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의료 대란으로 모든 걸 잃고 있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4.09.09 07:07
수정 2024.09.09 09:08

아집에 열등의식, 소영웅주의, 빗나간 승부욕, 밴댕이 속까지

이쯤 해서 본인은 빠지고 한동훈에 해결사 역 맡기는 게….

의정과 윤한 갈등 동시에 해결하는 일석이조 효과

어차피 실패한 것, 깨끗이 엎어 버려야 길이 보인다

응급실 파행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지도자가 추진하는 야심작이 실패하면 그것만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그릇도 산산조각이 나기 쉽다. 인격, 인품, 인간성이 한꺼번에 노출돼 받지 않아도 될 감점을 무더기로 받게 된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면서 무리한 역전극을 노리다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비위 맞추는 아첨꾼 부하만 가까이하고 간언하는 소신파에 분노하고 핍박하는 좁은 속을 보인다.


윤석열이 지금 딱 그런 모습 아닌가? 고집불통에 이과 수재들인 의사들에 대한 이상한, 불필요한 열등의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정 지지율 10%대 추락이 시간문제다.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서울대 의대 출신들보다 못하다는 말을 아무도 그에게 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의료 개혁’ 추진 전반기에 이런 유치한 반감, 적대 의식, 또는 소영웅주의(과거 대통령들은 못 했는데 나는 한다)의 발로라고밖에 해석되지 않는 엉뚱한 우선순위와 비뚤어진 승부욕을 보였다.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 의사 수를 늘려야만 대한민국 의료 문제가 해결되고 의료 개혁이 완성된다는 식이었다. 그것도 중차대한 총선 전략으로…. 처음엔 다수 국민이 공감하고 지지를 보냈다. 약 80% 지지율이었다.


응급실 등 필수 의료 전문의가 부족하고 지역보다 서울 수도권에 의사들이 몰려 있는 걸 의사 부족으로 본 탓이다.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의대 정원만 늘리면 10년 후부터 매년 피부과가 2000개씩 생길 것”이라는 서울대 의대 출신 안철수의 말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윤석열과 박민수(보건부 2차관)의 밀어붙이기로 내년도 증원이 확정되자 값싸고 질 좋은 이 나라 의료 시스템을 지탱시키고 있던 전공의(수련의)들이 다 나갔다. 온갖 협박과 회유책에도 꿈쩍 않는다. 전문의(숙련의)들은 지쳐 가고 있다. 사직, 이직, 병가 대열이 장사진을 이룬다.


응급실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가자 왕고집 윤석열과 부하 관료들은 전가의 보도를 들었다. 군의관-공보의 동원…. 진료 지원(PA) 간호사 제도 도입 계획도 발표했다.


이 대목에서 윤석열 정부의 바닥이 드러난다. 지금이 유신, 5공인가? 버스 파업하면 군 트럭 동원하는 식으로 의사들을 군의관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본 대통령과 보건부 관료들에게 한숨도 안 나온다.


이런 사람들이 서울대를 나왔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인문계 공부나 좀 잘한 수준들이다. 군의관이란 대개 전공의 수련 정도 마친, 아직 의사 일을 제대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실상 무면허 운전자(의사)들이다.


중증 치료나 수술은 손도 못 댄다. 전문 병원으로의 후송 조치가 그들이 하는 일이다. 위에서 가라고 하니 이대목동병원 등지로 파견 나와 봤다가 할 수 있는 일도 마땅치 않고 의료사고 책임 문제도 있어서 돌아가고 있다. 이 판에 보건부는 근무 거부 군의관들 징계를 검토하다 철회하고 “자빠졌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의 한계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불쑥 의대 증원 2000명을 신이 내린 절대적 강령처럼 받들고 선무당이 사람 잡은 것이다.


그나마 2000은 이미 1500으로 내려가 내년 증원 분으로 수정돼 있다. 2026년 증원 숫자는 다시 논의하는 쪽으로 변했다. 한동훈의 유예안이 그나마 물꼬를 텄다.


문제는 내년도, 2025년 증원 숫자다. 의협과 전공의들의 요구는 이걸 백지화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대입 수시 모집이 시작돼 늦었다는 태도다. 의협이 단 한 문장으로 물었다.


“2025년 의대 정원 원점 재논의가 불가한 이유와 근거는 무엇인가?”

입학 정원 확정이 환자가 죽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지 묻고 싶은 사람들이 국민 사이에 아주 많을 것이다. 정원이 1500명에서 0명 또는 500명으로 줄어들었을 때의 혼란이란 의료 사태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다. 의대 입시에 목을 매는 극소수 학부모-학생들에 해당하는 문제다.


오히려 전공의들 유급과 정원 대폭 확대로 교육 부담이 한꺼번에 극대화될 의대 들엔 안도의 한숨을 짓게 해줄 것이다. 무엇보다 전공의들이 돌아올 명분을 확실히 주게 된다.


윤석열은 의사, 전공의들에게 백기를 드는 ‘치욕’이 죽기보다 싫을 것이다. 내년도 증원 전면 취소 또는 대폭 축소가 그래서 불가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가 빠져 있는 수렁은 깊어진다.


기회가 왔을 때 확 엎어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좋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집권 여당 대표 한동훈에게 전권을 줘서 해결사 역할을 맡기도록 하라.


그러면 김건희 눈높이 발언, 제3자 채상병 특검 제의 이후 그를 아예 쳐다도 안 봐 버리는 “밴댕이 속”을 보인 것도 일거에 만회할 수 있다. 의정과 윤한 두 갈등을 동시에 해결하는 일석이조다.


‘밴댕이 윤석열’은 잘못하면 임기 끝날 때까지 그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치명적인 꼬리표다. 그는 아마 이 불명예스러운 표 딱지를 선물한 박지원이 한동훈보다 미울 것이다.


박지원은 윤석열이 “이재명보다 한동훈을 더 미워한다”라고 또 다른 촌철살인을 했다.


“‘기분 나쁘니까 너하고 밥 안 먹어’다. 국민의힘 연찬회도 매년 가다가 이번에 안 갔다. 이런 밴댕이 정치가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국회도 완전히 무시하고 개원식에 안 왔다. ‘살인자’ 운운하니깐 ‘나 기분 나빠, 안 가’한 거다. 이게 유치원 학생이지, 대통령인가?”

글/ 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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