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철 "2017년 12월 8일, '언론노조와 한 몸' 기자회장이 최승호 리포트 거부하자 보도국장 날리던 날"

황기현 기자 (kihyun@dailian.co.kr)
입력 2023.09.19 16:18 수정 2023.09.19 16:18

문호철 전 MBC 보도국장, 19일 페이스북에 글 올려

ⓒ문호철 전 MBC 보도국장 페이스북

2017년 12월 8일 예정된 최승호 신임사장의 취임과 함께 사장과 언론노조위원장의 노사협약 세리머니가 있었다.


오전 8시30분 편집회의를 주재한 뒤 만감이 교차했다.


총파업을 이어왔던 언론노조 소속 기자들 대신 뉴스를 채우느라 체력적 물리적 한계치에 다다른 파업불참 기자들.


구내식당까지 파업에 들어가는 바람에 몇 달을 도시락 먹으며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버텨왔던 그들에게 예상되는 모멸과 수모.


무기력한 이 상황에 미안할 따름이었다.


복잡한 심정에 빠져있있는데 당시 MBC 기자회장 왕모 씨(現 워싱턴특파원)가 불쑥 방에 들어왔다.


왕 기자회장 "오늘 사장과 노조가 해고자복직 협약식을 했습니다. 오늘 뉴스데스크에 리포트가 나가도록 해주세요. 리포트할 기자도 준비돼있습니다."


문호철 "그건 곤란합니다. 그정도 뉴스가치가 있다 보지 않습니다. 그건 MBC 내부의 문제일 뿐이지 시청자 국민 모두가 알아야할 기사가 아닙니다. 정히 원한다면 어쨌든 MBC사장으로 최승호가 취임했으니까 취임 기사 단신 처리는 해주겠습니다."


왕 기자회장 "그래요?..알겠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신임 보도국장 발령인사가 났고 나는 보직국장실에서 쫓겨났다.


언론노조와 한몸이나 다름없는 기자회장이 뉴스 취재·편집권을 침해하고 강요하려다 막히자 보도국장을 날려버린 것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보도국장만 해임했고 취재부서장 인사는 하지 못했다.


보도국은 다시 분주해졌다.


밀고 들어온 파업기자님들이 취재부서장과 내근데스크 자리를 점령했다.


'인사발령도 없이 무슨 근거로 이러느냐? 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고 일부 보직자들이 버텼지만 무의미했다.


ⓒ문호철 전 MBC 보도국장 페이스북

당일 뉴스데스크는 일반뉴스로 편성됐다.


기존 앵커들은 사전 통보없이 앵커석을 강탈당했고 김 모 아나운서가 인공치하 첫 一聲을 울렸다.


"저희 MBC는 신임 최승호 사장 취임에 맞춰, 오늘부터 뉴스데스크 앵커를 교체하고 당분간 뉴스를 임시체제로 진행합니다. 저희들은 재정비 기간동안 MBC보도가 시청자 여러분께 남긴 상처들을 거듭 되새기며, 철저히 반성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치밀한 준비를 거쳐 빠른 시일안에 정확하고 겸손하고 따뜻한 뉴스데스크로 시청자 여러분께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정확하고 겸손하고 따뜻한 뉴스데스크'....이후 지난 6년간 '부정확하고 오만하고 공포스러운 불공정과 편파의 뉴스데스크'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날 오전 왕 모 당시 기자회장이 강요했던 'MBC 노사공동선언'은 장장 2분40초의 길이로 양모 기자가 리포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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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3노조에서 나온 성명 제목은 <민주당 방송을 넘어 이제는 '개딸 방송' 하는가>이다.


'치밀한 준비'를 거친 겸손하고 따뜻한 뉴스라는게 결국 이런 방송이었다.

황기현 기자 (kihyu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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