 범죄는 아니지만, 술에 취한 상태라는 요건을 추가함으로써 공무집행방해에 이르지 않더라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하는 소란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규정이다"라며 "만약 피고인의 행위가 공무집행방해에 이를 정도라면 경범죄처벌법이 아닌 형법상 공무집행방해로 처벌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이어 "본안에서 피고인은 큰 개를 끌고와 20분간 욕설까지 했으므로, 경범죄처벌법이 아닌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1심 재판부는 경범죄처벌법에 대한 무죄를 선고하는 것에서 나아가 공판검사에게 공소장변경요구를 하거나 직권으로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한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이 사회적 준법의식에 더 부합하는 판결이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채희상 변호사(법무법인 대운)는 "만약 검찰이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음주 상태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면 원심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검찰이 공소사실을 예비적으로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변경하면 형법 제136조의 공무집행방해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며 "큰 개를 끌고와 공무원에게 욕설을 하고 소란을 피운 행위는 공무원이 공포심과 두려움을 느끼는 해악의 고지로 협박이 될 수 있으므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나아가 공무원들에게 욕설을 했다면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행 경범죄 처벌법은 '술에 취한 상태'를 요건으로 하고 있어, 이를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 처벌의 공백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니더라도 관공서에서 심각한 소란을 피우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며 "경찰 역시 현장에서 음주 측정이나 주취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남기는 등 증거 수집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경범죄 처벌법상의 술에 취한 상태의 입증이 곤란한 경우,공무집행방해죄나 모욕죄, 업무방해죄 등 다른 형법 규정을 적용해 처벌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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