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이슈]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국가애도기간, 대중문화 ‘올스탑’을 둔 시선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2.11.02 08:06 수정 2022.11.02 08:09

방송·영화·가요계 행사 등 일정 취소·연기 잇따라

"'국가' '기간'이란 이름으로 애도 강제하는 건 불합리"

"공연이 업인 이들에겐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

“대중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딱 이 정도구나 싶었죠.”


지난달 29일 밤, 핼러윈 데이를 맞아 서울 이태원 일대에서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서 희생자(1일 기준)가 156명, 부상자가 151명 발생했다.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해 정부가 11월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면서 대중문화예술계는 그야 말로 ‘올스탑’이 됐다.


업계에선 유독 특정 직종 종사자에게만 생업을 포기하고 강제적으로 애도에 동참하도록 하는 인식이 불합리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공연 기획 관계자는 “애도의 마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그 깊이와 표현의 방식도 저마다 다르다”며 “공동체가 함께 슬퍼하고 위로를 전할 수는 있지만 그 마음에 ‘국가’라는 이름을 붙이고 ‘기간’을 정해 통제하려는 것엔 공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국가애도기간이 지정되면서 연예계의 행사는 취소와 연기가 잇따르고 있다. 가장 먼저 방송가에서는 SBS ‘더 리슨: 우리가 사랑한 목소리’의 첫 방송이 연기됐고 ENA ‘얼어죽을 연애따위’ ‘씨름의 제왕’,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줄 서는 식당’ ‘우리들의 차차차’ ‘회장님네 사람들’ ‘놀라운 토요일’, TV조선 ‘화요일은 밤이 좋아’, MBN ‘우리들의 쇼10’, MBC ‘라디오스타’, EBS ‘자이언트 펭TV’ ‘스페이스 공감’, JTBC ‘히든싱어7’, SBS ‘치얼업’ ‘동상이몽’ ‘돌싱포맨’ 등 사실상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이 결방됐다.


또 방송 녹화나 편집 방향에도 변화가 생겼다. KBS는 ‘불후의 명곡’ 등의 녹화를 취소하고, ‘1박 2일’의 경우 핼로윈 콘셉트로 방영 예정이던 회차를 편집해 송출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홍보를 위한 제작발표회나 인터뷰 등의 일정도 애도기간 이후로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가요계도 엑소 첸, 홍진영, 정동원, 용준형, 정은지, 드리핀, 아이칠린, 아이리스, 네이처, 장민호, 크랙시, 펀치, 알렉사, 드렌드지 등이 앨범 발매 일정을 연기했고 장윤정, 백지영, 영탁, 코요태, 성시경, 박재정 등이 콘서트를 취소·연기하거나 예매 오픈을 미루면서 애도에 동참하고 있다.


소속사 차원에서도 SM엔터테인먼트는 ‘에스엠타운 원더랜드 2022’ 행사를 취소했고, 하이브는 기업설명회를 연기했다. YG엔터테인먼트와 싸이가 수장으로 있는 피네이션, 유희열이 이끄는 안테나 등 가요 기획사들도 소속 아티스트의 프로모션이나 콘텐츠 공개 일정을 미루기로 했다.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 K팝콘서트, 코리아세일페스타 개막식 행사, 스트라이크 뮤직 페스티벌 등 페스티벌도 취소됐다.


사실 참사가 발생하면 대중문화예술계가 멈추는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다.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이 ‘흥’에 있고, 공연은 ‘축제’라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활동을 강행하면 여론의 비판을 받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의 의지로 일정을 취소하면서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유독 대중문화예술계에 일정 취소만이 애도인 것처럼 강요하는 분위기에는 불합리하다는 지적에도 공감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공연 안에는 예술인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스태프들의 생계가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생계 활동을 누가 비판할 수 있냐는 말이다. 공연을 한다고 해서 희생자들을 애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수 생각의 여름(본명 박종현) 역시 이와 관련해 지난달 31일 자신의 SNS에 예정된 공연을 그대로 진행할 것을 밝히면서 “예나 지금이나 국가기관이 보기에는 예술 일이 유흥, 여흥의 동의어인가 보다. 관에서 예술 관련 행사들(만)을 애도라는 이름으로 일괄적으로 닫는 것을 보고 주어진 연행을 더더욱 예정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연이 업인 이들에게는 공연하지 않기뿐 아니라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다. 하기로 했던 레퍼토리를 다시 생각하고 매만져본다. 무슨 이야기를 관객에게 할까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그것이 제가 선택한 방식이다. 모두가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말하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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