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초점] "한국 작곡팀, 데모곡 단어까지 지분 권리 주장"…위기의 케이팝 작사가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2.07.18 14:01
수정 2022.07.18 14:42

"후배 작사가들에게 이런 대우 물려줄 수 없어" 연대 조짐

국내 시장 안에서 치열하게 다투게 만든 시스템의 문제, 지적도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따르면 공연권 저작권법 기준은 통상적으로 작사와 작곡 각각 41.67%, 편곡 16.66%이다. 하지만 작사가들은 아이돌 그룹 곡에 대한 저작권료 배분 시, 규정된 법 그대로 적용되는 일은 그야말로 '옛날 옛적 이야기'라고 입을 모은다.


보통 외국인 작곡가들은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곡을 팔 때 자신들이 붙인 영어 데모 가사까지 완성본으로 파는 조건을 단다. 이에 작사가 개사 창작으로 분류돼 작곡가 87.5%, 작사가 12.5%로 나눠갖는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이 구조는 이제 해외 작곡팀뿐만 아니라 국내 작곡팀과 작업할 때도 적용되고 있었다.


여기에 최근 국내 작곡가들이 데모 곡의 단어까지도 작사가에게 지분을 요구해 작사가들과 갈등이 있었다.


배경은 이렇다. 외국인 작곡가의 곡을 사오기 시작했을 무렵, 한글 가사가 새로 붙었음에도 개사로 처리돼 국내 작사가 지분은 없고 외국인 작곡가 100%로 처리됐었다. 이런 지분 구조의 불합리함 때문에 엔터테인먼트사에서는 한글 작사를 '개사 창작'으로 분류해 지금의 작사가 지분을 12.5%로 나눴다. 임의로 규정됐던 이 지분이 현재까지 굳어진 것이다.


20년 동안 업계에 종사했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 가수들이 일본에 진출했을 초기 무렵, 일본 작사·작곡가들 위주로 곡을 받아야했으며, 한글명으로 된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영미유럽권 이름은 가능했기에 한국 작곡가들이 영어로 된 예명을 사용하게 된 시점부터 공정한 공정한 지분 분배가 흔들렸다는 설명이다.


일본 시장 진출 시, 한국 식의 이름이 앨범에 실릴 수 없어 예명으로 활동하는 작곡가들이 많아졌고, 저작권협회 신탁 코드를 찍어보기 전에는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분 불가한 상황이 됐다. 곡이 발매되기 전까지 확인할 수 없으므로 한국 작곡팀도 외국 작곡팀과 같이 임의로 87.5%의 지분을 암묵적으로 가져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사가 외국에서 적극적으로 곡을 수급하며, 국내 작곡가들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전문성과 분업화를 강화하기 위해 팀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작곡이 집단창작화됨에 따라 자연스레 개인의 지분은 줄었다.


이 같은 상황에 한국 작곡팀들이 최근 데모 가사에 있던 단어나 가사 일부 포함된 건에 대해 지분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일부 작사가들이 반발한 것이다. 작사가들은 "이미 개사 창작이라는 명분 하에 12.5%만 가져가고, 작곡가들이 지분을 더 많이 취하고 있다. 이제 와서 데모 가사 사용을 이유로 작사 지분을 줄일 수 없다"라는 입장이다.


작사가 A 씨는 "원래의 데모 가사도 일부 섞일 수 있다는 조항이 서류상에도 포함돼 있다"라고 자신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일부 작곡가들은 "발라드나 OST 등의 경우 가사가 중요하지만, 아이돌 댄스 곡의 경우 작곡가들의 노력과 시간, 투자 등이 더 많이 들어간다. 이를 고려하고 데모에 있던 중요한 단어가 그대로 들어갔을 때 요구하는 게 무리는 아닌 것 같다"라는 주장이다. 또한 저작권법에 따른 분배 기준도 다시 재정립되어야 할 때라고 바라봤다.


작사, 작곡을 모두 하고 있는 프로듀서 B 씨는 "예를 들어 아이브의 '러브 다이브'의 '숨참고 러브 다이브'라는 콘셉트가 잡힌 단어를 쓴다면 지분을 요구할 것 같긴 하다. 작사가 입장에서 콘셉트 잡는 것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임팩트 있는 단어나 라인이 아니더라도 5줄 정도 넘어가면 작곡가 입장에서는 지분을 요구하는 게 무리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추임새나 의미 없는 단어를 가져간 경우 지분 요구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본다"라고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반면 이를 '도 넘은 행위'라고 바라보는 동료 작곡가들도 존재했다. 유명 프로듀서 C 씨는 "작사는 가사 쓴 사람이, 작곡은 멜로디를 쓴 사람이 취하는 게 맞다. 왜 본인들의 머릿 수가 많아져 지분이 적어지는 걸 작사가에게 강탈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럴 거면 본인들이 작사까지 하면 되지 않나. 못하는 걸 맡겨놓고 대우는 안 하려고 한다. 이렇게 지분율을 망가뜨리면 후배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라고 일침 했다.


현재 일부 경력 있는 작사가들은 이 같은 내용을 공유해 같은 기준으로 행동할 것을 논의 중이다.


작사가 D 씨는 "발라드나 OST를 언급하는 건 단순하게 아이돌 음악보다 돈이 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뭐 대단한 걸 위해 버티는 것이 아니다. 고작 12.5%와 20년 동결인 작사비, 크레딧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라고 토로했다.


작사가 E 씨는 "경력 있는 작사가들이 이를 수용해버리면 신인 작가들에게도 당연시 요구된다. 이제 막 크는 어린 작사가들에게 이런 대우를 물려주는 건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싫다고 말하는 게 기존 작가가들 입장에서도 용기가 많이 필요한 일이라 서로 연대하고 있다"라고 향후에도 강경하게 대응할 것임을 강조했다.


서기준 작곡가는 "작곡이 작사보다 중요하다는데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썸', '으르렁'이 작사가들의 가사 없이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두 영역은 우위를 가릴 수 없다"라면서 현재 이 갈등을 두고 서로를 배척할 일이 아닌, 지금의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를 똑바로 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서 작곡가는 "영화계는 외국 영화의 지나친 시장 잠식을 막고 자국 영화의 시장 확보와 문화 예술 활성화를 위해 스크린 쿼터제를 도입하지 않았나. 우리나라 가요계에도 이 같은 대중 가요 창작자들을 위한 보호가 필요하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말하면서 외국 작곡가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며 그들의 곡을 쓰고 있다. 지금의 87.5%, 12.5%라는 기이한 배분 구조의 시작점이 왜 생겼는지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 볼 때다"라고 전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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