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영화 뷰] “‘한산’ 흥행 장애인에겐 먼 이야기”…‘배리어프리’ 갈 길 먼 영화관
입력 2022.09.08 11:10
수정 2022.09.08 11:11
장애인단체, 영화관 더딘 변화에 개선 촉구
영화관 “업계 전체 노력 있어야…시간 필요하다”
이번 여름 극장가에는 영화 ‘한산: 용의 출현’과 ‘헌트’를 비롯해 ‘비상선언’까지. 여러 편의 대작들이 개봉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 즐거움에서 배제된 이들도 있었다.
시·청각 장애인의 영화 관람을 위해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하는 배리어프리 버전의 영화들이 턱없이 부족해, 장애인들은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 “우리도 영화를 보고 싶다”고 호소 중인 이들이지만, 아직 갈길이 먼 상황이다.
소송 이겼지만…여전히 영화 볼 권리 호소 중인 장애인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연) 등 7개 단체는 지난달 29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장애인 권리는 뒷전, 시간 끌기 시범사업 강행 중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규탄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지난 1일에는 CJ CGV 왕십리점에서, 5일에는 메가박스 상암점 앞에서 ‘장애인의 영화 볼 권리’를 외쳤다.
앞서 6년에 걸친 소송 끝에 승소했지만, 여전히 더딘 변화에 빠른 변화와 개선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25일 서울고법 민사5부(재판장 설범식)는 시·청각 장애인 4명이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를 상대로 제기한 차별구제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300석 이상의 좌석 수를 가진 상영관, 복합상영관 내 모든 상영관의 좌석 수가 300석이 넘는 경우 1개 이상 상영관에서 총 상영 횟수 3%에 해당하는 횟수만큼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영화 상영업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영화 상영 시 자막과 음성해설을 제공할 의무를 가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장추연은 “영진위는 영화관사업자들이 차별행위를 중단하고 빠르게 장애인의 영화관람권 보장을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 할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동시관람 상영시스템에 대한 시범상영 및 수용성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나서면서 장애인의 권리를 다시한 번 막아서고 있다”며 이에 항의하기 위해 다시금 거리로 나서게 됐다.
물론 지금도 영진위에서 한국농아인협회, 한국시각장애인협회, CJ CGV, 롯데시네마, 작은영화관 등과 함께 개봉 영화에 한글자막‧화면해설 등을 오프라인상영관에서 지원하는 ‘가치봄’ 등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를 제공하고는 있다. 그러나 그 편수, 횟수는 지나치게 적으며 그마저도 주말이 아닌, 평일 오후에만 시간표가 집중돼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유발 중이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대중들의 일상을 파고든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넷플릭스는 화면해설, 폐쇄형 자막을 적극 도입하면서 장애인들도 ‘함께’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물론 티빙, 웨이브 등 국내 OTT들은 아직 더디지만, 순차적으로 배리어프리 버전의 숫자를 늘려나가거나, 늘리겠다고 밝히면서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더 멀어진 장애인 영화관람권…영화관은 “시간 필요해”
반면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았던 영화관들은 이 흐름을 역행 중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에 멀티플렉스 3사(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와 이외 영화관을 포함해 ‘가치봄’ 영화를 상영한 횟수는 총 116회였으며, 상영작품 수는 8편이었다. 이 역시도 부족한 숫자였지만 2021년에는 47회, 상영 작품 수는 4편으로 더욱 줄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연도별 박스오피스기준 50위권 안에 드는 영화 중에서 상영된 비율은 2020년 12%, 2021년 4%에 그쳤었다. 장애인들은 개봉흥행작 대부분을 개봉 당시에 보지 못한 셈이다.
상영관 관계자들은 1심 당시와 마찬가지로 영화관만의 문제가 아니며, 관련 시스템을 마련할 비용을 마련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 영화관 관계자는 “배리어프리 상영은 제작, 투자, 배급, 영화관이 연계가 돼야 한다. 자막이나 화면 해설은 제작 단계에서부터 고려를 해서 제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극장에서는 콘텐츠가 있어야 상영을 하는 것인데,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장추연이 ‘장애인 동시관람 상영시스템에 대한 시범상영 및 수용성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나서며 장애인의 권리를 다시 한 번 막아서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영화관 관계자는 “개선이 된 부분도 있지만 장애인, 비장애인이 모두 불편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라면서 “현재는 개선을 위해서 매월 두, 세편의 작품을 배리어프리 버전을 선보이는데, 영진위와 장애인 단체 관계자 분들과 함께 협의를 해 시간대를 정하곤 한다. 물론 이것이 부족하겠지만 확대를 위해서는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근본적은 변화를 위해서는 개인 또는 특정 기업이 아닌, 사회 전반의 인식이 변해야 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관계자는 “비용 부담이 제일 큰 부분인데, 적정선을 떠나 비용에 대해 국가를 비롯한 여러 관계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영화는 물론, 사회 전반에 인프라가 필요한데, 개선 위해서는 예산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것 같다. 영화관들도 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에 충분히 공감을 하고 있다. 콘텐츠의 다양성은 물론, 시청권 다양화를 위해서도 업계 전체가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