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연·장미란'은 무슨 죄?…정치 양극화에 무너지는 인권 [기자수첩-정치]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입력 2023.08.29 07:00
수정 2023.08.29 07:00

김종민, 개딸 향해 "생각 다르다고

공격하는 건 '탈레반'의 길" 맹비난

노사연·장미란 등 인신공격 시달려

'정치의 양극화' 극복할 방안 찾아야

가수 노사연이 지난 4월 11일 오전 서울 동작구 중앙대병원 장례식에서 열린 원로가수 고(故) 현미 영결식에서 헌화하고 있다.(왼쪽)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이달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체육관광법안심사소위원회에 출석해 자리하고 있다.(오른쪽) ⓒ뉴시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편 갈라서 증오 적대 공격하는 건, 민주주의의 길이 아니라 탈레반의 길, 홍위병의 길"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을 향한 말인가 싶지만, 아니다. 김 의원이 남긴 저 한 마디의 주어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딸)'이었다. 김 의원이 뜬금없이 이런 발언을 내놓은 건 아니다. 문제가 된 건 개딸들이 특정인을 향해 "제정신이냐" "뇌까지 챙기며 살긴 어렵다"는 등 수위가 높다 못해 수준 미달의 비판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신공격성 비판은 정치인들에게 쏟아져도 문제가 된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 정치권에서 지지자들이 상대 당 정치인을 공격하는 일은 쉬이 일어나는 일인 만큼 김 의원도 정치인을 비난한 것을 두고 이 같은 비판을 쏟아내진 않았다. 개딸들의 공세는 가수 노사연 씨와 전 역도 국가대표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을 향했다.


이들이 개딸로부터 인신공격을 받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오로지 한 가지, '윤석열 정부'와 관련이 있어서다. 노사연 씨는 지난 16일 윤 대통령의 부친 고(故)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 빈소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개딸의 '타깃'이 됐다. 개딸들은 노 씨를 향해 포털과 인터넷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등을 가리지 않고 "제정신이냐" "국민이 우습냐" "방송에 나오면 채널 돌리겠다" "노래 안 듣겠다"는 등의 공격을 쏟아냈다.


장 차관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제2차관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인격모독의 대상자가 됐다. 개딸들은 장 차관을 향해 "역도 선수가 뭘 안다고" "운동선수가 뇌까지 챙기며 살긴 어렵다" 등 인신공격에 이르는 '묻지마 비난'을 가했다.


뿐만 아니다. 배구선수 김연경 씨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한창이던 지난 1월 한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김기현 당시 당대표 후보와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개딸들로부터 인신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은 김 선수를 향해 "2찍 김연경 많이 응원했는데 철회합니다" "김연경 2찍이었어? 개념 말아드셨네" "운동만 해서 그런지 이상하게 행동하네요. 나라 생각 좀 해서 처신하시오"라는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얼마 전 국회 소속 연구기관인 국회미래연구원은 한국 정치가 해결할 최대 과제로 양극화를 꼽았다. 특히 이 상황을 분석하면서 미래연구원은 극단적 당파성에 따른 무책임한 정당 정치와 열성적 지지자와 반대자가 지배하는 정치를 지양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각자만의 생각이 있는 것은 좋다. 하지만 거대 양당으로 딱 갈라져서 '네 편 내 편인지'가 모든 사안의 판단 기준이 돼버린다면 그건 민주사회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양극화가 돼버리면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할 이유도 없고, 능력도 없다. 이 사이에서 태어나는 것이 '팬덤정치'고 팬덤에 포함된 이들은 맹목적 지지와 일방적 혐오만을 일삼는다.


물론 각자의 생각은 존중 받아야 한다. 그와 함께 각자의 인격도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나와 생각이 다른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한 번만 더 생각해볼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진정 정치가 추구해야 할 길이 아닐까.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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