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혹평 속 기업 지배구조 개편 ‘시선’…기업가치 제고 핵심은 [국감 자본시장 이슈②]
입력 2024.10.02 07:00
수정 2024.10.02 07:00
정부 정책에 역행 움직임…두산·SK그룹 등 합병 추진
불리한 합병비율 및 계열사 주가 하락에 소액주주 반발
주주가치 훼손에도 지수 편입…보호 확대 목소리 강화
野, ‘이사회 책임 강화·의결권 제한’ 포함된 법개정 추진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이 달부터 진행되는 가운데 국감에서 다뤄질 자본시장 주요 현안들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번 국감에서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 여부 등 세제 개편 문제와 밸류업 정책 및 소액주주 보호, 공매도 제도, 토큰증권발행(STO) 입법화 등 다양한 이슈들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감에서 논의될 자본시장 관련 각종 쟁점 사안들을 총 4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가동했으나 밸류업 정책의 핵심 과제였던 밸류업 지수 공개 이후 형평성 논란에 휩싸이며 연일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밸류업 정책의 목표인 기업가치 제고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내 주요 기업들은 정책 기조에 역행하는 지배구조 개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오는 7일 시작되는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 이슈와 함께 소액주주 보호 및 권익 확대 방안이 중점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과거 삼성물산과 LG화학 등에 이어 최근 두산밥캣·SK이노베이션 등 국내 기업들의 합병·분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으로 기업들의 구시대적인 지배구조가 꼽히는 만큼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역행하는 행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최근 논란을 빚었던 사례로는 두산과 SK그룹이 대표적이다. 공통적으로 두 그룹은 자산가치 및 매출이익을 반영하지 않은 합병 비율로 시장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우선 두산그룹은 지난 7월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인적분할한 뒤 두산로보틱스와의 합병 및 포괄적 주식교환을 거쳐 흡수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두산밥캣 주주들에게 불리한 합병 비율을 제시해 당국의 지적과 투자자들의 비판에 결국 철회를 결정했다.
SK이노베이션의 SK E&S 흡수합병 추진 사례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8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SK E&S와 합병계약 체결 승인 안건을 통과시켰다. 당시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며 반대표를 던졌음에도 SK㈜를 비롯한 주요주주가 찬성표를 행사해 합병안이 통과됐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은 매번 합병가액을 두고 “합병 비율이 대주주에 유리하게 산출됐다”고 반발하고 있다.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의 경우, 두 회사의 합병과 연관 없는 두산그룹 상장사들의 주가까지 모두 끌어내렸다는 시선에 무게가 실린다.
이처럼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거세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기업들이 꾸준히 합병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한국거래소는 국내 증시의 도약을 목표로 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했으나 오히려 논란만 더욱 증폭됐다. 그동안 밸류업 대장주 및 수혜주로 분류되고 밸류업 공시에 적극적이었던 금융주들이 제외된 데 이어 저평가와는 거리가 먼 우량 기업, 주주환원에 소극적인 기업들이 대거 편입되면서다.
무엇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자 주주가치 제고에 노력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선정했다는 설명과는 달리 지배구조 개편으로 소액주주들과 충돌이 있었던 두산밥캣·DB하이텍 등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주주가치를 훼손하며 밸류업에 역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기업이 밸류업 지수에 이름을 올린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자 밸류업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거래소는 연내 밸류업 지수 구성종목을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밸류업 정책의 본격 가동에 앞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인 ‘후진적인 지배구조 개편’이 우선시 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의 지배구조 정상화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뿐 아니라 국내 주식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관문”이라며 “지배구조 정상화 없는 밸류업은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기에 이번 국회에서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한 법 개정이 필히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도 정부가 연초부터 밸류업 정책을 내세우며 기업가치 제고 강화에 힘쓰고 있는 만큼 이번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 소액주주 보호 및 권익 확대 방안 등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제 22대 국회 첫 입법과제로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법’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는 ▲이사회 책임 강화를 위한 집중투표제 확대 ▲이해충돌 안건에서 지배주주 의결권 제한 등이 포함된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최대주주(총수)와 일반주주의 이해상충 상황에서 이사회가 최대주주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고 다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정에 가담하는 사례들을 방지하겠다는 목표다.
야권이 불공정한 합병 방지에 힘쓰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최대(지배)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 뿐만 아니라 ‘독일식 합병 검사인 제도’를 함께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제 3자가 합병 비율을 검사한 뒤 보고서를 작성하는 합병검사인 제도를 통해 주주보호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원에 의해 선출된 합병 검사인은 어떠한 합병 비율이 산정됐는지 어떤 가중치를 부여했는지 등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 서면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만큼 주주보호가 가능한 제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