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 물어보니 ㊵] '핏줄이 핏줄을 살해하다'…존속살해 해법은?
입력 2022.06.07 05:06
수정 2022.06.06 10:28
존속살해 범죄 경찰에서 검찰 송치 건수, 해마다 꾸준히 발생
전문가 "대부분 가족의 동질화·소통의 부재서 비롯…사회적 제도 및 갈등 중재기구 선행돼야"
"중형 내리는 혹형주의, 범죄예방 효과 없어…국민참여재판 장점 살릴 필요 있어"
"자녀와 부모의 의견 서로 존중해야…언론, 존속살해 범죄 방법 등 자세한 보도 지양"
존속살해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법원에서는 이 같은 유형의 범죄에 대해 강도 높은 징역형을 선고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중형'을 내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존속살해가 소통의 부재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 같은 갈등을 중재하는 기구를 신설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자신의 아내와 이혼할 것을 강요하며 폭언을 했다는 이유로 60대 아버지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40대 남성이 징역 20년을 지난달 24일 선고받았다. 같은 달 26일엔 뇌병변으로 반신 마비를 앓던 50대 장애인 아버지를 무차별 폭행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 전 국가대표 출신 권투선수가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실로부터 제공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존속살해 범죄 관련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한 건수는 2018년 73건, 2019년 76건, 2020년 70건으로 꾸준히 발생되고 있다. 잠정 통계라 정확한 수치가 산정되진 않았지만, 경찰은 2021년 52건, 2022년 4월까지 29건의 존속살해 범죄를 검찰로 이첩시켰다.
법조인들은 이 같이 지속 발생되는 존속살해 범죄에 대해 높은 징역형을 내리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친자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 마련이 우선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김기윤 변호사는 "부자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프로그램이나 센터, 제도적 장치가 미비했기에 존속살해 범죄까지 이어지게 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해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부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나 치료센터는 현재 많이 시행되고 있다. 성범죄 피해를 막기 위한 센터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부자·모녀 등 친자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막기 위한 장치·기구는 미비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집중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법무법인 이제의 유정훈 변호사도 "존속살해 범죄의 경우 중형을 내리는 혹형주의(엄벌주의)만으로는 범죄예방에 완전히 효과가 있지 않다"며 "미국도 존속살해범에 대해 200~300년 형을 내리는 데 범죄가 없어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민참여재판'의 장점을 살리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천주현 변호사는 "심리 과정에 소수의 직업 법관(판사)에 의해서만 심리가 주도되고, 판결의 이유가 판결서만으로 짤막하게 발표되는 것보다는 배심원들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이 활성화되면 (재판부가) 심리를 실질적으로 신중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천 변호사는 특히 "국민 입장에선 다양한 쟁점에 대해 여러 시각으로 피고인을 신문할 수 있다. 법관들은 다양한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국민참여재판의 장점을 살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존속살해 범죄는 기존에 팽배해있는 '가족'에 대한 동질화 현상에서 비롯된 만큼, 자녀와 부모의 의견을 서로 존중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영남대학교 사회학과 허창덕 교수는 "대한민국에 제도화된 교육과정에서 자녀가 혹은 부모가 사랑하는 상대방에 대한 조건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또 부모와 자식의 성 역할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언론도 존속살해 범죄의 방법에 대해 지나치게 자세하게 보도하는 자극적인 기사는 지양하는 것이 좋다. 오히려 이러한 범죄가 시사하는 사회적 의미가 무엇인지 초점을 맞추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엔 어떠한 것들이 필요한 지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