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상휘 "포항 선창가 막내였는데…'가가 가 맞나' 하시네요"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3.11.19 08:00
수정 2023.11.19 11:39

이상휘 전 청와대 춘추관장 인터뷰

"'그 선창가 막내 상휘가 맞냐' 하셔

빈민·수산고 출신으로 희망 주고파"

내달 2일 포항서 출판기념회 개최

이상휘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 비서실 기획실장으로 전격 발탁됐을 때 놀란 사람들이 많았다. 충북 진천에서 책방 '이월서가' 운영에 전념하며 지역의 명소로 키워내는 등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에서 이 전 관장이 어떤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의도에서 알 사람들은 다 안다. 그리고나서 다시 표표히 자연으로 돌아가 책방 생활을 하던 이 전 관장이 내달 2일 경북 포항에서 출판기념회를 예고해 다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포항은 그가 태어나 고등학교를 나온 곳이기도 하다.


'눈 덮인 길에 발자국, 누군가는 다시 걸어갈 길'이라는 부제를 단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북콘서트다. "자랑도 아니고 과시도 아니다. 반성하며 각오하며 쓴 글들"이라며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라는 게 출판기념회를 앞둔 이 전 관장의 소회다.


노무현정권을 끝장내고 이명박정부를 창출하는 등 정치 현장에서 맹활약을 펼치던 이상휘 전 춘추관장이 왜 낙향했고, 전격 복귀를 한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이제 고향 포항으로 돌아와서는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 하는지, 데일리안이 이 전 관장을 서울 신논현역 인근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상휘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정원에 한 가지 꽃만으론 아름답지 않아
정치는 세상 조화롭게 만들기 위한 과정"


―시간 내줘서 고맙다. 그동안 많은 시사 프로그램에 패널로 단골 출연하고, 또 불교방송라디오 '아침저널'을 진행하면서 관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출근한 시민들도 많았다. 많은 분들이 관장의 근황을 궁금해 했을 것으로 본다. 어떻게 지내셨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사실 2019년을 전후해 정치를 그만두려고 했다. 열심히 일만 했는데 오히려 적폐로 몰려서 특수부 조사만 수십 번을 받았다. 결국 아무런 혐의가 없는 것으로 정리됐지만, 정치에 회의를 많이 느꼈다.


지쳤다. 그래서 19년에 서울 살림을 다 정리하고 충북 진천의 해발 360m에 집을 지었다. 땅을 매입하고 났더니 맹지라 애먹었지만, 거기에 내가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책방을 만들었다. '이월서가'다. 집사람과 내가 두 손으로 일일이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3년을 정원을 가꿨더니, 정성이라는 게 보이는가보다. 지금은 책 읽는 분들이 많이 와서 주말에는 빈 자리가 없다.


정원을 가꾸면서 교훈을 얻었다. 정원에 한 가지 꽃만 있어서는 아름답지 않다. 정원에 분명한 정체성·컨셉은 있어야 하겠지만, 오로지 민들레, 또는 오로지 장미, 또 오로지 해바라기만 있으면 아름답겠느냐. 한 송이 해바라기나 한 송이 들국화를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는 잡초라 할지라도 받쳐줄 필요가 있다.


그게 정치가 아닌가 싶더라. 정치는 세상을 조화롭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고 수단이다. 정원을 가꾸는 심정으로 정치를 하는 게 맞겠더라."


"정체성 흔들리는데 혼자 책방 할 수는…
보수정권 창출 위해서 나섰던 게 내 운명"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어느 순간 낙향해서 책방을 한다고 해서 많은 분들이 놀랐는데, 또 그러다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전격적으로 발탁돼 정권교체의 일익을 담당했다.


"대선후보 비서실 기획실장이었다. '발탁됐다'고 하니 부끄러운데, 핵심 의원이 한 번 보자고 해서 만났더니 '보수정권 창출을 위해 나설 생각이 없느냐'고 굉장히 사명감을 주는 질문을 던지더라.


