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결정적 장면㉜] 韓 ‘그대 어이가리’ 그리고 佛 ‘아무르’
입력 2022.05.01 12:16
수정 2023.03.09 02:10
영화가 끝나고 10분쯤은 더 불이 켜지지 않기를 바라는 영화가 있다.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더 필요해서다, 목젖을 타고 올라온 뜨거운 눈물을 서둘러 닦지 않고 싶어서다.
각종 해외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등을 합해 39개의 트로피를 받은 영화 ‘그대 어이가리’(감독 이창열, 제작 ㈜영화사 순수)가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국내 첫선을 보였다. 두 번을 봤는데 첫 번째와는 또 다른 지점에서 눈물이 터지고, 울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두 번째 관람의 결말 부분에서는 솟구치는 눈물을 감출 길이 없다. 엔드크레딧이 오르는 동안 흐르는 배우 선동혁의 구음 타령이 어깨를 토닥인다. 한바탕 씻김굿을 받고 무언가 마음에 진 응어리가 살풀이 되는 개운한 느낌을 안긴다.
‘그대 어이가리’는 노부부의 사랑에 관해, 삶과 죽음에 관해, 우리 인생에 관해 묵직한 주제 의식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무겁지 않게 또 호들갑스럽지 않게 그렸다. 전통 접는 부채를 살포시 펼치는 그렇게 담담히 펼치는데, 부채가 펼쳐질수록 우리네 삶을 닮은 그림과 여백의 미가 잘 어우러진 것이 영락없이 한국화이고 아름답다. 게다가 음성지원도 함께인 화폭이다. 우리의 남도소리와 노동요, 육자배기와 흥타령, 상여소리(만가)가 제2의 주인공이다.
제목 ‘그대 어이가리’는 윤동혁(선동혁 분)이 아내 노연희(정아미 분)에게 하는 말이다. 당신 어찌 가려 하나, 내가 당신을 어떻게 보내나, 결국 나는 당신을 보낼 수 없다는 말이다. 오랫동안 자신의 곁을 묵묵히 지키다 병이 든 아내를 향한 진정한 사죄이고, 영화의 결말에 비춰보면 반전의 제목이기도 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이어 웰다잉(well-dying)에 관한 관심이 고조된 현시점에서 누구나 생각해봄 직한 이야기를 이창열 감독이 전통 한국식으로, 고유의 소리와 장례문화를 통해 제기한다.
건망증이 심해가는 아내의 요양을 위해 동혁은 국악 명인이라는 사회적 좌표에서 잠시 벗어나 오롯이 연희의 남편 역할에 매진하려 하지만 부아가 치민다. 이내 아내가 중병에 들었음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 병이 자기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간병에 심혈을 기울인다. 긴병에 장사 없듯 동혁의 가족은 지쳐가고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 사고에 동혁은 아내와 자신을 위해 또 하나의 선택을 결행한다.
이 결행 부분에서 10년 전 제6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프랑스영화 ‘아무르’(감독 미카엘 하네케, 수입·배급 티캐스트)와 큰 대조를 이룬다. 치매에 걸린 아내, 이를 보살피는 남편과 딸의 고충, 더 흉한 일 겪기 전에 좋은 기억만 지니고 조금이라도 더 꽃같이 아름다울 때 떠나고 싶은 인간의 마지막 바람에 관한 이야기가 ‘그대 어이가리’를 보는 내내 ‘아무르’를 연상케 했는데. 또 두 작품 모두 전 세계 영화제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한데. 결행 부분에서 갈 길을 달리한다.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 차이라 할 수 있고, 한국 문화에서 자라 한국의 정서를 지녔기에 객관적 판단이 애초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영화적으로 볼 때 ‘그래 어이가리’의 결행이 훨씬 아름답다. ‘아무르’에서는 남편이 어떠한 물건을 손으로 직접 들어 자신의 힘으로 아내를 떠나보낸다. 10년 전 칸에서 봤을 때 분명 남편의 크나큰 사랑이 느껴져 공감의 눈물을 쏟았고, 황금종려상을 받지 않을까 추측하기도 했다. 충격적 선택이었지만 제목 아무르, 사랑이 확실하게 전달됐다.
‘그대 어이가리’에서는 아이디어와 이를 표현한 화폭이 기막히다. 남편이 택한 그것도 우리의 것이고, 동혁은 완력을 쓰지 않는다. 마치 동혁은 아내 연희 가슴에 진 응어리를 풀어주듯 진도 씻김굿 길닦음 대목을 부르면서 민살풀이춤을 춘다. 아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진혼곡, 동혁은 하얀 모시 두루마기 한복을 입고 진양조의 상여소리를 부른다. 아내 연희 역시 맘껏 하고 싶은 걸 하고 마치 남편 동혁과 함께 춤을 추듯 몸짓을 한다.
이창열 감독은 이 모든 광경을 뒷모습으로만 잡는다. 두 부부의 춤사위 너머로 드넓은 호수와 산자락이 정지된 수묵담채화처럼 둘러있다. 배우 선동혁의 랩소디가 애절한 공감각을 키운다. 실재와 보이는 현상의 다름, 잔인할 정도의 그 극명한 차이가 주는 ‘영화적 아름다움’이 기막히다.
오랜만에 생의 철학에 관한 담론을 농밀하면서도 수려하게 펼쳐 보이는 작품을 만났다. 인생이 그러하듯 내내 진지하지만도 않고 웃음과 울음이 공존한다. 4개월간 연극 작품 무대에 올리듯 맹연습과 리허설을 거쳐 촬영에 임한 배우들의 호연, 45년간 꾸준히 우리 소리 공부를 해온 선동혁의 노래, 적은 예산을 재능과 열정으로 메운 스태프, 이 모두를 아울러 완성한 이창열 감독. 모든 결과에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