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넥타이' 윤재옥의 묘수…일단 '명분·실리' 다 잡았다

김희정 기자 (hjkim0510@dailian.co.kr)
입력 2023.11.11 00:13
수정 2023.11.11 00:22

'필리버스터' 포기, '이동관 탄핵' 막았다

與野 치열한 수싸움, 윤재옥 지략 빛났다

포기한 필리버스터는 '유튜브'로 살리기로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오른쪽)가 9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가운데)·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와 안건 처리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다. ⓒ연합뉴스


"다수당이 잘못된 법안을 통과시킬 때 소수당으로서 저항의 행위를 역사에 남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어느 쪽이 국민 주권의 관점에서 더욱 위중한가를 따졌을 때 부당한 탄핵을 막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10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국민의힘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위한 무제한 토론)를 포기한 것은 윤재옥 국민의힘 대표의 '묘수(妙手)'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황한 민주당은 10일 '이동관 탄핵안'을 철회하고 '재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일사부재의 원칙'에 여야가 이견을 보이며, 국민의힘이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예고한 터라 민주당이 악수(惡手)를 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필리버스터 대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와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 처리 저지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 "부당한 탄핵을 막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민주당이 일방 주도한 노란봉투법·방송3법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설명한 뒤 "우리 당은 소수당이 다수당에 대항할 수 있도록 법률에서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인 필리버스터를 포기했다"며 "민주당이 취임한 지 3개월이 안된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한 것은 방통위 업무를 장시간 마비시킴으로써 가짜뉴스와 편향뉴스를 적극 활용해 총선에 반드시 이기겠다는 일그러진 욕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이재명 대표를 수사하는 팀을 이끌고 있는 이정섭 차장검사에 대한 탄핵 시도 역시, 명백한 방탄 탄핵일 뿐만 아니라 보복·압박이고 노골적 사법방해 행위"라고 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윤 원내대표는 평소 국민의힘을 상징하는 '빨간색' 넥타이를 맨다. ⓒ연합뉴스

윤 원내대표는 본회의가 열린 전날 오전 민주당을 상징하는 색인 '파란색'의 넥타이를 매고 국회로 출근했다. 그는 "오늘 협치가 좀 잘 됐으면 하는 생각으로 평소에 매던 빨강 넥타이를 뒤로하고 파란색 넥타이를 맸다"고 했다.


그는 전날 오전부터 이 위원장 탄핵안 대응책으로 '필리버스터 포기'를 검토했지만 본회의 직전 열린 의원총회 전까지도 김기현 대표에게만 귀띔하며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다. 그러나 '파란 넥타이'로 대변되는 그의 간절함도 끝내 민주당을 설득하지 못했고, 민주당이 이 위원장과 검사 2명 탄핵안을 접수하자 결국 필리버스터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


국회법상 탄핵소추안은 보고 후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로 표결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선택하면, 본회의가 계속 진행되고 24시간 뒤 민주당 단독으로 탄핵안 통과가 가능하다. 민주당이 국회법을 이용해 '이동관 탄핵안' 처리 묘수를 낸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포기할 경우 탄핵안은 자동 폐기된다. 민주당의 묘수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윤 원내대표의 묘수에 민주당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완전히 포기한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은 본회의 대신 다음주부터 당 유튜브 채널인 '오른소리'를 통해 필리버스터를 내보낼 계획이다. 김성원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법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대국민 보고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며 "(노란봉투법·방송3법이) 왜 정쟁을 유발하는지, 왜 악법인지, 국민에게 어떤 피해가 발생하는지 소상히 설명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탄핵소추안도 막고, 그렇다고 필리버스터가 완전히 버려진 것도 아니니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은 셈이 아니냐"고 평가했다.


다만 아직 '이동관 탄핵안' 불씨는 살아있다. 민주당은 이날 이동관 위원장과 검사 2명 탄핵을 철회했고, 재발의해 정기국회 내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고, 국민의힘은 국회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겠다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본회의에 탄핵안이 보고됐지만,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아 철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철회는 안건이 한 번 국회에서 부결되면 같은 회기 중에 다시 동일 안건을 발의·제출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의 원칙'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윤 원내대표는 "보고되는 순간 시간이 카운트되지 않느냐.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해야 한다"며 "보고 시점을 기준으로 시작되는데 그게 의제가 아니고 무엇인가. 탄핵안은 보고되는 시점 기준으로 이미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희정 기자 (hjkim051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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