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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멍들고, 노트북 부서지고…김안나 기록원이 말해주는 ‘전쟁터’ [스포츠잡스⑮-배구 기록원]

인천 = 김평호 기자 (kimrard16@dailian.co.kr)
입력 2024.11.26 06:40
수정 2024.11.26 07:31

2005년부터 코비스(KOVIS) 기록원으로 20년 째 프로배구 현장 누벼

순간포착의 고충 커, 빠르게 날아드는 공에 아찔한 상황도 수시로 발생

“배구를 사랑하시는 분들이 많이 하셨으면 좋겠다”

한국배구연맹 김안나 기록원이 31일 오후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경기를 기록하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수시로 콜 사인을 하고 있는데 정말 전쟁터 같아요.”


선수들이 플레이를 펼치는 프로배구 코트 바로 뒤에 가려져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코트 밖 광고판 뒤에서 경기 내용을 작성하는 기록원들이다.


때로는 공에 맞아 얼굴에 멍이 들기도 하고, 노트북이 부서질 때도 있지만 정확한 기록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안나 코비스(KOVIS) 기록원은 배구장을 ‘전쟁터’로 표현했다.


프로배구는 1경기에 총 7명의 기록원이 배정된다. 선수들의 행위에 대한 콜을 하는 ‘기록’과, 그 콜을 듣고 입력하는 ‘전산’, ‘위치’라 불리는 별개의 업무 분담자 등으로 이뤄져 있다.


김안나 기록원은 “이 안에서 콜을 하고 있지만 정말 전쟁과 같은 콜이다. 서로 합이 맞아서 잘 불러야 하고, 못 불렀을 때는 영상을 보고 또 이걸 잡아줘야 한다”며 “이 안에서 정말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실시간으로 문자 중계도 나가고 있다. 틀린 게 나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라이브로 영상을 돌려본다”고 전했다.


한국배구연맹 김안나 기록원이 31일 오후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선수들이 때리는 빠른 공을 완벽하게 기록해 내기 위해서는 한시도 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순간 판단 능력은 물론, 기록원들끼리 호흡도 중요하다.


김 기록원은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콜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방송 리플레이를 계속 실시간으로 본다”며 “최초 센터 블로킹으로 판단했지만 나중에 확인했을 때 레프트가 더 많이 맞았다고 보여지면 바로 실시간으로 수정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옆에서) 블로킹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보여주면 내가 담당이기 때문에 한 번 더 확인을 하고 콜 사인을 내린다. 계속 전쟁터 같다”고 전했다.


기록 작성에 집중하다보면 정작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놓칠 때가 많다. 시선을 고정한다 해도 빠른 스피드로 날아오는 공을 몸을 날려 피하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땐 불상사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김 기록원은 “계양체육관에서 공을 제대로 얻어맞아서 눈이 파랗게 멍이 든 적이 있다. 눈이 부었는데 구단에서 얼음을 줘서 이걸 대고 경기 내내 기록을 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이어 “선수가 안 다치는 게 우선이다. 선수들 하고 부딪치지 않게 헤드셋을 벗어던지고 무작정 피할 때도 있다. 노트북 액정이 나가 고장 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웃어보였다.


그는 “이런 경우 선수들은 미안해한다. 그러면 우리는 괜찮다고 한다. 경기를 하다보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가만 보면 ‘극한직업’이다. 아찔한 상황들로 인해 항상 부상 위험에 노출돼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는 남다르다.


“선수들 개개인의 연봉 협상에 우리의 콜이 들어갑니다”라고 웃어 보인 김안나 기록원은 “그들의 프라이드가 우리의 입에서 시작이 됩니다. 여기에 상당히 긍지를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봉 협상과 직결되는 예민한 사안인 만큼 선수들의 항의도 간혹 있다.


김 기록원은 “센터 블로킹 같은 경우 선수들에게는 하나하나가 금액이다. 그래서 자신의 블로킹을 강조하는 선수들도 있다. 선수들 항의에 우리의 의견이 번복 될 때도, 수렴이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배구연맹 김안나 기록원이 31일 오후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현장에서는 선수와 기록원의 관계지만 사실 선수들에게 김안나 기록원은 배구계 대선배기이기도 하다.


10살 때부터 배구를 시작한 김 기록원은 실업배구 팀 후지필름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했다. 팀에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이후에도 배구와 연을 놓지 않았다. 기록원 일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배구가 좋았다고 한다.


김안나 기록원은 자신의 일에 대해 “굉장히 매력 있는 직종이다. 나는 배구를 정말 사랑한다”며 “배구 선수는 당연히 배구를 사랑해야 된다고 하지만 아닌 분들이 들어와서 기록원 일을 하기 위해 교육 받는 모습이 너무 감사하다. 배구를 사랑하시는 분들이 많이 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배구계 선배로서 현역 선수들에게 깊은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지금 선수들한테 제일 잘하는 걸로 돈을 벌 수 있는 게 가장 행복한 거라고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며 “선수 때는 배구가 너무 힘들었고, 그게 제일 좋은 건지 몰랐다. 너무 아쉽고, 지금도 아쉽다”고 말했다.

김평호 기자 (kimrard1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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