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할 바다는?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4.09.21 04:04
수정 2024.09.21 04:04

윤석열에 내년도 의대 증원 취소나 대폭 축소 압박해야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거부 ‘정치 의사’들은 빼고….

환자, 의료 개혁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한 의사 단체들

‘버티면 이긴다’라는 의사들과의 씨름은 시간 낭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콘래드서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데일리안 창간 20주년 SUPER SHOW'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의사들이 너무 뻣뻣하다.


정확히 말하면, 의사들이 아니고 의사들을 대표한다는 의협과 전공의 비대위 간부들이다. 이 간부들이 의사들과 전공의들을 얼마나 대표하고 있는지도 사실 불분명하다.


의사 관련 단체 대표들이 막무가내다. 도대체 대화할 생각이 없다. 무조건 백지화하라는 것이다. 환자나 의료 개혁보다 자기들 자존심이 더 중요해 보인다. ‘버티면 이긴다’라는 확신에 차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겐 의료 개혁 추진 직전의 의료 현실이 최선이었나?


그렇지 않다.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의대 정원이 단 1명이라도 많거나 적어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증감 필요 숫자를 적시한 적이 없다. 의사 수 늘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통령 윤석열과 보건복지부 차관 박민수 등이 강경하게 주장한 2000명 증원 숫자가 ‘과학’은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주먹구구 정도는 아니었더라도 우격다짐에 가까웠다.


하지만 정부가 밀어붙인 숫자에 흠이 있다고 해서 의사들이 정당성을 바로 얻는 건 아니다. 반대만 했지, 자기들 주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내놓으라고 하면 말이 없어진다. 그러면서 정치적인 수사(修辭)로만 대응한다.


그들은 말로는 정치인 이상이다. 전직 의협 회장 한 사람 왈,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라고 했다. 이 말이 이번 정부가 쓸데없는 오기, 즉 “우리는 의사를 이길 수 있다”라는 투지를 불태우며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이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악화시킨 한마디였다.


그 전직 회장보다 더 정치적(투사적)이고 거친 현직 의협 회장이 급기야 “의협 손에 국회 20~30개 의석이 결정된다”라고 총선 전에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집권 여당 총선 대패는 실제로 의정 갈등이 이바지한 바가 상당히 컸다.


그는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난 이후, 여당에는 물론 야당에도 마음을 전혀 주지 않는 고난도 플레이하고 있다. 몸값 불리는 요령을 훤히 꿰뚫고 있는 프로다.


오직 정부하고만 싸운다. 그들 눈에 보건복지부 장·차관 정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니 ‘정부’는 곧 ‘윤석열 대통령’이다.


“정부가 전공의들을, 이 땅의 모든 의사를 노예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전문가로서 존중할 때까지 싸우겠다. 정부는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고 사직한 전공의들을 도망간 노예 취급하며 다시 잡아다 강제노동시키겠다고 하고 있다.”

의협 의사들만 이렇게 투사가 된 게 아니다. 아직 의사가 되지 않은, 배우는 단계의 전공의(수련의) 대표도 반 정치인이다.


자기들의 상위 단체라 할 의협 회장에게 자진 사퇴를 요구하면서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끌어내려야 한다”라고 위협했다. 의대 아닌 공대-의전원 출신 전공의로서 대통령도 만나고 여당 대표도 만나니 의협 회장 같은 사람은 간단히 무시한다.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이 이런 사람들을 협의체에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는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돼 수사만 해 온 사람이다.


운동권 투사들을 상대해 본 적이 없다. 운동권과 사고나 행동이 비슷한 정치인들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이 방면의 백면서생(白面書生)이다. 그가 운동권 뺨치는 전공의 대표에게 한 방 제대로 먹었다.


그의 대변인이 당 대표의 고군분투를 강조하면서 “거의 읍소 수준으로 협상장에 돌아올 것을 요청드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쉽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라고 하자 발끈한 것이다.


“읍소는커녕, 단 한 번 비공개 만남 이후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한동훈 당 대표와 소통한 적 없다. 거짓과 날조 위에 신뢰를 쌓을 수는 없다.”

대표가 되기 전엔 명함도 없고 권한도 없는 처지라 못 만났고, 이번에 급해졌을 때는 대변인들이 전화해도 안 받았던 그가 불통 탓을 순진한 한동훈에게 돌렸다.


한동훈이 ‘정치 의사’들을 이번에 만나고 다니며 협의체 참여를 설득하는 건 좋은 공부와 경험은 될 것이나 시간 낭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 의사들은 빼고 가는 게 더 낫다. 그들은 확실한 명분, 즉 선불(先拂)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 선불이란 당장 내년도 의대 증원 취소 또는 대폭 축소다. 학부모들 반발 같은 건 대통령이 하려고만 한다면 해결책이 꼭 없다고만 할 수 없다.


한동훈은 한 방송의 음악 주제 프로그램에 나와 비틀즈 멤버들 대화를 소개하며 자기 자신도 그럴 결심이 서 있다고 했다.


“세상이 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나라와 국민이 잘됐으면 좋겠다. 그걸 위해 절벽에 뛰어내려야 할 상황이 되면 주저하지 않고 뛰어내릴 것이다.”

그가 뛰어내릴 곳은 그냥 바다가 아닌 윤석열의 바다다. 대통령이 이 중차대한, 본인 자신과 나라의 위기 국면에서 결심하도록 압박하는 것만이 알렉산더의 매듭을 푸는 길이다.

글/ 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