당시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가 훼손되고 파괴되던 상황이었다. 소위 진보가 재집권하면 나라의 정체성 자체가 혼란해지고, 경제가 망가지고 시민사회가 망가지고 문화가 망가진다. 나야 산에 있으면 마음 편하고 좋지만 '아, 이게 결국 나의 정치적 운명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명박 전 대통령 때에도 대선 전략과 일정을 기획했고,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때에도 캠프에 있지 않았느냐. 나의 이런저런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을지, 무엇보다도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나 혼자 산에서 책방을 한다는 것도 회색주의자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산에서 내려와 윤석열 대통령을 12월초에 만났다. 그 첫 인상이 굉장히 뭐랄까, 건물로 치자면 '웅장하다'랄까. 상당히 큰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우라 자체가 범상치 않았다. '이 사람은 지도자의 상이다, 지도자의 위풍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압도가 됐다. 한마디 한마디가 디테일하지는 않아도 신념이 있고, 흔들리지 않는 바위 같은 믿음이 첫 만남에서부터 느껴져 망설이지 않고 (캠프 합류를) 수락했다."


이상휘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후보 비서실 기획실장 맡아 집권 이후의
대비까지…음지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캠프에 몸담게 된 뒤 어떤 활동을 하셨는가. 정권교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들었다.


"내가 회사 때부터 비서실에만 계속 몸담았다. 아주 중요한 판단은 윗사람의 판단을 받아야 하겠지만, 일상적인 것은 비서실에서 책임지고 결정해야 한다. 바쁜 후보를 붙잡고 건건이 얘기를 한다? 무리다.


비서실 기획실장으로 있으면서 선대위원들, 의원들과도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아이디어도 많이 제시했다. 후보 비서실 기획실장이라 얘기하는 것에 힘은 있었다. 일일이 보고하고 판단받지 않아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대선 캠페인을) 많이 이끌었다.


후보 비서실 기획실장의 역할이 캠페인 조율도 있지만, 집권했을 경우의 대비도 중요하다. 김칫국을 마시자는 게 아니라, 당선이 됐을 때 인수위 기간은 짧지 않느냐. 당선을 가정하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혼선이 생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집권했을 때에도 후보 비서실에서부터 시작해서 인사 작업까지 참여했던 적이 있다. 역사상 정권교체 인사에 두 번 참여한 사람은 내가 처음 아닐까.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고비는 단일화였다.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작업은 1월 중순부터 기획했지만 밀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할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단일화가) 안될 경우도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 (단일화를 추진한다고) 공개했다가 안되면 타격이 크다.


그러니 늘상 어둠 속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단일화는 2월부터 본격화됐고 이태규 의원도 만나면서 공식 라인으로 '장제원~이태규 라인'이 형성됐다는 것까지는 세상에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거기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지만, 그것은 더 역사가 지난 뒤에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항만 하역 노동자로 시작, 인생이 수렁
남이 하지 않는 일 하며 성과 내야 했다"


―그렇게 정권교체에 기여한 뒤 초연히 자연인으로 돌아갔다가, 이제 내달 2일에 포항에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해서 지역이 떠들썩하다. 포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나온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관장에서 있어서 포항이란 무엇인가.


"포항은 애증이죠, 애증(웃음).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태어나서 자랐으니, 포항이 없었으면 나도 없었을 것이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미워한다는 것은 내가 포항에서 고생만 너무너무 했다. 늘 배고팠던 기억, 고생했던 기억 뿐이다. 그래서 포항에는 잘 가지 않았다 사실.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결국 저버릴 수 없는 게 고향땅이더라. 내가 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남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없듯이, 나도 공인인데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되겠느냐.


내가 중학교 때까지는 제법 똘똘한 학생이었는데 집안이 중2 때 망했다. 군고구마 팔이·신문배달·기름배달을 전전해야 했다. 너무 가난해서 공부에 취미를 잃었다. 수산고를 졸업하고나서는 바로 항만에서 하역하는 일용직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12시간 막노동도 열심히 하다보니 정직원을 시켜주더라.


내 꿈이 넥타이를 매는 것이었는데, 정직원이 되면서 비로소 넥타이를 매게 됐다. 일을 열심히 잘한다고 해서 1년만에 서울 본사 그룹 비서실로 발령이 났다.


내가 봐도 내가 특별한 게 없지 않느냐. 그래서 딱 하나 결심을 했다. 출근 하나는 1등을 하자. 조직 생활 30년을 하면서 단 한 번도 7시 이후에 출근을 한 적이 없다. 새벽 출근을 해서 내 일을 다하고, 일을 만들어 하다보니 그게 정직원이 되고 그룹 비서실까지 발령받은 동기라 생각한다.


