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마에스트라[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입력 2024.07.26 14:16
수정 2024.08.02 12:59
영화 ‘디베르티멘토’
예술은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며 우리 삶에 색다른 감동과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우리 감정과 정서를 자극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조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최근 음악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마에스트라의 오케스트라 이야기 영화 ‘디베르티멘토’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1995년 파리 교외의 이민자 가정 출신의 자히아 지우아니(울라야 아마라 분)는 지휘자의 꿈을 안고 파리 시내의 명문 음악 고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알제리 태생의 자히아는 이민자 출신의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높은 장벽을 마주하지만 세계적인 마에스트로인 세르주 첼리비다케의 눈에 들어 지휘를 배우게 된다. 음악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자히아는 다양한 출신의 친구들을 모아 ‘디베르티멘토’라는 오케스트라를 결성한다.
영화는 여성과 출신 지역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전한다. 여권이 신장되었다지만 클래식 음악계는 보수적이다. 세계적인 교향악단 중 하나인 빈 필하모닉은 1997년 첫 여성 단원을 허가했을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단원들을 통솔하는 지휘자의 자리에 여성이 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주인공 자히아는 여성이자 알제리 태생이다. 그녀의 스승인 세르주 첼리비다케 마저 자히아에게 지휘는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수학 선생님은 자히아의 성적을 보고 파리 시내가 아닌 변두리 출신인 그녀가 어떻게 수학을 잘하는지 놀라워한다. 영화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 통해 여전히 우리들의 삶에 만연한 출신, 인종과 성별이라는 세상의 편견을 실감하게 한다.
변화를 시도하는 자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클래식은 흔히 엘리트들만이 즐기는 음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차별을 경험했던 자히아는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이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랐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여성에게 첼로를 가르치거나 변두리 교외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클래식을 배우고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한다. 특히 그녀가 시장에게 말한 “음악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사람은 변화시킬 수 있다”는 대사는 영화의 주제를 잘 표현한 대목이다. 그는 모두가 잠든 밤에도 랜턴 빛에 의지해 악보를 외우고, 작곡가들의 의도를 고민하며 지휘에 대한 꿈을 이어간다. 자히아가 결성한 오케스트라인 ‘디베르티멘토’는 출신과 성별, 인종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로 단원을 구성해 보수적인 클래식계 작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음악으로 세상을 변화시킨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 또한 돋보인다. 영화는 세계적인 마에스트라 자히아 지우아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실제 이야기가 허구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다고 믿는 마리카스티유 망시옹샤르 감독은 영화의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오케스트라의 단원 역할에 실제 연주자를 캐스팅했다. 또한 당시 시대적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배우들에게 1990년대 프랑스의 정치, 문화, 사회를 공부하게 하고 극중 인물들이 그 시대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해 볼 것을 권했다고 한다. 이러한 감독의 섬세한 연출로 출연진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했다. 더욱이 감독은 카미유 생상스의 ‘바카날레 춤’과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 등 대중에게 친숙한 클래식을 선곡해 거리감을 좁혔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인권은 과거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 그러나 과학과 정치, 클래식 음악 등 여전히 유리 천정이 높은 분야가 존재한다. 음악에서 여성 지휘자는 전 세계적으로 6%, 프랑스에서는 4%에 불과하다. 여성은 비언어적 단서를 읽어내고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데 강점을 가지고 있어 여성의 비중은 더 늘어날 필요가 있다. 영화 ‘디베르티멘토’는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오케스트라 단원을 이끄는 모습을 통해 여성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