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의 눈물 57] 사람 얼굴에 개 합성 유튜버, 모욕죄 무죄…"풍자·해학과 구분"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입력 2023.03.02 05:02
수정 2023.03.02 18:02

대법 "피해자 불쾌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사회적 평가 저하시켰다고 단정 어려워"

법조계 "재판부,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 깍아내리지 않고 풍자·해학에 가깝다고 판단"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행위에 이르지 않았다고 본 것…조롱, 희화화 대상에 조금 열려 있는 추세"

"욕설 더해졌으면 모욕죄 성립했을 것…모욕죄, 표현의 자유 제약하는 측면도 있어"

ⓒgettyimagesBank

다른 유튜버의 얼굴에 개를 합성한 것은 모욕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비난이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 혹은 지위를 실추시켰다면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겠지만 풍자나 해학과는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격 모독에 대한 기준도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사법부의 융통성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유튜버 A씨의 모욕 혐의 중 일부를 무죄로 판단하고 나머지 혐의에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앞서 A씨는 2018∼2019년 유튜브 채널 영상에서 다른 유튜버 B씨와 C씨를 모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B씨를 '사기꾼', '먹튀 하려고 작정한 애'라고 욕설하고, C씨의 얼굴 사진엔 개 얼굴 그림을 합성해 20여차례 자신의 동영상에 노출했다.


1심과 2심 모두 개 얼굴을 합성한 부분은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B씨를 모욕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도 "해당 영상이 피해자를 불쾌하게 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객관적으로 C씨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적 표현을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조계는 재판부가 피고의 행위를 모욕이 아닌 '해학적 표현'으로 판단한 근거에 주목했다. 법무법인 주원 조상규 변호사는 "모욕죄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실추시키는 행위가 입증됐을 때 성립한다. 재판부 입장에서는 피고의 행위가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를 깎아내리지 않았다고 보고, 풍자 혹은 해학적 표현에 가깝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나아가 피고가 개 얼굴을 합성해 붙이긴 했지만, 그러면서 피해자의 얼굴을 가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판례를 보면 피해자를 향한 근거 없는 비난 행위가 입증됐을 경우에는 확실한 처벌을 하지만, 조롱이나 희화화의 대상에 대해서는 조금 열려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조 변호사는 "악플러들이 조직적으로 모여 개인을 근거 없이 비난하거나 인신공격하는 경우 대부분 처벌되고 있다. 다만 자신이 다수에게 알려진 공인이라면 강도 높은 인신공격이 아닌 가벼운 풍자나 해학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고 본다"며 "이번 판결은 모욕과 명예훼손, 해학적 표현 등을 유형별로 정리한 것"이라고 전했다.


대법원 ⓒ뉴시스

법무법인 반우 정혜승 변호사는 "합성된 그림을 제3자가 봤을 때도 개인의 평가 가치가 하락할 만한 영상이었다면 혐의가 입증됐겠지만, 재판부는 해학의 영역으로 본 것"이라며 "어떤 개 사진을 썼느냐, 합성 영상을 올리며 피고가 어떤 발언과 행동을 곁들여 했느냐 등 행위 맥락에 따라 유무죄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삼승 김성훈 변호사는 "발언의 경위나 목적을 판단했을 때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행위에 이르지 않는다고 판단해 처벌하지 않았다고 본다"며 단순히 무례한 표현이나 풍자, 해학 정도는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으나, 만약 합성 영상을 올리면서 원색적인 육두문자나 심한 욕설이 더해졌다면 모욕죄가 성립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모욕죄란 어떤 의미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측면이 있다. 가령, 신문에 올라가는 만평에서 일부 정치인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고 풍자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어 처벌한다면 자유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이번 사례 판시에 '해학'이란 표현이 담겼다는 것은 '모욕'과 엄밀히 선을 긋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법조계 전문가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비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나 인식이 바뀌고 인격 모독에 대한 기준도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사법부의 융통성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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