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면서 공연 본다”…MZ 사로잡은 뮤지컬 펍 [뮤지컬 펍①]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4.08.15 11:14
수정 2024.08.15 11:14

커튼콜·캐스팅·시카고 등 뮤지컬 펍 잇따라 오픈

"뮤지컬 문턱 낮춘다...2030세대 이색 데이트로 인기"

입장료 1~2만원대...관크없고 음식 섭취도 가능

“안 그래도 예약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아예 내 자리는 없겠구나.”


지난 1일, 4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워크맨’에 아르바이트 체험 영상이 공개된 이후의 반응이다. 이 영상에서 그룹 엔믹스 멤버 해원과 릴리가 찾은 곳은 서울 중구 대학로에 위치한 뮤지컬 펍 ‘커튼콜’(curtaincall)이다.


ⓒ워크맨

뮤지컬 펍은 말 그대로 뮤지컬 공연과 펍(Pub)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문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뮤지컬 펍에서도 술과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단 뮤지컬 펍에는 일반적인 펍과 달리 뮤지컬 공연이 ‘메인’이 된다. 그러다보니 공연 중에 자유롭게 음식을 즐길 수 있지만,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관객들은 숟가락과 술잔을 일제히 내려놓는다.


뮤지컬 펍이라는 공간의 시초는 명확하게 규정하긴 어렵다. 펍 문화와 뮤지컬이 결합하면서 다양한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뮤지컬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미국, 유럽 등에서는 유사한 형태의 공간이 꽤 오래전부터 인기였다.


뉴욕을 방문하는 뮤지컬 팬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엘렌스 스타더스트 다이너(Ellen's Stardust Diner)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뮤지컬 배우나 지망생들이 공연하고 서빙도 하는 이색 레스토랑으로, 이미 브로드웨이의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지난 2019년 방영된 KBS2 예능 ‘정해인의 걸어보고서’에 등장하며 한국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정해인의 걸어보고서'에 등장한 뉴욕 엘렌스 스타더스트 다이너 ⓒKBS

국내에서 뮤지컬 펍이 등장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워크맨’에 등장한 커튼콜이 국내 최초 뮤지컬 펍인데, 뉴욕의 스타더스트를 방문한 후 영감을 받아 지난해 12월 오픈했다. ‘국내 최초’라는 이름값도 톡톡히 하고 있다. 커튼콜은 이미 예약조차 쉽지 않은 곳으로 유명하다. 매달 둘째 주 목요일 다음 달의 예약이 오픈되는데, 사실상 오픈과 동시에 예매 페이지가 마감되기 일쑤다. 현재 예약이 가능한 9월1일까지 모든 좌석이 매진이다.


커튼콜의 성공적인 오픈 이후, 또 다른 뮤지컬 펍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인근에는 입장료 1만5000원에 매일 다른 공연을 볼 수 있는 ‘캐스팅’(Casting)이 올해 초 오픈했고, 강원도 양양의 ‘양리단길호텔 Y라운지’는 올해 4월 문을 열었다. 부산 광안리에는 광안리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건물의 7층에 뮤지컬 펍 ‘시카고’(SEACAGO)가 지난 5월부터 손님을 맞고 있다.


캐스팅 이사무엘 대표는 “뮤지컬의 높은 문턱을 낮춰서 누구나 쉽게 방문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싶었는데, 이런 전략이 통한 것 같다”면서 “특히 2030 세대들이 이색 데이트로 많이 찾아오고 공연이라는 특징이 있다 보니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손님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뮤지컬 펍의 인기 이유는 국내 뮤지컬 시장에 대한 수요와도 맞물린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23년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약 4591억원으로 전년 대비 8.0% 증가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뮤지컬 관람에 대한 대중적인 소비심리가 높아지는 동시에 경험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의 트렌드가 강하게 작용해 시너지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워크맨

최근 뮤지컬 펍을 찾았던 직장인 유모(37)씨는 “뮤지컬을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뮤지컬 펍을 처음 경험해 봤는데 잘 모르는 노래여도 술과 음식, 공연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미가 생겼다”면서 “첫 방문 이후 다른 친구들에게 뮤지컬 펍을 추천해주고 함께 또 다녀왔다”고 말했다.


박병성 공연 칼럼리스트는 “뮤지컬이 대중화되다 보니 공연장을 넘어 색다르게 공연을 소비하려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문화를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면서 “물론 실제 공연에 비해 드라마나 연극적 요소는 덜할 수밖에 없지만 라이브의 특징인 직접 소통을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시도”라고 평했다.


대극장 VIP석 기준, 최대 19만원까지 높아진 티켓 가격과 시체 관극을 강요하는 공연장 문화 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도 뮤지컬 펍의 큰 매력 포인트다.


수원에 거주 중인 대학원생 김모(28))씨는 “평소 뮤지컬을 좋아하는데 최근 들어 티켓 가격이 높아지면서 자주 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 아쉬운 대로 대학로 소극장 공연을 위주로 보다가 뮤지컬 펍을 알게 됐다”면서 “물론 완전한 뮤지컬 한 편을 대신할 순 없지만 뮤지컬 공연을 보고, 공연장에서는 불가능한 음식 섭취나 자유로운 리액션이 가능하고 배우들과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한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라고 짚었다.


박 칼럼리스트는 “사실상 뮤지컬은 퍠쇄적인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데, 그런 면에서 관객들에게 편하게 뮤지컬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인다. 특히 뮤지컬 제작사 입장에서도 (뮤지컬 펍을 통해) 작품을 소개할 수 있고, 배우 개개인이 바이럴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뮤지컬계와도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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