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디그라운드(113)] 싱어송라이터 몬구의 장르는 여름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2.09.01 07:43
수정 2022.09.01 07:43

네 번째 솔로 앨범 '장르는 여름밤' 발매

동명 에세이도 출간...북콘서트 진행 예정

여름밤에 관한 추억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해질 무렵 가족들과 평상에 둘러앉아 시원한 수박을 나눠 먹는다거나, 무더위에도 코끝 시린 이별을 경험했다거나, 한강 둔치에 앉아 맥주 캔을 부딪치며 하늘의 별을 올려다본다거나 하는 식의 사소한 일상들도 ‘여름밤’을 만나면 뭔가 특별해지는 듯하다.


2003년 12월, 밴드 몽구스라는 이름으로 첫 공연을 하고 이듬해 정식 데뷔 앨범을 내놓은 싱어송라이터 겸 작가 몬구에게도 ‘여름밤’은 특별한 계절이다. 그는 “여름밤에 쓴 곡도 많고 여름밤을 떠올리면서 쓴 곡도 많다. 누군가 내게 어떤 장르의 음악을 만드냐고 묻는다면 여름밤으로 하고 싶다”(에세이 ‘장르는 여름밤’ 中)고 말한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여름전문가 몬구입니다. 8월이 지나기 전 서둘러 ‘장르는 여름밤’이라는 동명의 에세이와 EP앨범을 발표했어요.


-벌써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음악을 하고 있는데요. 데뷔 당시를 돌아본다면 어떤가요?


(데뷔는) 모든 게 신기하고 떨렸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데뷔 시절의 그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어요. 지금도 꿈에 나와요. 데뷔한 나이가 이른 편이라 어디서나 막내였어요. 그래서 주변에 좋은 형과 누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신해철 형님은 저희에게 큰 도움을 주셨죠. 앨범이 나오면 ‘고스트네이션’이라는 공중파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하고 초대해주셨어요. 그 덕분에 홍대를 벗어나 부산까지 공연을 다닐 수 있었어요.


-음악을 해오는 그 과정에서 현실과 타협해야 하거나,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처음 음악을 시작하면서부터 음악을 그만 두는 선배들을 봤어요. 왜 그만 두게 되는지 궁금해서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항상 대답은 ‘현실’이라는 두 글자였어요. 그 현실은 결국 ‘돈벌이’라는 세 글자가 되기도 하죠. 저도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음악을 그만 두게 될까 두려웠어요. 그래서 작전을 세웠죠. ‘음악을 계속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자. 그러니 지금부터 미리 현실과 적당한 타협을 하면서 음악을 계속 하자. 만약 음악으로 돈벌이 안 되어도 내 의지만 있다면 음악을 계속할 수 있게’라고 말이죠. 인디뮤지션에게 대박은 로또의 확률이에요. 저는 로또의 기적을 믿지 않아요. 대박보다는 생존에 목적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음악을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어요. 사실 음악 말고 딱히 관심 있는 게 없기도 하고요.


-슬럼프 중 가장 위태로웠던 한 시절을 꼽자면?


바로 기억나요. 성대폴립으로 공연에서 갑자기 평소 부르던 곡인 ‘나빗가루 립스틱’을 제대로 부를 수 없게 되었을 때 정말 창피하고 슬펐어요. 우울한 마음으로 그 다음날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기대했지만 결국 치료될 때까지 세 달이 걸렸어요. 그 기간 동안 공연도 녹음도 모두 쉬어야 했어요. 그 시간이 슬럼프 같아요.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계기, 원동력이 있다면?


그때, 좋아하는 음악을 오래하려면 건강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로 제 몸의 한계를 알고 러닝을 시작했어요. 그 계기로 러닝을 발견한 건 참 다행이에요. 오래달리기는 거의 유일한 취미거든요. 지금도 매주 10-15km씩 뛰고 있어요.


