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는 기재부, 관심 없는 국회…‘재정준칙’ 마련 안갯속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3.01.18 15:37 수정 2023.01.18 15:38

정부, 장기 국가 재정 계획 마련 속도↑

핵심은 ‘재정준칙’ 마련해 지출 통제

국회, 관련법 3년간 논의조차 안 해

2월 임시국회 통과 쉽지 않을 듯

국회예산정책처가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전체 국가채무와 국민 1인당 국가채무 금액. ⓒ국회예산정책처

정부가 올해 상반기 안으로 ‘재정비전 2050’ 수립에 속도를 높이는 가운데 사업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재정준칙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안갯속 국면이다.


기획재정부는 17일 최상대 제2차관 주재로 서울 무역보험공사에서 ‘2023년 제1회 재정운용전략위원회’를 열어 4가지 큰 틀 아래 본격적인 국정성과 창출에 재정역량 총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이날 회의에서 향후 재정은 ▲건전재정 기조 착근 ▲재정혁신 가속화 ▲당면한 민생·경제 어려움 극복 지원 ▲상반기 중 재정비전 2050 확정·본격 추진이라는 4대 기조 아래 운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정부는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을 최우선과제로 두고 재정 정책을 운용하겠다는 의지를 높이는 데 비해 국회는 이를 규율할 재정준칙 처리에 허송세월(虛送歲月)이다.


재정준칙은 재정 건전성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규범이다. 재정 건전성 지표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정부는 재정 건전화 대책을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세계 90여 개 나라가 재정준칙을 두고 있다.


기재부가 재정준칙 마련을 최초 시도한 것은 지난 2020년 12월이다. 당시 기재부는 2025년부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60%, 통합재정수지비율을 마이너스(-) 3% 이내로 관리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재정 건전화 대책을 의무적으로 마련하는 한국형 재정준칙을 국가재정법에 담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로 넘어간 재정준칙(국가재정법)은 이후 제대로 된 심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2021년 2월 제384회 국회 임시회 때 다른 108개 법안과 함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상임위 심사에 상정되긴 했으나 법안 내용에 대한 검토는 아예 없었다.


심지어 전문위원 보고를 제외하면 당시 회의에서 ‘재정준칙’ 단어는 거론조차 없었다. 국가 전체 재정과 관련한 사안이지만 법안 제출 이후 관련 논의가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았다.


새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9월 13일 기재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GDP 3% 이내로 제한하고,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길 때는 적자 한도를 2%로 억제하는 내용으로 소폭 수정해 법안을 다시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는 여전히 관련 법인 심의를 전혀 진행하지 않고 있다.


기재부는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재정준칙 통과를 희망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론 방기선·최상대 제1·2차관까지 모두 나서 국회 통과를 압박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8월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3년 예산안' 관련 사전 상세브리핑에서 정부 예산안을 발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추 부총리는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재정준칙 관련 국가재정법이 국회에서 활발히 논의되지 못한 거는 유감스럽다”면서 “늦어도 2월 임시국회가 열리면 야당과 국회 협조를 얻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재정준칙은 법인세와 달리 야당에서 논의를 거부하거나 무조건 반대하는 기류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법제화 중요성을 국회에 설명해 드리고 빨리 논의해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기재부 바람과 달리 국회는 재정준칙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의원들로서는 자칫 재정준칙이 선거 공약을 내세우는 데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한 다선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여야 상관없이 선거에 나서는 의원들은 수천억원, 많게는 조 단위 공약을 내세우는데, 재정준칙으로 나랏돈 쓰는 게 까다로워지면 아무래도 그런 공약을 하는 게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야당에서는 재정준칙 도입을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코로나19와 경제 위기가 끝나지 않았고 고금리·고물가·고환율 상황이 내년부터 좋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무슨 근거로 국가재정법을 개정하려는 것이냐”며 “재정준칙을 들고나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은 재정준칙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재정준칙 도입이 늦어지는 사이 국가 재정 적자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기재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월간 재정동향’ 1월호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관리재정수지는 98조원 적자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지표로 실제 정부의 살림살이를 가늠하는 지표로 꼽힌다.


현재 중앙정부 국가채무 또한 18일 기준 1044조51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7조원 가량 늘었다. 이는 지난해 2차 추경 당시 전망치 1037조7000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올해 예산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GDP의 2.56%로 잡았는데 이는 경기가 악화할 걸 충분히 생각하고 재정지출을 확장적으로 일부 가져간 것”이라며 “이미 재정지출을 총수입보다 많이 가져간 상황에서는 추경을 말할 게 아니라 재정준칙을 더 도입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법제화가 빨리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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