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도 통째로 취소 시키는 관객 파워 [기자수첩-문화]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4.01.21 07:00 수정 2024.01.21 07:00

“우리는 이번 공연을 멈추기로 결정했다.”


최근 연극 ‘두 메데아’의 제작사인 극단 서울공장 임형택 대표 겸 연출자가 해당 공연의 취소 결정을 내렸다. 당초 이 공연은 1월 19일 개막해 내달 4일까지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다. 취소 공지가 나온 시점은 공연이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시기였다.


이번 사태의 배경엔 네티즌의 보이콧 압박이 있었다. 작품의 주연 배우가 과거 미투 사건의 중심에 섰던 연희단거리패 대표였고, 그래픽디자이너가 또 다른 성범죄 의혹을 받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식으로 무대에 계속 서도 되냐. 진심으로 범죄 사실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은 가담자가 뻔뻔하게 연극 판에 있는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며 한 네티즌이 올린 글이 발단이 돼 연극인들의 공동 연명 성명으로까지 이어졌다.


논란이 커지자 임 대표는 “극단 서울공장은 재정 문제, 코로나 영향 등으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다 지난해 ‘두 메데아’ 해외초청이 연속으로 이뤄지며 공연을 진행했다”며 “한국 공연이 참여자들의 열정과 노력, 예술적 성취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미투 운동의 의미를 흐리려는 것도, 맞서 싸우려는 것도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문제가 된 디자이너에 대해서는 “포스터 등 업데이트가 필요해 급하게 연결된 사람”이라며 “뉴스를 통해 사건을 확인한 후 곧바로 크레딧을 삭제하고 관련 홍보물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중하지 못했던 선택”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다만 주연배우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참고인들의 증언 및 증거에 근거해 법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당사자의 연극활동을 원천 배제하는 것이 최선의 길인지 의문이 있었고, 이 공연을 통해 진심을 전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연배우 김모씨 역시 “저는 성폭력 조력자가 아니며, 성폭력 방조와 권력 남용을 통해 개인적 이득을 취했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이번 사태는 법적,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배우에 대한 대중의 저항감을 보여준다.


‘두 메데아’ 공연 취소 사태를 비롯해 관객들의 도덕적 요구는 최근 공연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성추문에 휩싸였던 배우 한지상 역시 법적으론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관객들의 하차 요구가 빗발치면서 결국 뮤지컬에서 하차했다. 성매매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엠씨더맥스 이수의 경우엔 뮤지컬 ‘모차르트!’(2016)로 복귀를 타진했지만 관객의 항의에 부딪혀 무산됐고 현재까지도 개인 콘서트는 진행하지만 뮤지컬 무대엔 서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만 보더라도 현재로서는 문제가 일어난 이후, 공연을 취소하거나 논란의 주체가 물러나는 식의 대처가 전부다. 그런데 관객의 파워가 곧 티켓 파워로 이어지는 공연계에서 도덕적 책임이 꾸준히 요구되는 만큼, 문제를 일으킨 이들의 복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사회적인 합의도 필요한 시점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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