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2주년 회견 '씬스틸러' 한동훈…거듭 질문에 짧은 답변, 의미는 [尹 2년, 앞으로 3년 ⑧]

김찬주 기자 (chan7200@dailian.co.kr)
입력 2024.05.10 07:00
수정 2024.05.10 10:04

윤·한, '20년 교분' 동고동락→대립 관계

윤 대통령, '韓과 관계 소원해졌나' 질문에

"정치인으로 확고히 자리매김 했다 생각"

與 '한동훈 전대 등판' 가능성에 의견 분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기 앞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뜻밖의 화두에 올랐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 이후 칩거 중인 한 전 위원장과의 과거 갈등 상황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정치인으로서 확고히 자리매김을 했다"는 대답으로 해석의 여지를 남기면서다. 특히 한 전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답변 의미를 두고 여권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윤 대통령은 9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기자들과 73분간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이 자리에서 한 전 위원장에 대한 질문은 두 차례 나왔다.


윤 대통령은 '한 전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적이 있는지, 과거에 비해 소원해진 관계인 건지'를 묻자 "한 전 위원장은 정치 입문 기간은 짧지만 주요 정당의 비대위원장 겸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총선을 지휘했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했다"며 "앞으로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잘 걸어 나갈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질문의 배경은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이 확산된 지난 1월로 돌아간다. 당시 한 전 위원장의 '국민 눈높이' 발언과 김경율 전 비대위원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이 윤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케 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실제 한 전 위원장은 이관섭 전 비서실장을 통해 사퇴를 요구 받은 사실을 공개하며 이른바 '윤·한 갈등'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한 전 위원장이 충남 서천군 화재현장에서 윤 대통령을 찾아가 몸을 낮춰 사과하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사태는 봉합된 듯 보였으나 여파는 컸다. 특히 총선 패배 이후 윤 대통령이 한 전 위원장에게 오찬을 제안했지만, 한 전 위원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거절한 뒤 칩거에 돌입하면서 둘의 관계를 둘러싼 해석이 분분했다.


윤 대통령은 '한 전 위원장과의 오찬 불발 이후 따로 연락했거나 다시 만날 계획이 있는지'를 묻자 "20년 넘도록 교분을 맺어왔다. 언제든지 만날 것"이라면서도 "아마 선거 이후 본인도 많이 지치고 재충전이 필요한 것 같아서 부담을 안 주고 기다리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같은 윤 대통령의 대답은 한 전 위원장과의 관계에 대한 의미를 되짚게 했다. 실제 한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검찰 시절 유독 아끼던 후배로 알려졌다.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윤 대통령이 직접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한 뒤, 친윤(친윤석열) 핵심 장제원 의원 등에게 "내가 법무부 장관 하나는 정말 잘 뽑지 않았느냐"고 자랑한 일화도 유명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과 인요한 국민의미래 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22대 총선 파이널 총력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일각에선 "20년 넘도록 교분"에 굳이 방점을 찍은 것이 한 전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섭섭한 심경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대목이란 해석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선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 불능' 상태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영남 지역에서 재선에 성공한 국민의힘 의원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정치에선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윤 대통령의 발언으로 볼 때 사실상 한 전 위원장에 대한 선을 우회적으로 그은 것"이라며 "두 사람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수도권 중진 의원도 "대통령이 오찬 초청을 했는데 한 전 위원장이 아파서 거절했다는 게 납득이 되질 않는다"며 "(한 전 위원장의 태도가) 두 사람 관계의 (회복 가능성이 불투명한) 단면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 전 위원장이 차기 국민의힘 당대표에 출마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과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당대표 1순위에 더해, 대권 잠룡으로까지 꼽힌다는 점 등에서 여당내 어수선한 기류가 감지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현재 '한동훈을 막아야 한다'는 쪽과 '한동훈밖에 없다'는 쪽이 반반"이라며 "한 전 위원장이 만약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 사실상 100% 당선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총선 패배에 몰염치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잠재적 권력 구도로 보면 한 전 위원장이 현재로선 우세하다는 게 확실하다"고 귀띔했다.


특히 만약 한 전 위원장이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대표로 당선될 경우, 윤 대통령과의 조우는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총선 참패로 임기 내내 여소야대 형국에서 국정을 이끌어야 할 윤 대통령 입장에서 집권여당까지 불편한 관계를 만드는 악수(惡手)를 둘 수는 없어서다.


한 전 위원장의 입장은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한 전 위원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정기적으로 (한 전 위원장과) 소통을 하고 있지만, 전당대회 출마나 당내 현안 등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는 나누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간 관계 개선 여지가 사실상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 관계 개선을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대통령과 각을 세울수록 본인이 뜬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 전 위원장을 향해 '정치인으로서 확고히 자리매김을 했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상 '너 혼자 잘해보라'는 의미"라며 "권력의 문제에 있어서는 '20년의 교분' 같은 말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관계 회복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김찬주 기자 (chan72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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