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방송 뷰] 식상했던 오디션, ‘주식 열풍’ 업고 기사회생할까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2.09.16 14:08
수정 2022.09.16 09:16

가수의 재능이 곧 주식...'아티스탁 게임' 10월 론칭

‘오디션=식상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진부하다는 시청자들의 푸념 속에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은 계속해서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방송사들은 저마다 ‘이전과는 다른 오디션’이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사실상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이 가운데 오디션과 ‘주식’을 결합하는 색다른 시도가 나왔다.


엠넷은 시청자들이 유저가 되어 가수들의 재능을 평가하고 그 가치를 거래하는 트레이딩 게임 형식의 ‘아티스탁 게임’을 10월 론칭한다고 밝혔다. ‘아티스탁’은 아티스트(Artist)와 스탁(Stock)의 합성어로 가수의 재능이 곧 주식이 되는 게임이다.


최근 중장년층뿐 아니라 2030세대 사이에서 주식 열풍이 뜨겁게 불면서 방송가는 이미 이 같은 흐름을 다양한 콘텐츠로 담아내고 있다. ‘개미는 오늘도 뚠뚠’(카카오TV) ‘개미의 꿈’(MBC) 등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서 경제 관련 소재를 다루면서 무리한 투자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나왔지만, 분명 프로그램들은 꾸준히 조회수를 올리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샀다.


조금 뒤쳐진 느낌이 있긴 하지만, 엠넷은 트렌드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쫓는 방송사임엔 틀림없다. 앞서 서바이이벌 프로그램에 ‘국민 투표’라는 시스템을 먼저 도입해 신드롬을 일으킨 것도 엠넷이었다. 2010년을 전후해 오디션 열풍을 선도했던 엠넷 ‘슈퍼스타K’가 가장 많은 스타를 배출하며 '롱런'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아티스탁 게임’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국민 투표’와 같은 시스템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직접 투표하면서 우승자를 가려냈듯, ‘아티스탁 게임’ 역시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가진 재능의 가치를 직접 매겨 우승으로 이끄는 것이다. 주체적인 성격의 케이팝 팬덤의 성향을 그대로 흡수한 시스템이다.


오디션의 트렌드를 이끌었던 엠넷은 앞서 ‘프로듀스’ 시리즈를 방영하면서 ‘투표 조작’ 혐의 등으로 이미 ‘오디션 명가’ 타이틀을 잃은 지 오래다. 이후 다양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내놓았지만 이 오명을 좀처럼 씻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벌써부터 프로그램을 향한 우려도 나온다. 결국 가수가 하나의 주식 종목이 된다는 설정 때문이다. 엠넷은 보도자료를 통해 ‘48인의 가수를 판매한다’ ‘가격이 높은 자만이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유저의 선택을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있다.


‘재능에 가격을 매긴다’는 것이 자칫 아티스트를 단순 ‘상품’으로 활용하는 자극적인 연출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돈이면 뭐든지 살 수 있다는 이시대의 극단적인 세태를 꼬집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과 ‘재능’을 상품화하면서 사고파는 형식의 프로그램은 출연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또 다른 우려도 있다. 현재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웹소설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과 콘셉트가 유사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웹소설에서는 박문대로 깨어난 류건우가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재상장! 아이돌 주식회사’에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이 프로그램과 ‘아티스탁 게임’의 구조가 매우 흡사하다.


더구나 엠넷은 앞서 ‘로드 투 맥스’를 통해 팬들에게 과도한 투표를 요구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물론 취지 자체는 대중이 알지 못하는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의도였지만, 사실상 ‘팬덤 영업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에 ‘아티스탁 게임’ 역시 결국 같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엠넷이 이런 우려를 씻고 오디션 명가의 타이틀을 다시 가져올 수 있을지 관심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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