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인생이 워터멜론처럼 반짝이는 순간 [홍종선의 명대사㊿]
입력 2023.11.07 15:41
수정 2023.11.07 15:59
행복하세요~! 하루에 몇 번이고 SNS 메신저 창에 쓰는 말이다.
자주 쓰지만, ‘부자 되세요’라든가 ‘건강하세요’에 비해 뭔가 손에 탁 잡히지 않는 기원이다. 흔히 행복은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동화 ‘파랑새’의 파랑새에 비유된다. 요정 할머니의 말을 치료할 파랑새를 찾아 치르치르-미치르 남매가 추억의 나라, 밤의 궁전, 숲, 행복의 궁전, 미래의 나라를 헤맸으나 결국 파랑새는 머리맡의 새장 안에 있었다. 행복은 가까이 있다는 의미기도 하고, 목적 의식적으로 좇는다 해서 쉽사리 찾아지지 않는 무엇이 아니라는 얘기기도 하다.
그 모호성에 기인해 많은 예술 작품들이 행복을 찾아 떠나고 자신이 발견한 행복을 표현한다. 그래선지 또 우리는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고 그림을 볼 때, 행복에 관한 표현들에 눈이 번쩍 뜨이고 귀를 활짝 연다. 깊이 있는 인생철학을 만난 기쁨을 담아 반긴다.
13회까지 방송된 tvN 월화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에서도 행복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나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만났다. 지금부터 소개할 대사가 너무 아름답고 찬란하게 반짝여서 맘에 쏙 들기도 했지만, 10회를 넘겨 보며 작품의 진실성과 순수함을 느껴왔기에 ‘반짝이는 워터멜론’이 제시하는 ‘행복이란…’에 관한 해답에 믿음이 더 크다.
명대사는 10회를 시작하자마자 나온다. 은결(려운 분)은 CODA(코다, A Child of deaf adult, 부모 중 한 명이나 둘 다 청각장애인이거나 보호자가 청각장애인이고 그에 의해 양육된 사람)이다. 선천적 청각장애인인 엄마(서영희 분), 사고에 의해 후천적 청각장애인이 된 아빠(최윤영 분),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난은형 은호(봉재현 분)가 가족이다.
은결은 집안의 대소사뿐 아니라 사소한 일상의 순간마다 아빠·엄마·형을 세상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 왔다. 청각장애인 형 은호는 태권도도 열심, 연애도 열심인데 동생 은결은 좋아하는 음악, 잘하는 기타 연주를 멀리하고 연애는 꿈도 꾸지 않은 채 살고 있다. 이날은 형의 여자친구 5명을 차례로 만나 형 대신, 아니 형은 원하지도 않는 이별 선언을 대리 통보하며 형이 대학 입시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 안간힘 쓰는 상황이다. 네 번째 여자친구를 ‘정리’하고 대신 물벼락을 맞은 은결과 은호가 카페에서 나와 길에 마주 보고 섰다.
먼저 형이 쓴소리, 그러나 동생에게 가장 필요한 말을 수어로 건넨다.
“은결아, 이제 그만 네 인생을 살아. 내 인생은 내가 어떻게든 살아 낼게. 가끔은 너도 현재를 즐겨봐. 나처럼 사랑도 해 봐, 나처럼. 나 때문에, 가족 때문에 아까운 네 청춘 낭비하지 말고 반짝일 수 있을 때 반짝여봐. 야, 심장이 뛰는 일을 해 봐! 그런다고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
반짝일 수 있을 때 반짝여 보아라! 심장이 뛰는 일을 해라! 그때는 형이 자신에게 너무 소중한 여자친구의 연락처를 내놓지 않기 위해 변명처럼 하는 말인가 했다. 하지만, 진실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게 돼 있고, 그때는 귓구멍으로 스쳐 간 듯해도 그 말이 필요한 순간엔 생생히 살아오는 법이다.
은결에게도 그런 순간이 왔으니 최세경과 단둘인 상황, 낭만적 무드가 한껏 달아오른 때다. 사실 은결은 눈앞의 소녀가 장차 내게 너무나 소중한 기타를 전해줄 이웃집 아줌마 최세경(이소연 분)의 고교 시절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 자꾸만 마음이 가고 볼이 빨개지는 상대는 세경의 딸 은유(설인아 분)이다.
현재에서 18세, 타임 슬립해 간 1995년에도 여전히 열여덟 살인 은결. 늘 가족만 생각하던 소년의 마음에 어느새 자리를 차지한 소녀 역시 실은 1995년으로 시간 이동한 현재 시점의 은유다. 과거로 간 1995년에도, 현재로 돌아와서도 맘 놓고 좋아하고 서로 의지해도 되는 사이지만 둘은 서로 오해한다. 은결은 옆집 아줌마로, 은유는 어쩌면 아빠일지 모르는 엄마의 첫사랑으로.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는 장벽을 은결이 먼저 넘어선다. 은유에게로 바짝 다가선다. 다가서며 상기한다, 형이 했던 말을.
‘기억해요? 그날 형이 나한테 그랬잖아. 인생은 모든 조건이 갖춰졌을 때 반짝이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반짝이는 거라고. 행복은 그 순간들이 모여 완성되는 경험이라고. 가끔은 반짝여봐도, 가끔은 심장이 시키는 일을 해봐도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까?’
응원하는 내가 있다. “그래, 은결아, 심장이 시키는 대로 해! 지구, 망하지 않아!”
은결이 한 번은 주저한 뒤, 두 번째엔 제대로 용기 내 세경인 줄 아는 은유에게 키스한다. 순간, 은결도 은유도 반.짝.인.다. 두 사람 모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인다. 그 순간 행복했을 것이고, 그런 반짝이는 순간순간들이 모여 완성되는 경험이 바로 행복이다.
아! 유레카! 행복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오늘 내가 느끼는 ‘결과’라고 생각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내가 행복한가, 하지 않은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행복하기 위해선 먼 과거로부터 계속해서, 드문드문일지라도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고 내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고 긍정적 태도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바라보는 것으로 생각했다.
‘반짝이는 워터멜론’이 일러준다. 반짝이는 순간들이 모여 완성되는 ‘경험’이 행복이란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경험이란다. 어쩐지 행복이 한 뼘 더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다.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고, 노력해서 차곡차곡 경험을 쌓으면 된다고 응원과 격려를 받은 느낌이다. 이 느낌도, 일순간 반짝인 행복일 터이다.
좀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오늘 저녁 8시 50분 14회를 만나자. 밥상에 삼겹살 하나 올려놓는 연기를 해도, 가수 한명숙의 노래 ‘노란샤쓰의 사나이’만 불러도 명배우임을 들키고 마는 고두심을 비롯해 특별출연만 해도 빛이 나는 천호진과 박호산, 수어 연기를 해도 깊은 감정을 잘 전달하는 최원영과 서영희에 감칠맛 나는 정상훈은 기본이고.
려운, 최현욱, 설인아, 신은수, 안도규, 윤재진, 이수찬, 이하민, 이석형 등 사랑스러운 청춘의 배우들이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나눠 주고 맑은 미소를 선물한다. 인물들에게 자연스러운 매력을 덧입히는 헤어와 메이크업 분장까지, 눈에 거슬리는 게 없다. 오늘밤 1시간 20분을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 생각보다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