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악’ 촉촉한 지창욱의 눈·눈빛·눈물 [홍종선의 명장면①]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3.11.21 08:12
수정 2023.11.22 10:52

“올해 최고의 한국 드라마” 글로벌 호평 받는 이유

배우 지창욱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지창욱은 촉촉하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던가. 촉촉한 눈을 문 삼아 열고 그의 마음에 들어가면 잔잔한 물이 찰랑이거나 때론 풍랑 이는 바다가 있을 것만 같다.


디즈니+ 드라마 ‘최악의 악’(연출 한동욱, 각본 장민석, 제작 바람픽쳐스·㈜사나이픽처스·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언더커버 경찰 박준모 경장,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마약을 거래하는 범죄조직 강남연합 궁극의 ‘넘버 2’ 조직원 권승호 역에 배우 지창욱이 제격인 이유다.


연출을 맡은 한동욱 감독은 지창욱의 눈, 눈빛, 눈물을 제대로 썼다.


권승호 아닌 박준모의 눈빛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one3526

일테면, 강남연합파 보스 정기철 사장(위하준 분), 홍희성 전무(차래형 분), 최정배 상무(임성재 분)가 함께 탄 차를 권승호가 운전하는 상황에서 준모의 아내 유의정(임세미 분)을 두고 기철의 첫사랑 상대로 대화가 오갈 때 이글거리는 눈빛은 압도적이다.


앞서 강남연합에 잠입한 준모는 어렵게 시간을 만들어 아내 의정을 아내가 좋아하는 떡볶이 분식집에서 만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기철, 희성, 정배의 분식집 등장에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 놀란 준모. 더욱 놀라운 건 기철도 좋아하는 추억의 맛집이라는 것이고, 더더욱 놀라운 건 기철과 의정이 청소년 시절 한 동네에서 같은 성당을 다니며 친했던 사이라는 것이다. 그 순간, 박준모 아니 권승호는 유의정의 어린 시절 옆집 동생으로 소개된다.


아내에게 저간의 사정을 제대로 들을 새 없이, 통화 기록 남을까 싶어 보안을 위해 아내와 통화도 어려운 상황인데, 속 모르는 형님들은 추억의 떡볶이집 계속 방문한 덕에 드디어 첫사랑을 만났다며 기철도 의정도 변함없이 똑같은 떡볶이를 좋아하고 있었고 찾고 있었다며 즐거움에 양양이다.


속 뒤집는 대화를 들어야 하는 남자는 그 순간 강남연합 막내 권승호가 아니라 유의정의 남편 박준모다. 단지 옆집 동생이어야 하니 표를 내선 안 되는데 입에선 말처럼 입김이 뿜어나오고, 코에선 용처럼 콧김이 솟으며 코 평수가 넓어지고, 룸미러로 기철을 보는 눈빛은 사냥감을 응시하는 표범처럼 이글거린다.


그저 청소년 시절 추억일 수 있음에도, 수컷 준모의 동물적 감과 촉은 그 이상이었음을 단번에 알아채 질투가 용솟음친다. 당장 사실 확인을 할 수도, 따져 물을 수도 없는 자신의 언더커버 상황에서 불확실성은 분노를 키운다.

준모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 배우 지창욱의 눈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비슷한 상황은 한 번 더 일어나는데, 심지어 의정이 남편을 돕겠다며 자진하여 기철을 만나고 있을 때다. 다시금 차 안. 이번엔 준모가 운전하고 뒷자리에 의정과 기철이 나란히 앉아 있다. 기철이 남편의 존재에 대해 캐묻는 상황, 의정은 언더커버팀의 수장 조창식 부장검사(이정현 분)의 지침대로 “(남편과) 이혼했어”라고 말한다.


의정은 남편 준모의 안전을 위해, 강남연합 내에서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하는 말이지만, 이 말을 듣는 준모의 속은 무너져내린다. 이 위험한 잠입수사에 아내가 가담하게 된 것도 화가 나는데, 하필 외간 남자와 ‘교제 모드’이다 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 의정이 “이혼했어”라는 말을 뱉을 때, 그 순간 준모의 눈은 폭발 직전의 활화산이다. 속마음은 그러함에도 잠입수사가 뭐라고 꾹꾹, 다시 또 꾹꾹 마음의 뚜껑을 누르듯 눈을 질끈 감는다.

빈소에 갔지만 조문할 수 없는 준모의 안타까움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dearwinterrain

배우 지창욱의 눈빛도 좋고 눈도 좋지만, 최고는 눈물이다. 내 속으로 낳은 두 아들보다 사위가 좋다는 장모(황진숙, 민경옥 분)께서 암 투병 중 돌아가셨지만, 장례식장에도 갔지만, 정기철은 조문해도 박준모는 권승호여야 하기에 문상할 수 없는 상황. 서울청 간부라고 으스대며 준모를 지역경찰서 경찰이라고 대놓고 무시하던 의정의 큰오빠(유상규, 이상원 분)가 조문객들에게 처를 소개할 때, 자신은 지척에 있어도 의정 곁에 설 수도 아내를 위로할 수도 없다.


미칠 것 같은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준모는 장례식장 통로에서 보이지 않는 장모의 영정을 향해 마지막 절을 올린다. 이때 솟아난 준모의 뜨거운 눈물은 한동안 이어진다. 조문 다녀온 뒤 기철과 독대하여 술잔을 기울일 때, 가난과 약쟁이 아버지의 늪에서 벗어나 성공하고 싶은 한 남자의 간절한 눈물로 오해를 자청하며 빈소에서의 설움을 뱉는다.


