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와인기행②] “역사 알고 마시면 더 맛있다”…디저트 와인, 어떻게 탄생했나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4.06.12 07:21
수정 2024.06.12 07:21

3‧5‧6 와인별 특징‧맛 제각각

1년 120병 수입…숙성할수록 진가 발휘

오레무스 빈야드(Oremus Vineyards)의 모습. 오레무스 빈야드는 헝가리의 토카이 지역에 위치한 와이너리로, 1994년에 설립됐다. 오레무스는 토카이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자 중 하나로, 푸르민트(Furmint)라는 토착 포도 품종을 사용하여 고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임유정 기자

중부 유럽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헝가리는 동유럽 와인 생산국 가운데 가장 오랜 와인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도 와인산업은 꾸준히 명맥을 유지했고 전통의 맛을 지켜왔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와인은 세계적 명주인 토카이 와인이다.


토카이 와인은 수도 부다페스트 동북쪽으로 약 200㎞ 떨어진 보드그로그 강과 티셔 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토카이 헤자리아’라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스위트 와인이다. 토카이는 ‘헝가리의 금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와인이 황금색을 띤 데다 금색 마크를 달고 팔려서다.


그렇다면 이 귀한 와인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토카이 와인의 탄생은 17세기로 올라간다. 기록에 따르면 토카이 와인은 1630년 처음 만들어졌고, 1737년 이미 품질 관리를 위해 헝가리 여러 지역 중에서도 토카이 지역에서만 이 와인을 생산하도록 왕명이 선포됐다고 한다.


헝가리는 1541년부터 1699년까지 오스만튀르크의 침략을 받았다. 당시 농부들은 포도수확을 포기하고 피란을 갔는데 다시 돌아와 보니 포도가 곰팡이(귀부균)에 감염돼 버렸다. 헝가리 사람들은 말라버린 포도를 모아 와인을 담았는데, 당도가 응축된 독특한 맛을 내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안드레아(András) 오레무스 와인 메이커는 “1990년 40년 간의 공산주의가 종식됐고 그 후 3년 뒤인 1993년에 지금 오너인 파블로 알바레즈의 아버지 데이비드 알바레즈가 사유화가 진행 중인 토카이 지역의 와이너리들을 알아보면서 이곳 오레무스 와이너리를 매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전체 오레무스 와이너리는 100㏊(헥타르) 정도인데 이곳 빈야드가 특별한 것은 19세기 후반 포도나무 뿌리에 기생하면서 영양분을 빼앗아 포도나무가 말라죽게 만드는 ‘필록세라’라고 불리는 진드기 사건 전의 푸르민트 묘목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점”이라고 뿌듯해 했다.


이 와인은 아무 곳에서나 양조 할 수 없다. 일부 지역에서만 가능하다. 토카이 지역은 헝가리 북동부에 있다. 토카이 지역은 산으로 둘러싸인 구릉지대로 다뉴브강의 지류들이 지역 곳곳을 굽이쳐 아름다운 곳이다. 200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유서 깊다.


이곳은 온화한 대륙성 기후와 안개를 일으킨다. 곰팡이 즉 ‘보트리티스균’의 영향을 받기 쉬운 조건으로 유명하다. 아침마다 강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포도밭을 뒤덮고 오후에는 안개가 걷히면서 맑고 건조한 날씨가 지속된다. 이런 환경은 귀부균이 발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토카이 아수는 주로 헝가리 토착 품종인 ‘푸르민트’로 만든다. 푸르민트 포도는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라는 곰팡이에 감염된 이후 건조시켜 수확되는데, 감염된 포도를 아수(Aszu)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포도로 만든 와인 레이블에는 ‘토카이 아수’라고 적혀 있다.


안드레아는 “토카이 지역은 배산임수가 아니었다면 아수를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낮에는 열기를 받아서 강에서 올라오는 습기가 포도밭까지 올라오고 밤에는 온도가 내려가면서 습기가 한 번 가라앉는다. 이러한 순환이 계속 이뤄져서 보트리티스균이 포도에 침투할 수 있었고 그것이 이 지역에서 스위트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아수베리가 되어가는 모습. 아수베리는 헝가리의 토카이 지역에서 자라는 독특한 종류의 포도다. 이 포도는 주로 토카이 아수(Tokaji Aszú)라는 달콤한 디저트 와인에 사용된다. 아수베리는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라는 곰팡이에 감염되어 건조되고 농축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곰팡이는 포도 안에 있는 수분을 제거하고 당도를 높이며, 와인에 특유한 향과 풍미를 부여한다.ⓒ임유정 기자

토카이 아슈는 ▲3푸토뇨스 ▲5푸토뇨스 ▲6푸토뇨스로 나뉜다. 푸토뇨스(Puttonyos)란 포도 수확 시 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담아 운반하는 일종의 등짐 바구니를 일컫는다. ‘3푸토뇨스’는 달콤한 원료포도가 3통 들어갔다는 의미로 숫자가 높을수록 와인은 더 달콤해진다.


