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연·장미란'은 무슨 죄?…정치 양극화에 무너지는 인권 [기자수첩-정치]
입력 2023.08.29 07:00
수정 2023.08.29 07:00
김종민, 개딸 향해 "생각 다르다고
공격하는 건 '탈레반'의 길" 맹비난
노사연·장미란 등 인신공격 시달려
'정치의 양극화' 극복할 방안 찾아야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편 갈라서 증오 적대 공격하는 건, 민주주의의 길이 아니라 탈레반의 길, 홍위병의 길"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을 향한 말인가 싶지만, 아니다. 김 의원이 남긴 저 한 마디의 주어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딸)'이었다. 김 의원이 뜬금없이 이런 발언을 내놓은 건 아니다. 문제가 된 건 개딸들이 특정인을 향해 "제정신이냐" "뇌까지 챙기며 살긴 어렵다"는 등 수위가 높다 못해 수준 미달의 비판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신공격성 비판은 정치인들에게 쏟아져도 문제가 된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 정치권에서 지지자들이 상대 당 정치인을 공격하는 일은 쉬이 일어나는 일인 만큼 김 의원도 정치인을 비난한 것을 두고 이 같은 비판을 쏟아내진 않았다. 개딸들의 공세는 가수 노사연 씨와 전 역도 국가대표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을 향했다.
이들이 개딸로부터 인신공격을 받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오로지 한 가지, '윤석열 정부'와 관련이 있어서다. 노사연 씨는 지난 16일 윤 대통령의 부친 고(故)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 빈소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개딸의 '타깃'이 됐다. 개딸들은 노 씨를 향해 포털과 인터넷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등을 가리지 않고 "제정신이냐" "국민이 우습냐" "방송에 나오면 채널 돌리겠다" "노래 안 듣겠다"는 등의 공격을 쏟아냈다.
장 차관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제2차관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인격모독의 대상자가 됐다. 개딸들은 장 차관을 향해 "역도 선수가 뭘 안다고" "운동선수가 뇌까지 챙기며 살긴 어렵다" 등 인신공격에 이르는 '묻지마 비난'을 가했다.
뿐만 아니다. 배구선수 김연경 씨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한창이던 지난 1월 한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김기현 당시 당대표 후보와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개딸들로부터 인신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은 김 선수를 향해 "2찍 김연경 많이 응원했는데 철회합니다" "김연경 2찍이었어? 개념 말아드셨네" "운동만 해서 그런지 이상하게 행동하네요. 나라 생각 좀 해서 처신하시오"라는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얼마 전 국회 소속 연구기관인 국회미래연구원은 한국 정치가 해결할 최대 과제로 양극화를 꼽았다. 특히 이 상황을 분석하면서 미래연구원은 극단적 당파성에 따른 무책임한 정당 정치와 열성적 지지자와 반대자가 지배하는 정치를 지양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각자만의 생각이 있는 것은 좋다. 하지만 거대 양당으로 딱 갈라져서 '네 편 내 편인지'가 모든 사안의 판단 기준이 돼버린다면 그건 민주사회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양극화가 돼버리면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할 이유도 없고, 능력도 없다. 이 사이에서 태어나는 것이 '팬덤정치'고 팬덤에 포함된 이들은 맹목적 지지와 일방적 혐오만을 일삼는다.
물론 각자의 생각은 존중 받아야 한다. 그와 함께 각자의 인격도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나와 생각이 다른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한 번만 더 생각해볼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진정 정치가 추구해야 할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