-밴드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솔로 활동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취향이 강한 편이에요. 그래서 제 취향대로 여름궁전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네온스라는 이름으로 전자음악을 내기도 하고, 몬구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계속 만들고 있어요.


-밴드 활동과 솔로 활동에 있어서 스스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밴드는 무척 재밌지만 조금 귀찮아요. 솔로는 더 편하지만 덜 신나요. 밴드는 확실히 멤버들의 화학작용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폭발할 때가 있어요. 그 순간은 정말 황홀해요. 하지만 때론 의견과 시간을 조율하느라 지칠 때도 있어요. 반면 솔로 활동은 제 의견과 취향으로 만들기에 편하지만 창작을 하거나 특히 공연을 할 때 덜 신나요. 보이고 들리는 에너지도 적고요. 세상 모든 게 그렇듯 밴드와 솔로에도 일장일단이 있나 봐요.


-네 번째 솔로 앨범 ‘장르는 여름밤’은 어떤 앨범인가요?


‘우주는 사랑이야’와 같은 여름밤을 가득 채우는 우주의 기운이 가득한 앨범이에요. 더불어 몽구스 초창기 시절의 감성을 소환해서 완성한 앨범이에요. 몽글몽글하면서 시원해요.


-이 앨범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일종의 자동반응이에요. 여름이 오면 반팔을 입게 되는 것처럼 여름이 오면 꼭 공연을 하고 앨범을 내고 싶어요. ‘내가 사랑하는 지금의 이 여름밤을 기념해야지’하면서 앨범을 기획해요.


-앨범에 ‘여름밤의 다양한 표정’을 담았다고 했는데요. 몬구 씨가 본 표정들이 정확히 어떤 것들일까요?


여름밤의 풀잎들은 당당해요. 밤바다의 사람들은 취기 어리고요. 소나기가 내리는 풍경은 혁명 같아요. 밤공기에 번진 가로등은 탐스러운 밤의 열매고요. 여름밤의 공기는 무한히 팽창할 거 같아요. 그리고 우리네 눈물로 가득 찬 한강은 유유히 흐르죠.


-평소 ‘여름밤’에서 많은 영감은 얻는다고 하셨어요. ‘여름밤’에 어떤 특별한 것이 있나요?


그 공기만으로도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요. 얼어붙은 마음은 미움이나 두려움 같은 것이죠. 얼었던 마음이 녹은 그 자리를 용기와 새로운 바람이 대신 채워요. 그래서 여름밤에는 마음과 몸이 자유롭고 건강해요. 이 정도면 그냥 여름만 있는 나라에 가서 사는 것도 좋을 거 같긴 해요.


-타이틀곡 ‘한 잔만 더 마시고 우리 이 우주를 걷자’ 소개도 부탁드려요.


취하면 꼭 걷고 싶어져요. 그렇게 걷는 여름밤의 산책은 우주를 걷는 느낌이 들어요. 까만 아스팔트가 끝도 없는 우주의 바닥이고, 가로등이나 간판들은 빛나는 행성이죠. 배달 오토바이는 유성이고요. 종종 사람이 없을 때면 춤을 춰요. 그렇게 걸으면 마냥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아요. 그런 곡이에요. 이 곡을 가장 잘 설명하는 부분은 맨 마지막 가사에요. ‘우주에 끝에 서서 우리 여름을 춤추자’


-수록곡들 중 꼭 소개하고 싶은 곡이 있다면?


맨 마지막 트랙인 ‘은하폭주연합’은 90년대 빈티지 야마하 토이키보드와 아날로그 드럼으로 만들었어요. 요즘 나오는 사운드는 아니에요. 그래서 소개하고 싶어요. 완전 수동 아날로그 방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었어요. 연주할 때 기분이 꽤 좋았어요. 아쉽게도 그 키보드는 지난주부터 전원이 켜지지 않아요. 그래서 내일은 수리점에 가보려고요.


-앨범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이 있다면?


