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를 위한 여당은 없다 [기자수첩-정치]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4.01.22 07:00
수정 2024.01.22 09:53

여당, 민심을 대통령실 전달하는 창구

대통령 '무지성 실드'도 역할 아닐진데

하물며 영부인 '실드'가 역할이겠는가

윤석열 대통령과 영부인 김건희 여사,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9월 국군의날 경축연에서 떡케이크를 함께 자르고 있다. ⓒ뉴시스

총선 출마를 위해 대통령실을 나온 전직 관계자를 만났다가 격렬한 여당 성토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야당의 공격을 받는 대통령을 여당이 너무 '실드' 쳐주지 않고, '쓴소리'라며 합세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쓴소리'를 할 겨를이 있으면 이재명 대표, 문재인 전 대통령을 공격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대통령실이 여당을 바라보는 인식이 일반적으로 이렇겠거니 싶어 만남이 파한 뒤 남몰래 개탄한 기억이 난다.


집권여당의 역할은 대통령 '실드'가 전부가 아니다. 물론 한미동맹 복원, 한일관계 개선, 건전재정 유지 등 보수 세력의 국정철학에 따른 정책 추진은 당정이 혼연일체가 돼서 함께 관철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정책과 관련이 없는 인사나 비위 의혹에 대해서까지 무조건적으로 '실드'를 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실은 임명직으로 이뤄져 있다보니 필연적으로 임명권자의 눈치만 살필 수밖에 없다. 임명직 일색인 것은 정부부처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부처와 달리 대통령실은 제왕적 절대권력까지 있으니 '구중궁궐'처럼 돼서 민심과 유리되기가 십상이다. 대통령실이 민심과 유리되는 문제는 청와대의 위치적 문제인 줄 알았는데, 용산으로 옮긴 뒤에도 달라진 게 없다는 말이 나온다.


반대로 여당은 선출직이 핵심이다. 선거 때마다 국민의 표를 얻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자연히 대통령실보다 민심의 동향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민심을 대통령실에 전달하는 창구로서의 역할이 여당 본연의 역할이다. 대통령실이 민심과 유리돼 있을 때, 무작정 '실드'만 치면서 야당과 이전투구를 벌이라는 것은 같이 죽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짐작컨데 대통령실은 국민적 인기도 높으면서 대통령실을 무조건 두둔하고 선거도 승리할 수 있는 지도부를 원하는 모양이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소위 말하는 '불가능의 삼각정리(trilemma)'다. 대통령실을 무조건 두둔했던 지도부로는 '김기현 체제'가 있었다. 국민적 인기가 저조해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완패하며 붕괴됐다.


그리고나서 집권 세력은 '한동훈 비대위 체제'를 세웠다. 대통령실은 '김기현 체제'의 '무조건 두둔' 기조를 이어가면서 거기에 국민적 인기만 끼얹고 싶었던 듯 하다. 그런데 이래서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가 없다.


한동훈 위원장이 영부인을 향해 무슨 수사를 받으라는 둥 대단히 위험한 말을 한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처음부터 계획된 '함정 몰카'가 맞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이 걱정할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했을 뿐이다. 지극히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발언을 했다.


그런데도 한 달도 되지 않은 비상대책위원장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보내 사실상의 사퇴 요구를 전달했다. 총선이 79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세상에 이런 '막장'이 또 있을까 싶다.


대통령을 '무지성 실드' 치는 것도 여당의 역할이 아니거늘, 하물며 영부인 '실드'일까. 여사를 위한 여당은 없다. 지도부를 백 번을 갈아본들 이 이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여사를 위한 여당을 억지로 만들어낸다 한들, 그런 여당에는 의석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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