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규제 받는 에코프로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3.06.08 07:07
수정 2023.06.08 07:07

몸집 커지는 기업, 기준은 10년 전 그대로

공정위, 공시대상기업집단 제도 과감히 폐지해야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주식을 잘 알지 못하는 이른바 ‘주알못’이라도 ‘에코프로’라는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2023년 1월 2일 11만원이던 주가가 2023년 4월 11일 장중 80만원을 뚫었었다. 연초 대비 무려 600% 이상 상승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었다. 전년 대비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 급증한 이 에코프로가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기준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이다. 에코프로는 1998년 설립돼 2007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중견기업인데,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증가하면서 에코프로의 주요사업인 이차전지 매출도 함께 상승한 것이 자산 급증의 원인으로 파악된다. 이 회사의 분기보고서를 보면 2023년 3월 기준 경영부문 직원 수는 기간제 근로자 포함 142명에 불과하다. 이런 에코프로와 계열사들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었다는 데 대해 물음표를 던질 이가 많을 것이다. 아직 대규모집단으로 지정될 준비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몸집 커지는 기업, 기준은 10년 전 그대로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기업은 대규모 내부거래 등을 공시해야 하고, 사익편취 규제도 받기 때문에 기존의 사업확장 방식에 제동이 걸린다. 2021년 모 상장사는 공시대상기업집단의 계열사로 편입될 위기에 처하자 독립경영제도를 도입하여 계열사 지정을 면하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공정거래 관련 공시규정이 워낙 까다롭다 보니 전문가가 대처하지 않으면 탈이 나기 쉽다. 허위공시나 부실공시의 경우 공시담당 직원이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동일인(기업 총수)이 징역형 또는 과징금 처분을 받는다. 기업 총수가 직접 공시준비를 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그럴만한 지식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직원이 이 일을 담당할 수밖에 없는데, 직원이 실수하면 기업총수를 감옥에 보낼 수도 있으므로 무척 조심해야 한다.


개선돼 가는 부분도 있다. 지난 5월 23일 공정위는 대규모 내부거래 관련 공정거래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본래 2000년도에 대규모 내부거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의무를 도입할 당시에 기준 금액은 100억원이었으나 2012년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감시가 강화되면서 기준 금액이 50억원으로 강화됐었다. 그간 거시경제와 기업집단 수가 크게 확대되었음에도 ‘대기업 견제’라는 명분하에 기준 금액이 10년 간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다. 다시 상향된 100억원의 기준을 적용하면 전체 대규모 내부거래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5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의 내부거래가 이사회 의결과 공시 의무를 덜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정위, 공시대상기업집단 제도 과감히 폐지해야

더불어 지난 5월22일부터는 개정된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 심사지침’이 시행되었다. 이 심사지침은 ‘사익편취 규제’로 널리 불리는 공정거래법 제23조의2의 내용을 사업자들이 잘 이해하고 지킬 수 있도록 만든 가이드라인으로부터 시작해 심사지침으로 제정된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심사지침이 법률과 시행령에서 위임받은 사항보다 더 큰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리를 제한하는 등 오히려 규제를 강화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일감 몰아주기의 경우 법령은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 또는 ‘합리적 고려’ 중 하나만 만족하면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인정했지만, 기존 심사지침은 양자를 모두 만족해야 하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또한 일감 몰아주기의 ‘효율성 증대’ 예외 인정조건도 시행령보다 엄격하게 해석했다. 이번 개정 심사지침에서는 관련 규제들을 법이나 시행령에 맞는 수준으로 정비했고, 최근 대법원 판결을 반영해 ‘부당성’의 판단기준도 구체화하였다.


올 초 공정위는 주요업무 보고계획에서 대기업집단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계획 중 내부거래 공시대상 기준금액 상향과 사익편취 심사지침 개정이 있었다. 남은 과제는 위 에코프로의 경우처럼 아직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기준 조정이다.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제도의 자산규모 5조 원 기준은 2009년에 도입됐다. 당시 국내총생산은 1050조원이었고 현재는 약 2150조원으로 두 배 상승했다.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기업집단도 2009년 48개에서 2023년 82개로 1.7배 증가했다. 이 추세 대로라면 공시대상기업집단 수는 조만간 100개가 넘을 것이다. 현재 82개 대규모기업집단의 소속회사만 해도 3000개가 넘는다. 공정위가 계속 일 욕심을 부리면 공정위 조직은 점점 더 비대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공정위 규모만 마냥 키울 수도 없다.


경제 규모는 나날이 커지는데 제도는 계속 한 자리에 머물러있어서는 안 된다.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제도를 폐지하고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하나만 운영해도 현 공정위 인력으로는 벅찰 것이다. 공정위의 과감한 다운사이징 조치를 기대한다.

글/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