와인별 특징도 각각 다르다. 3푸토뇨스는 산도가 높고 프레시한 포도를 주로 사용해 양조한다. 5푸토뇨스는 복합미나 균형이 중요하기 때문에 산도와 당도가 밸런스를 갖춘 포도를 사용한다. 6푸토뇨스는 당도를 최우선으로 여겨 당도가 적절하게 올라온 주스를 블렌딩 한다.


기본적으로 보트리티스균의 비율이 낮으면 밝은색, 높으면 진한색이다. 또 보트레이팅 하면서도 색이 진해지는데, 병입을 하고 계속 놔두면 산화가 진행되면서 색이 진해진다. 쉽게 말해 더 숙성된 와인일수록 색이 진해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안드레아는 “17세기에는 트랙터가 없어 손으로 수확해 백팩처럼 푸토뇨스를 메고 여기에 포도를 담아 마차에 실어 옮겼다. 일종의 ‘포도 캐리어’ 역할을 했다”며 “이후 포도 운반과 더불어 바구니당 와인의 당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아수베리의 경우 수분 자체가 적기 때문에 결국 또 다른 포도즙과 섞어서 당분을 추출해 와인을 만들어야 했다”며 “아수베리의 당분과 별개의 포도주스를 사용하는 비율에 따라 당도가 달라진다. 이것이 토카이 3,5,6의 차이”라고 덧붙였다.


오레무스 지하창고 이미지. 오레무스 지하창고는 헝가리의 토카이 지역에 위치한 오레무스 와이너리의 주요 시설 중 하나다. 이 지하창고는 오레무스 와인의 숙성과 저장을 위해 설계되었으며, 와인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지하창고는 지하에 파여진 넓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온도, 습도, 환기 등이 조절되는 환경에서 와인을 보관한다. ⓒ임유정 기자
◇ 국내엔 1년에 딱 120병…“오래 숙성할수록 빛난다”


토카이 아수는 30~40년 이상의 긴 숙성 잠재력을 자랑한다. 병숙성이 진행될수록 더욱 더 그 진가를 발휘한다. 숙성될수록 와인색이 금빛에서 호박색으로 바뀌고 복합미도 증대된다. 과일 향이 더욱 달콤해지고 견과 향이 더 풍부해지며 꿀 향은 진하고 묵직해진다.


다양한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6~8℃로 차게 식혀 달콤한 디저트와 즐겨도 좋고 짭짤하거나 매콤한 음식에 곁들여도 좋다. 서양에서는 블루치즈, 푸아그라, 치킨 카레, 페퍼콘 스테이크 등을 토카이 아수와 최고의 궁합으로 꼽는다. 맵고 짠 한식과도 안성맞춤이다.


안드레아는 “스위트 와인은 디저트 와인이라고 표현하니까 디저트 와인으로 통용될 수 있지만, 마멀레이드 과실을 좀 더 갖고 있기 때문에 모든 디저트와 어울리는 건 아니다”며 “매시드 포테이토 혹은 딸기나 그린 아스파라거스, 염소 치즈 등과도 잘 어울린다”고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토카이 와인은 빈티지 특성만큼 빈티지 연도가 갖는 의미나 문화적, 사회적 연결이 중요하다”며 “헝가리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그 빈티지 와인을 사놓고 숙성을 해둔 뒤 선물하기도 한다. 그만큼 숙성할수록 좋은 와인”이라고 귀띔했다.


토카이 아수는 땅굴에 보관된다. 중세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침략으로 헝가리에서는 피신하기 위해 곳곳에 땅굴을 파놓았는데, 아직도 천혜의 토카이 와인 저장고로 사용되고 있다. 매년 500병 코르크는 어떤걸 썼는지 등 일종의 히스토리 기록을 하기 위함이다.


국내서도 토카이 아수는 맛볼 수 있다. 1년에 딱 120병이 수입된다. 관계자에 따르면 토카이는 달고 가격대도 높다는 이유에서 배경에 대한 이해가 높은 목적성 구매가 뚜렷하다.


토카이 아수를 수입하는 신세계L&B관계자는 “국내는 매년 디저트 문화가 크게 성장하고 있는데, 디저트 문화에서 디저트 와인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며 “디저트 문화가 성숙해질수록 토카이 아수가 파고들 수 있는 포인트는 ‘천연 당’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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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디저트 와인 토카이 아수(Tokaji Aszú)가 테이블에 놓여 있다.ⓒ임유정 기자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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