느낌은 보이지 않아요. 보이지 않는 여름밤의 그 느낌을 음악적으로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듣는 사람이 각자의 여름밤을 다시 보는 영화처럼 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존 몬구의 음악과 다른, 이번 앨범만의 차별점이 있다면요?


좀 더 날 것의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정돈이 덜 되게 들리더라도 감정의 뭉텅이를 던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연구했어요. 요즘 유행은 아닌 거 같지만 딱 지금의 제 음악이에요.


-작업 과정에서 힘든 부분은 없었나요?


보컬을 잘 녹음하고 싶어서 독일제 비싼 마이크(u87)를 준비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해도 곡의 느낌이 안 살아서 걱정했어요. 그러다 보컬에는 거의 안 쓰는 빈티지한 성향의 하모니카 마이크(HB52)로 녹음했더니 곡에 착 달라붙더라고요. 지금은 공연에서도 그 마이크를 쓰곤 해요. 그리고 이번 앨범을 위해 준비한 곡들이 꽤 많았는데 유기적이면서도 잘 어울리는 다섯 곡을 고르는 게 힘들었어요.


-또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뮤직비디오도 앨범 작업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뮤직비디오의 2분40초경의 밤씬을 보면 사진 플래쉬가 터지는 것 같은 장면이 나와요. 그게 사실은 마른번개에요. 뮤직비디오 찍는 날에 번개가 치고 비도 너무 많이 왔어요. 그런 악천후에도 촬영해주신 youth young 감독님과 스태프들, 배우님 감사해요.


-앨범과 함께 에세이 출간도 앞두고 있죠. 이번 앨범이 에세이의 인트로 같은 느낌일까요?


둘 모두 타이틀이 ‘장르는 여름밤’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앨범은 여름밤 저의 무의식의 느낌이고, 에세이는 의식의 느낌이에요. 에세이는 여러 이야기와 에피소드가 잘 정리되어 담겨 있어요. 음악적인 책이라고 생각해요. 언제 어디서든 이 책을 읽는다면 잃어버린 혹은 잊고 있던 여름밤이 떠오를 거 에요. 물론 여름밤을 좋아한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하지만요.


-책을 쓰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 같은데.


꼭 마라톤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아직은 글쓰기가 노련하지 않아요. 그런 제가 꾸준한 리듬으로 오래 글을 쓰는 건 어려워요. 그래서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고, 마라톤 거리인 42.195km를 한 번에 뛰는 게 아닌 1km씩 나눠서 42번 뛴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앞서서도 산문집을 발간했어요. 책과 음악, 어떤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읽거나 듣는 사람이 감정에 동의가 일어난다는 게 신기해요. 마음의 일이기 때문에 더 신기해요. 분명 각 개인이 성향과 환경이 다른데 어느 순간 같은 감정을 가진다는 게 멋져요.


-이번 앨범과 책,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우와. 여름밤이다”라고 한 번이라도 말해본 적 있는 분들 모두에게 추천해요.


-앞으로의 활동도 궁금합니다. 밴드 활동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걸까요?


밴드활동은 아직 계획에 없어요. 몽구스와 스타리아이드 멤버들과는 아직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응원을 전하고 있어요.


-솔로 몬구로서의 활동 방향성은요?


큰 욕심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오래 하고 싶어요. 그래서 러닝을 하고 글을 쓰게 된지도 모르겠어요. 러닝은 음악적 체력을 유지시켜주고, 글은 음악적 시선과 사유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든요.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음악을 만들고 싶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어요. 방금 큰 욕심 없다고 했는데 이거 큰 욕심이네요(웃음). 아, 최근에는 출판사와 ‘장르는 여름밤’ 북콘서트를 계획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몬구의 최종 목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 최종목표와 장래희망은 ‘자연사’하는 것이에요. 가치 있는 삶에 대한 확신은 점점 옅어져요. 대신 무의미함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더불어 음악적인 사람이 되어서 한강처럼 잘 흐르고 싶어요. 그리고 최종목표인 자연사할 때까지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기를 희망해요. 물론 제 자신도 포함해서요.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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