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은 ‘리얼’하게, 다큐는 ‘재밌게’…희미해지는 장르 경계 [D:방송 뷰]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3.11.05 07:59
수정 2023.11.05 08:00

인위적으로 꾸며진 상황이 아닌, 관찰 카메라를 통해 출연자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리얼 예능이 꾸준히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일반인이 출연하는 연애 예능을 향해 “인간 다큐”라는 평이 나올 만큼, ‘날 것’을 추구하기도 한다.


반면 다큐멘터리들은 ‘어떻게 하면 메시지를 ‘재밌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음악, 드라마 전반을 아우르는 환경 다큐가 시청자들을 만나는가 하면, B급 다큐를 표방하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콩콩팥팥’ 영상 캡처

tvN을 통해 방송 중인 나영석 PD의 예능프로그램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이하 ‘콩콩팥팥’)는 이광수, 김우빈, 도경수, 김기방이 시골에서 농사짓는 과정을 포착하는 프로그램이다. 연예계 절친들로 출연진을 구성, 그들의 티키타카를 엿보는 재미도 있지만 그들의 농사 도전기를 천천히 쫓아가면서 ‘힐링 프로그램’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출연진들은 물론, 그곳 주민들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담아내기 위해 스태프, 카메라 등의 숫자를 줄이기까지 한 ‘콩콩팥팥’을 향해 ‘유튜브의 농촌 브이로그를 보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연출진이 개입해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출연진의 모습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포착하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솔로 남녀들이 모여 사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극사실주의 데이팅 프로그램 ‘나는 솔로’가 “연애 예능이 아닌 인간 다큐”라는 반응을 얻는가 하면, 기안84의 날 것 그대로의 여행기를 포착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가 인기를 얻는 등 ‘관찰’이라는 방식이 여러 예능 소재와 만나 시너지를 내고 있다.


반면 다큐멘터리는 각종 장치들을 적극 활용하며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하거나 재밌게 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최근 KBS는 ‘거주 불능’이 선포된 지구에서, 데이터 센터 ‘블랙박스’에 홀로 남은 윤(김신록 분)이 지구의 기후 회복이 가능했던 마지노선 2023년 제작된 뮤지션들의 다큐멘터리를 열어보는 내용의 KBS 공사창립 50주년 대기획 ‘지구 위 블랙박스’를 선보인 바 있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던 중 해안 침식으로 최근 사라져 버린 길을 마주한 윤도현이 물이 차오르는 수조 속에서 무대를 선보이는가 하면, 최정훈은 맨땅을 드러낸 남극에서 콘서트를 펼치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자연스럽게 전달했던 것.


이 외에도 자연 다큐에 유세윤의 콩트 개그를 결합한 KBS ‘지구별 별책부록’을 비롯해 기존의 범죄 다큐 틀에서 벗어나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악인들의 실체를 파헤치는 웨이브 ‘악인취재기’ 등 다큐멘터리의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구 위 블랙박스’를 연출한 구민정 PD는 “기후 위기라는 이슈가 중요한 의제인데 그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을 갖게 하는 건 쉽지 않다고 느꼈다.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마음을 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했다”는 바람을 전했는데, 이렇듯 장르 결합을 통해 메시지를 흥미롭게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서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의 장호기 PD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피지컬: 100’을 연출하는가 하면, ‘그것이 알고 싶다’ 출신 김규형 PD가 JTBC 예능프로그램 ‘듣고, 보니, 그럴싸’를 맡는 등 시사, 교양 PD들이 예능의 영역에 뛰어든 사례도 이어졌었다.


TV와 OTT는 물론, 유튜브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JTBC 디지털 스튜디오 룰루랄라 론칭 멤버였던 김선민 PD는 현재 예스24에서 미디어콘텐츠를 기획, 연출 중인데, 책 또는 서점가에 대한 재밌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 나가는 ‘서탐대실’ 등을 통해 알찬 정보를 재밌게 전달하는데 방점을 찍고 있다.


OTT, 유튜브 등 새로운 플랫폼에서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과정에서, 저마다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기존의 틀을 깨고 있는 셈이다. 한 예능 PD는 “장르라는 것은 기존에 쌓인 관습들을 통해 구분이 되는 것이기도 한데, 최근에는 틀을 깨는 시도들이 전보다 훨씬 유연하게 용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창작자들도 더 열어두고 기획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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