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총리제’ 개념이 모호하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2.04.04 07:50 수정 2022.04.04 07:51

대통령제와 내각제 절충의 흔적

제도적 장식품으로서의 총리직

내각 중심 국정운영제제 갖춰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일 새 정부의 국무총리 후보로 한덕수 전 총리를 지명했다. 한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마지막 총리를 지냈다. 역대 정권에서 중책을 맡았다. 대단히 드문 경우다. 그만큼 역량이 뛰어나다는 뜻이겠다. 국가 요직 인사라는 게 한길 가에 큰집 짓기 같아서 오만 사람이 온갖 말을 하게 마련이다. 국회의 동의를 받는 과정도 험난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거쳤다는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의 협조적 입장이 기대되지만 이 또한 그 때 가봐야 알 일이다.

대통령제와 내각제 절충의 흔적

어쨌든 이제 윤석열 정부 구성원의 면면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윤 당선인은 이미 약속했던 대로 책임총리제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하고 있다. 한 후보자도 그것이 “행정부 전체의 운용에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당선인의 인식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 실천 여부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책임총리제’는 그 개념부터가 모호하다. 총리에 대한 임면권을 대통령이 행사한다. 임명에 있어서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국회가 추천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국무총리의 제도적 지위와 권한도 명확하지가 않다.


“①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②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


헌법 제86조가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대통령의 보좌역이고 대통령의 명이 있으면 행정 각부를 지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다 명확하게 정해진 권한은 국무위원에 대한 임명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 정도다. 국무회의 부의장이지만 그건 독립적인 지위나 권한일 수가 없다.


국무총리는 국민 또는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에 대해 책임을 진다. ‘책임총리’라는 것은 책임을 지고 헌법상의 역할과 권한을 다하는 총리라는 뜻이겠는데 그게 모호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일괄적으로 행정권을 총리에게 위임할 수는 없다. 그건 위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명을 내릴 수도 없는 일이다. 하긴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만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면 ‘책임총리’의 위상을 어느 정도는 확보할 수 있다. 대통령이 국무위원을 임명하고자 할 때는 총리의 제청을 받아야 한다는 게 헌법 규정이다. 그런데 이는 대통령제와 내각제 절충의 흔적에 불과하다.


제헌 당시 국회 헌법위원회 안은 의원내각제였다. 이승만 국회의장은 “내각책임제 하에서는 어떤 지위도 맡지 않겠다”고 국회를 압박했다.

제도적 장식품으로서의 총리직

“그가 대통령제의 헌법을 고집함으로써 내각 책임제 기초 안은 단 30분 만에 김준연(金俊淵) 의원에 의하여 대통령제로 고쳐진 것이다”(송우 편저, 한국헌법개정사).


이미 헌법 초안은 성안이 돼 있었다. 그런데 그 골격이 되는 권력구조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바꾸는 문제가 대두됐다. 국회 본회의에 가져가면 엄청난 논란에 직면할 것이었다.


“그 때 나는 말하였다.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내가 30분 내에 고쳐 놓겠소’하고 연필을 들어 몇 군데 죽죽 줄을 그어 고쳤다.”


위의 책에서 ‘김준연 의원의 기록’이라고 인용된 부분이다.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은 의원 내각제의 핵심적 요소다. 내각제 하에서는 군주나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긴 하지만 그건 형식적 권한일 뿐 실질적으로는 국무총리가 그 것을 행사한다. 그 부분을, 대통령제로 바꾸면서도 남겨 놓았다. 절충적 자세를 보임으로써 국회의 체면을 살려주려 한 것일 수 있다. 대통령중심제 권력구조가 관철된 이상 그건 별로 대수롭잖은 문제라고 여겼을 법하다. 이 점에서 총리직은 제도적 장식품이나 다름없다.


그 제도가 9번의 개헌을 거치면서도 바뀌지 않았다. 역대 정권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논란을 겪었음에도 총리의 제청권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국민직선제 회복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국무총리에게 실질적 역할과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공약을 지치지도 않고 내놨다. 물론 하나 같이 식언해 버렸다.


이번에 다시 책임총리제가 운위되고 있다. 그 요체로 지적되는 게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의 실질적 부여다. 그 헌법 규정만 지켜지면 책임총리제가 구현될 수 있다고들 말한다. 총리가 대통령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장관 감을 물색해서 제청하고 대통령이 형식적 권한으로서 임명권을 행사한다면 내각은 총리에게 장악될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 중심의 권력 구조 안에서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내각 중심 국정운영제제 갖춰야

국민직선 대통령,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이 자기 내각의 구성권을 총리에게 위임하려 할 리가 없다. 바로 그 때문에 총리의 이 권한은 사문화된 채로 존재해 온 것이다. 대통령이 장관 후보를 지명하면서 ‘총리의 의견도 들었다’는 게 뉴스가 될 정도로, 총리는 대개 구경꾼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총리가 그런 권한을 가져야 할 이유도, 명분도 뚜렷하지 않다. 대통령의 보좌역일 뿐인 총리가 조각 및 개각권을 갖는다는 건 무리다.


어느 모로 보든 ‘책임총리제’는 속빈 강정일 수밖에 없다. 새 정부가 역할과 권한의 위임 확대, 인사 제청권 실질화 등의 방법론만으로 접근한다면 머지않아 허상을 드러낼 게 뻔하다. 그렇다면 일단 ‘책임총리제’의 꿈(?)은 접는 게 옳다. 공약까지 했는데 어떻게 그 말을 삼켜버릴 수 있느냐며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문제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로부터의 탈출 아니던가.


이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미 윤 당선인도 공약에서 제시한 일이다. ‘청와대 슬림화’ ‘내각 제자리 찾아주기’에만 성공한다면 윤 당선인의 새 정부는 ‘왕좌’의 유혹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청와대를 대통령의 순수 비서조직으로 개편하고 국정은 내각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들에겐 상징적이든 실질적이든 ‘참모’라는 지위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에게 국정운영의 동반자 겸 참모의 지위를 명실상부하게 부여한다면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의 상당부분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중심제가 갖는 본질적 위험이 극복될 것은 아니다. 다만 그건 또 다른 과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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