비서실에서는 고교 졸업장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오너도 '공부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36세에 대학을 갔다. 1992년에 보증을 잘못 섰다가 월급이 차압됐다. 당장 빚을 갚아야 하는데 대학에 가고 싶다는 미친 마음을 품었다. 집사람은 흔쾌히 '가라'더라. 생활비도 없고 월급도 차압됐는데…… '없는 집에 만원 없으나 100만원 없으나 똑같으니 꿈이라도 있는 게 낫다'고 말해주더라.


보증을 잘못 섰다가 빚을 갚아나간 얘기는 '나는 마지막 희망을 사람에게 걸었다'는 책에다가 썼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목숨을 스스로 끊으려다 그 책을 읽고 목숨을 건진 사람이 있다더라. 그 얘기가 TV로 방영이 됐다. 그게 다시 내가 석·박사까지 하면서 오늘날의 내가 있게 된 계기가 됐다.


사람들은 내가 좋은 집안에서 자란 줄 아는데 인생이 수렁 그 자체였다. 대통령께는 이런 얘기를 한 번도 드리지 않았다. 업무를 하면서 사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다만 서울 정치바닥에 유수한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이 즐비하고 나같은 사람은 내가 유일한데 어디에 의지하겠느냐.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성과를 내고 실적을 내야만 했다. 지난해 후보 비서실 기획실장으로 있을 때에도 연줄에 의존했다면 그런 일은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상휘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포항서 다들 '가가 가 맞나' 그러시더라
나를 보시면서 '사다리' 느낌 받았으면"


―그런 인생역정을 거치고 포항으로 돌아왔다. 포항에서 만난 분들은 관장에게 어떤 이야기들을 건네던가.


"'가가 가 맞나' 그러더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을 두 번 교체시키고, 두 번 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을 했다. 포항에서 남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번쩍번쩍할 줄 아는데, 내가 그런 것을 가지고 한 번도 자랑하거나 과시한 적이 없다.


오히려 언제나 노가다 하는 인상 아니냐. 포항에서 '그 고생하던 선창가 막내 상휘가 맞느냐'고들 하시더라. TV에 많이 나와 돈도 많이 벌 줄 알았는데 어째 달라진 게 없느냐며 'TV에 도로 들어가 있으라'고도 하시더라.


내 입으로 말한다는 게 그렇지만 포항에서는 내가 일종의 '레전드'다. 가장 못 사는 빈민 출신으로 수산고를 나왔는데, 나같은 사람도 정치에 참여해서 국정운영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지금은 소위 '상위 1%의 세상' 아니냐. 가난이 대물림되고 고착화되는 세상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려면 엄청난 시도를 해야 하는 세상인데, 이런 '사다리가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나를 보고 '사다리'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수산고 57명 중 56등 꼴찌에 맨날 노가다 하고 핫도그 팔던 놈이 (의원) 배지를 단다면 그 자체만으로 희망 아니겠느냐. 만약에 의원이 된다면 의정활동도 주로 그런 쪽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내 전공이 가난이니까."


"정치, 4류로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실종
신뢰 복원에 노력해서 믿음을 되찾겠다"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한 게 벌써 30년 전 일인데, 지금 정치는 4류에서 심지어 수준이 더 떨어졌다고 탄식하는 분들이 많다. 관장이 보시기에는 어떤가.


"정치가 4류로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실종이 됐다. 시민들을 만나보면 정치가 신뢰를 잃은 정도가 아니다. 시민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눈이 대단히 비판적이다. 정치의 실종 때문에 국가적인 사업을 추진하는데도 신뢰성이 담보가 되지 않아 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정치의 신뢰부터 회복하고 싶다. 정치가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믿음과 신뢰를 되찾겠다. 특히 포항은 정치의 기능이 실종되면서 경제도 어려워지고, 경제가 어려워져서 시민들의 생활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투표는 한표 한표가 굉장히 중요하다. 한표가 나라의 역사를 바꾸고 운명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친소 관계와 혈연 관계, 이런 것으로 표를 던지셔서는 안되겠다.


지금까지 포항 정치가 실종돼 포항이 쇠퇴했고 발전이 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시민들이 잘 알고 계시고, 또 남구의 구민들이 잘 알고 계시더라.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바로잡아나갈 생각이다. 정치의 신뢰를 복원하는데 최대한 노력하고, 믿음과 신뢰를 줄 수 있는 행동을 통해 심판을 받겠다.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치를 할 수 있게끔 해달라."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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