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초심 잃지 말아야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2.07.11 07:07 수정 2022.07.11 06:57

상대의 실정·교만으로 얻은 승리

질문하는 기자 뒤엔 국민이 있다

수석당원의 책임 방기해선 곤란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경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바로 대선에 뛰어들어 승리를 쟁취했다. 그럴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의 남다른 기백과 용기에서 나왔다. 이 같은 개인적 요인과 별개로 더불어민주당 대 국민의힘 정권 경쟁의 결과를 산술적으로만 복기한다면공(功)의 8할은 문재인 정권의 실정과 교만의 몫이었다.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은 문 대통령, 조국·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 이재명 민주당 후보, 송영길 민주당 대표(이상 당시 직책) 등이었다고 하겠다. 단언컨대 이들이 아니었다면 윤 대통령의 오늘이 있기는 불가능했다.

상대의 실정·교만으로 얻은 승리

뻔한 얘기지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대통령직을 ‘원래 내 것’으로 여길 처지가 아님을 (흔한 말로) 뼈 속 깊이 새겨야 한다는 뜻이다. 겸손해지자고 수백‧수천 번 다짐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앉게 되면 금방 스스로를 ‘하늘이 낸 통치자’로 믿어버리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조심성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넘치면서 말과 행동은 가벼워진다.


윤 대통령이 교만해졌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국민 우선, 법치 우선의 통치 이념에도 변화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강령인 ‘국민에게 다가 가기, 법치 바로 세우기’에 너무 충실하려 하는 바람에 스스로 시야를 좁히고 있는 인상이다. 문제가 거기에 있다.


예컨대 인사의 교과서적 제1원칙이 ‘적재적소’인 것은 맞다. 윤 대통령이 늘 역설하는 게 이점이다. 자신은 가장 유능한 인사를 골라 일을 맡기려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언론과 국민들은 편중인사라고 비판한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국민들의 이 같은 인식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 갤럽이 지난 5~7일 실시한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에서 긍정평가가 37%, 부정 평가가 49%로 나타났다. 취임 2개월도 채 안 된 시점에서의 조사 결과다. 긍·부정평가의 역전 현상이 자주 빚어지는 것도 충격이지만 그 격차가 12%포인트나 됐다는 것은, ‘위기 국면’이라고까지 여겨질 정도다.


부정 평가의 요인으로는 ‘인사’가 2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경제·민생 살피지 않음’이 두 번째로 12%에 이르렀다. 이밖에 ‘경험·자질 부족/무능함’이 8%, ‘외교’, ‘독단적/일방적’ 각각 6%, ‘소통 미흡’ 5%로 나타났다(여론조사 상세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 대통령은 출신이나 관계가 아니라 능력을 보고 발탁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국민이나 언론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한겨레는 지난 5월 23일 윤 대통령의 인사 코드를 보여주는 열쇳말 여섯 가지로 ‘검찰, 모피아(재정·금융관료_마피아), MB(이명박 정부 출신), 서울대, 지인(가까운 사람), 남성’을 열거했다. 이후로도 그 패턴이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게 사실이다.


여론조사 결과나 언론 보도나 민심의 일면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반응은 다르다. 지난 4일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회견)에서 지지율 하락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질문하는 기자 뒤엔 국민이 있다

“저는 선거 때도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지지율은 별로 유념칠(하지) 않았습니다.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고, 제가 하는 일은 국민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오로지 국민만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된다는 그 마음만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여론조사 결과에 너무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안 좋겠지만 그렇다고 “별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여론조사에 응하는 국민 따로 있고 윤 대통령이 바라보는 국민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민심의 동향을 늘 살펴야 할 대통령이 이렇게 말해버리면 듣는 국민들은 무시 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마련이다.


장관급 후보자 4명(10일 사퇴의사를 밝힌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포함)이 인사청문회 전후로 사퇴했다. 인사 검증의 난맥상이 드러난 예라고 하겠는데 윤 대통령의 인식은 안이하다 못해 독선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지난 5일 김승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와 관련, 기자들이 ‘인사 실패’를 지적하자 “전(前) 정권에서 지명한 장관 중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고 힐문하듯 되물었다. 이날 도어스테핑에서 그는, 검증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뜻의 질문에 “다른 정권 때하고 한 번 비교해보라. 사람 자질이나 이런 것들…”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식이라면 도어스테핑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윤 대통령의 심정을 헤아릴 수는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를 바라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대통령은 국민의 심정이나 처지를 헤아려가며 국정을 이끌 책임을 진 직책이지 국민더러 ‘나를 이해하라’고 요구해도 되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을 기자들 질문에 대한 반박 기회로 여기는 인상을 줬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기자의 질문은 국민의 질문이다. 대통령은 질문하는 기자의 뒤에 있는 국민을 보고 대답을 해야 한다. 대통령과 기자 사이의 인터뷰가 아니라 대통령과 국민의 대화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기자와 말싸움을 하거나 면박을 주기 위한 도어스테핑은 대통령의 위상‧권위를 훼손할 뿐이다. 어느새 권위의식에 젖어들었다면 이는 자신만이 아니라 정권적 위기이기에 충분하다. 한 표 한 표에 전 생애적 무게를 느꼈을 선거 때의 심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석당원의 책임 방기해선 곤란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도어스테핑이 좀 더 진지해질 것이다. 격의 없이 대하는 것도 좋지만 말이나 행동을 너무 쉽게 하면 무게감이 떨어지고 그만큼 신뢰성에도 금이 간다. 신중할 때는 신중해야 하고, 대통령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은 안 해야 한다. 말이 많아지면 헤퍼 보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말은 한 번 입 밖에 나오면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당연히 대통령으로서의 책임 또한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집권 국민의힘의 내홍에 대한 권위 있는 조정의 책임이다. 여당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자세는 기본적으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곧 ‘국민의힘 정부’다. 과거와 같이 대통령이 여당의 대표직을 맡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석당원으로서의 책임 의식은 분명히 가져야 옳다.


당 대표가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은 상황이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태풍 속으로 집권당이 휩쓸려 들고 있다. 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내놓게 된 게 ‘승리의 저주’ 때문이었다. 국민의힘 앞에도 그 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다. 여당의 위기는 곧 대통령의 위기다.


직접 개입해서 심판을 봐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가적·국민적 차원에서의 ‘이해 조정’이다. 집권당의 지도부가 현명하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조언하고 격려해 주는 일 역시 정권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으로서의 당연한 책무일 것이다. 대변인을 시켜서, 혹은 전화로 특정인에게 뜻을 전하기보다는 직접 찾아가서 다독여 주는 게 바람직하다.


(윤리위원회의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 당 대표, 혹은 최고위원회가 그 결정을 뒤집을 수 있다면 윤리위원회의 존재는 무의미해진다. 제도의 의의가 부정되는 것은 정당의 존립근거가 무너지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정당의 자기부정은 자기파괴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징계는 기정사실로 하되 이준석 대표의 입장과 위상을 배려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노력을 양측이 함께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걸 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치적 지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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