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신속 분리됐다면 살았다"…계부 성폭행 후 극단선택 두 여중생 수사보고서 공개

이태준 기자 (you1st@dailian.co.kr)
입력 2023.11.02 09:15
수정 2023.11.02 10:18

청주 청원경찰서, 사건 발생 당시 수사보고서 첫 공개

경찰, 3차례 걸쳐 성폭행 가해자 계부 영장 신청했으나…검찰이 거듭 반려

경찰, 8일 뒤 사전구속영장 재신청했으나…검찰 "객관적 자료 먼저 확보해야"

유족 "경찰 부실 수사와 검찰이 기계적으로 임해서 수사 지연된 사실 드러나"

대검찰청 ⓒ연합뉴스

계부가 여중생인 의붓딸과 그의 친구를 성폭행해 이들 두 여중생을 극단 선택으로 내몬 사건과 관련한 경찰 수사 보고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두 여중생은 성폭행 고소장이 접수된 후 경찰의 부실한 수사와 검찰의 거듭된 영장 반려로 수사가 4개월 가량 지연되는 사이 비극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중생 유족들은 수사당국의 부실·늑장 수사를 성토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2일 복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피해 여중생 중 한명인 A양 유족이 지난 1일 청주지검으로부터 받은 경찰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사건 발생 당시 청주 청원경찰서는 3차례에 걸쳐 성폭행 가해자 계부에 대해 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보완 수사가 필요하다며 모두 반려했다.


경찰은 2021년 3월 10일 처음으로 피의자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A양 유족이 같은 해 2월 1일 피해를 호소하며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한 지 한 달여 만이다. 그러나 검찰은 계부가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한차례 받은 점으로 미뤄 도주 우려 등이 없다면서 이를 기각했다.


8일 뒤 경찰은 다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다음 날 "피해자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을 녹화하지 않는 등 절차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지인들과 이 사건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자 내용 등 객관적인 자료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보완 수사를 요구했다.


이로부터 두 달 가까이 지난 5월 11일 경찰이 성범죄 피해가 의심된다는 병원 진료기록부 등을 첨부했지만, 검찰은 이틀 뒤 진술 분석 등을 요구하며 재차 보강수사를 지시했다. 그러는 사이 조사를 받던 두 여중생은 같은 달 12일 세상을 등졌다. 계부에 대한 구속영장은 고소장 접수 113일 만인 5월 25일에야 발부됐다.


수사보고서를 본 A양 유족은 "경찰이 수사를 부실하게 한 점, 검찰이 피해자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임해 수사가 지연된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영장 발부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신속하게 분리됐더라면 두 여중생이 그렇게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 중인 유족 측은 공개된 수사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할 예정이다.


경찰 이미지 ⓒ데일리안

충북경찰청은 전반적인 수사에 큰 문제는 없다면서도 수사 과정에 일부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중 한명이 진술을 거부하며 경찰서 출석을 하지 않아 진술 녹화를 하지 못했다"며 "또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부인했기 때문에 2차 가해 우려 등으로 주변인에 대한 조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피해자가 조사받을 때 학대를 방임한 친모를 동석하게 한 점 등 수사 과정에서 일부 부적정한 부분은 뼈아프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검찰 관계자는 "구속영장을 발부받으려면 객관적인 자료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 보완 수사를 요구했던 것"이라며 "최대한 신속하게 피의자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경찰과 협력했었다"고 말했다.


앞서 대전고법 청주 제1행정부는 A양 유족이 청주지검을 상대로 낸 정보 부분 공개 결정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이 수사보고서 일부를 공개할 것을 명령한 바 있다. 청주 두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계부는 2021년 6월 청주에서 의붓딸과 그의 친구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대법원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친딸이 새 남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딸을 보호하지 않는 등 양육을 소홀히 한 친모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두 피해 여중생은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태준 기자 (you1s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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