준모가 우는 진짜 이유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c106507

그리고 이어, 아내가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한 미안함을 옥상에서 토해낸다. 의정의 전화 음성사서함에 남기는 독백이다. 이 음성녹음이 참 묘하다. 아무도 듣지 않는 데서 혼자 하는 독백과 달리 상대가 있어 혼잣말이 아니고, 상대가 있으나 지금 듣지 않고 있으니 독백이다.


“아, 의정아. 나야. 의정아, 내가 너무 미안하다. 어머니 찾아뵙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하아아) 그냥, (눈물이 강이 되어 흐른다) 내가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도 너무 미안하고. (한숨 또 한숨) 내가, 내가 너무 못났고, 그냥, 그냥 내가, 부족한 것도 너무 미안하고, (소처럼 큰 눈에서 눈물이 넘친다. 울먹이며) 그냥 다 너무 미안해. 미안해에. 의정아, (눈을 껌뻑인다) 사랑해에.”


배우 지창욱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듣는 이를 의정이로 만든다. 준모의 말에서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왜 음성경찰서 경장 박준모가 두 계급 특진을 대가로 목숨을 건 위험한 수사에 뛰어들어야 했는지. ‘못남’ 또 ‘부족함’,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장인(유덕훈, 주호성 분)을 위시하여 두 아들이 모두 경찰대 출신의 간부인 경찰 집안에서 주눅 든 어깨. 조문하지 못한 게 왜 그리 원통한지. 모두가 반대하고 박대할 때, 내 딸이 너무 좋다 하고 내 딸을 웃게 하는 착한 사람이니 충분하다며 두 팔 반겨 주셨던 장모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키지 못한 불효. 무엇보다 정체를 숨긴 잠입수사로 조문조차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든 자신의 선택, 그 선택의 결과를 같이 짊어지게 한 아내를 향한 미안함. ‘그냥 다’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는 준모는 울 수밖에 없다.


화면 안으로 들어가 그 들썩이는 어깨를 감싸 안아 주고 싶을 만큼 배우 지창욱의 눈물은 외롭고 쓸쓸하다. 자신의 선택이었으니 누구에게 응석 부릴 수도 위로받기도 어려운 고독. 하지만 누구보다 아프다. 아니, 제일 아픈 건 준모다. 인간이 하나의 선택을 할 때, 그 선택이 불러올 과정과 가져올 결과를 다 예측할 수도 없거니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인생이다. 그걸 알면서도 선택해야 하는 게 또 인생이다. 한 번의 선택이었을 뿐인데, 그저 잘해 보려는 더욱 나아지려는 발버둥의 선택이었을 뿐인데, 준모에게는 대가가 너무 아프다.


빗물로 숨긴 준모의 눈물, 빗물에 녹아버린 인간의 선 ⓒ 이하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옥상 눈물 명장면이 통화가 아니라 음성녹음, 대화가 아니라 독백인 것은 장차 준모에게 닥칠 미래에 대한 예언과도 같다. 의정이와 전화 연결이 됐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싶게, 이때까지만 해도 경찰의 선, 인간의 선 안에 있던 준모는 선택이 또 다른 선택을 낳는 인생의 연쇄반응 속에서 점점 경찰임을 잊어가고 점차 악마와 영혼 거래를 한 사람처럼 ‘악중의 악’ ‘최악의 악’ 악마적 모습으로 변해 간다.


그 신호탄이 경찰 출신으로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천진평 사장(성일 분)의 “살려 줘”라는 절박한 손길을 뿌리칠 때다. 내 정체를 알아버린 사람, 그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듯 필요한 걸 챙겨 자리를 뜬다. 국민의 안위를 지키는 경찰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니어도 그저 사람이라면 할 수 없을 선택을 하고야 만다.


천 사장 신과 관련하여, 옥상 ‘눈물’ 장면에 이어 또 하나의 ‘물’ 관련 명장면이 나온다. 장소도 똑같이 옥상이다. 천 사장은 도망치고 권승호는 쫓고 있다. 건물 옥상에서의 추격전, 옥상 바닥에 빗물이 흥건하다. 달리고 자빠지고 슬라이딩하며 추격하고. 영화 ‘추격자’의 골목길 추격 신, 좁은 언덕길에 장판 깔아 건졌다는 명장면 이상의 쾌감이다.

물 만난 배우 지창욱 ⓒ

촉촉한 배우 지창욱은 눈물이든 빗물이든 물을 만날 때 물 만난 고기처럼 생생해지는 걸까. 이퉁강 근처 창춘에서 온 이혜련(김형서 분)과도 물 내음 나는 한강에서 데이트할 때 멋져 보이고, 혜련도 승호를 만난 뒤에는 고향에서 매일 맡던 물 냄새이건만 색다르게 좋아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콘텐츠 평점 사이트 IMDb에서 평점 8.6을 기록하며 마찬가지로 디즈니+의 ‘무빙’과 함께 올해 공개된 글로벌 OTT 오리지널 한국 시리즈 중 1위를 차지한 ‘최악의 악’. 익숙한 언더커버 물이 새롭게 보일 수 있었던 건 배우자 있는 남녀, 형사 부부가 범죄조직의 수장들과 각기 다른 멜로를 펼치는 설정을 겹쳐서다. 목적 의식적 행동이 의도와 다른 흔들림과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치정 누아르’로 흥미를 유발했다.


무엇보다, 호평과 인기의 바탕에는 정기철-권승호 브로맨스와는 또 다른 ‘비강남파’ 연대를 보여준 강남연합 서종렬 부장 역의 이신기나 이혜련의 보디가드 조강산 역의 박지훈처럼 말없이 등장했다가 갈수록 매력을 불린 배우들을 비롯해 주연부터 단역까지 혼신으로 연기한 배우들의 공이 크다. 그 중심에는 지창욱이 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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