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판결에 "인간 판사 필요한가?" 회의론 속출…AI 판사 도입되나 [법원의 미래 ①]
입력 2023.07.27 05:04
수정 2023.08.06 05:46
같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천차만별 처벌 수위…시민들 "변호사 수임료 따라 판결 결과 갈린다"
대법 양형기준표 존재하지만 강제성 및 구속력 없고 권고적 성격만 있어…양형기준 준수율 92.9%
'인간 판사 對 AI 판사 누구 고르겠느냐' 설문 조사엔…AI 판사 48%, 인간 판사는 39%
중국 및 에스토니아, AI 판사 도입…국민들에게 신속 법률서비스 제공, 판사는 중요 재판 집중 취지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더라도 각기 다른 형량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지자 국민들은 '고무줄 판결'이라며 사법부에 대한 거센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미 중국과 인도 등의 국가에서는 AI(인공지능) 판사를 도입해 자국민에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과연 인간 판사가 필요한 것인가, AI 판사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7일 법원 등에 따르면 사법부는 지난 2007년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법원에 양형위원회를 설치하고 주요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표를 만들었다. 또 재판부가 양형기준표에 따라 적정형량을 선고하도록 했다.
법관이 반드시 양형위의 양형기준을 따를 필요는 없다. 양형기준은 판사가 형을 정할 때 참고하는 권고적 성격으로 강제성과 구속력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법원조직법 제81조의7 2항에 따라 법관은 이 양형기준에서 벗어난 판결을 하려면 판결서에 이유를 기재해야 한다. 양형위에 따르면 지난해 재판부의 양형기준 준수율은 92.9%에 이른다. 10건 중 9건은 양형기준 내에서 처벌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적정 형량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20년 미성년자 성(性) 착취물 사이트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 사건이 대표적이다. 2020년 미국 사법당국은 손정우에 대해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미국에서 처벌받는다면 징역 50년 이상도 선고될 수 있던 상황이었지만 손정우는 한국에서 재판을 받았고 징역 2년의 처벌만 받았다.
같은 해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혐의로 세상을 뒤흔든 'n번방 사건' 조주빈은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다. 사회적 분위기가 조 씨의 형량 결정에 큰 영향을 줬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두 사람의 형량이 갈린 이유로 '범죄단체 적용 여부'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 두가지를 꼽을 수 있다"며 "특히 사회적 인식 변화 및 강력한 처벌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형량 차이에 주효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동종범죄 전력이 있음에도 벌금형을 받는 경우가 있는 반면 초범이지만 실형을 받는 경우도 있다. 실제 지난 6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공무원 A(52) 씨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A 씨는 2차례 음주운전 전력이 있지만, 법원은 "30년간 공무직에서 착실히 근무했다"는 양형사유를 근거로 밝혔다. 반면 지난해 4월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20대 B 씨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음주운전 전력이 없는 초범이었지만 실형을 살아야 했다.
변호사의 수임료에 따라 판결 결과가 갈린다는 주장은 이미 시민들 사이에선 기정사실화 된 지 오래다. 지난 2021년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국민 법의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법관의 재판은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 비율은 48.2%였다.
'법원에서 선고하는 범죄자에 대한 형벌이 일반적으로 일관성이 있는지'라는 질문엔 '일관성이 없다'는 응답이 86%로 나타났다. AI 판사 제도가 도입된다고 가정할 때 자신이 재판받는다면 '인간 판사와 AI 판사 중 누굴 선택 것이냐'는 질문에는 '인간 판사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39%을 기록했다. 반면 'AI 판사를 선택하겠다'는 답변이 48%로 인간 판사보다 9%p 높게 나타났다.
'형사 재판을 받아본 적이 있다'고 밝힌 C 씨는 "재판 과정 내내 고압적인 재판부 때문에 당혹스러운 적이 있었다. 당시 낮은 자세로 재판에 임했기에 높은 형량을 받지 않았던 것 같다"며 "피고인의 감정과 태도보다는 재판 자체만 집중하는 AI 판사가 공판을 진행했더라면 당당한 태도로 재판에 임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미 중국에서는 AI를 법정에 도입해 도움을 받고 있다. 지난해 7월 베이징 최고인민법원은 중국 법률 시스템의 모든 부분에서 AI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공정원(CAE)에 따르면 AI가 도입된 2019년~ 2021년까지 판사들의 업무는 평균 3분의 1로 줄었다.
인도 역시 대표적인 'AI 판사'를 도입한 나라다. 현재는 일부 지역에서 교통법규위반 사건만 다루고 있지만, 조만간 인도 전역에서 다양한 사건을 다룰 전망이다. 북유럽에 위치한 에스토니아도 소액 민사재판에 AI 판사를 도입해 적용 중이다. 국민들에게 신속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판사들은 더 중요한 사건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