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써라" 상사 말에 회사 출근 안 한 직원…부당해고 인정됐다 [디케의 눈물 94]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입력 2023.07.08 06:23
수정 2023.07.11 09:22

법조계 "사내명령권 가진 관리자 해고 통지하고 회사 알면서 묵인했다면…동의했다고 봐야"

"상사가 '사표 쓰고 집 가라' 말하고, 대표이사 묵인 있었다면…원고처럼 '해고 당했다' 인식할 것"

"근로기준법 따르면 해고 사유 및 시기 서면으로 통지했어야…절차 및 사유 모두 정당하지 않아"

"문제 없이 해고하려 했다면 정당한 절차 밟았어야…귀찮은 일 피하기 위해 회피한 것으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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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를 쓰라는 상사 말을 듣고 출근하지 않은 직원에 대해 회사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내버려 뒀다면 해고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회사가 징계위원회 등 정식 해고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간부의 해고 통보에 사측도 묵인했다는 점에서 "부당해고가 맞다"고 강조했다.


8일 대전고법 제1행정부(이준명 수석부장판사)는 버스기사 A 씨가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은 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지난 6일 밝혔다. 버스기사 A 씨는 2020년 1월 두 차례 무단결근했다가 그해 2월 중순 회사 관리팀장으로부터 사표를 쓰고 집에 가라는 말을 들었다. 재차 사표를 쓰라는 팀장의 말에 '해고하는 것이냐'고 묻자 팀장은 다시 사표를 쓰고 가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고, A 씨는 말다툼이 있은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A 씨는 석 달 뒤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그러나 지노위는 '해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구제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중노위 역시 기각하는 재심 판정을 내렸다. 이에 A 씨는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에서 승소를 얻어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김기덕 변호사는 "법원은 관리팀장이 A 씨에게 '사표를 쓰라'고 말한 것을 '해고의 의사표시'로 봐야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회사에서 명령권을 갖고 있는 관리자가 해고 통지를 했고 회사에서도 그 내용을 알고도 묵인했다면 (해고 통지에) 동의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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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일로 정구승 변호사는 "회사 측이 문제 없이 A 씨를 해고하려 했다면 정당한 절차를 밟았어야 한다. 회사 측이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해고 절차를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며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된다. 만약 상사가 '사표를 쓰고 집에 가라'고 말하고 대표이사가 묵인한다면 A 씨처럼 해고 당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선승 안영림 변호사는 "재판부는 판결할 때 회사가 정식 절차를 거쳐 해고했는지 여부를 따져보고 그 자체로 해고 사유가 정당했는지 확인한다. 두 가지 면에서 모두 흠결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할 떄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절차적으도 해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통지도 안 했으며 사유도 정당하지 않기에 부당해고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변호사는 이어 '직원이 무단결근 2회를 했는데 정당한 해고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실제 법은 조금 다르다. 법원은 판결할 때 회사 측의 해고 사유를 엄격하게 본다"며 "법원이 봤을 때 회사는 힘이 있는 쪽이고 반대로 근로자는 힘이 약한 쪽이다"라고 부연했다.


실제 근로기준법 제26조(해고의 예고)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해야 한다. 만약 30일 전에 예고하지 않을 때에는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또 같은 법 27조에선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 사유와 해고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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