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캐릭터탐구㉖] ‘명탐정 코난’ 쿠노(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2.03.14 15:31
수정 2022.03.15 01:42


1980~90년대엔 일본 영화와 드라마, 만화책과 애니메이션, 소설을 즐겨 봤다.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빛나게 했던 문화 콘텐츠에 일본산이 한몫했다.


서양, 동양 할 것 없이 추리물을 좋아했던 탓에 ‘명탐정 코난’ 시리즈는 21세기 들어 장년이 되고서도 더빙이 됐든 되지 않았든, 무료든 유료든 전부 결제해서 아이와 함께 즐거움을 나눴다. 정말 오랜만에 “코난이 대학생이 됐어, 딱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실사판 드라마가 왓챠에 있어~”라며 흥분할 일이 생겼다.


지난 1월 10일 일본 후지TV에서 방영을 시작했고, 국내에서는 그로부터 한 달 뒤부터 W채널과 왓챠를 통해 매주 목요일 밤 만날 수 있는 드라마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가 즐거운 비명의 중심에 있다.


제목부터 재미있다. 마치 우리를 아비를 아비라 부를 수 없는 홍길동으로 만들 듯, 너무나 미스터리 장르 드라마면서 미스터리라 부르지 말라 한다. 보는 사람의 심장은 쫄깃하게 긴장시키면서 주인공 쿠노 토토노우(스다 마사키 분)는 본인이 살인범으로 몰리든, 버스로 납치당하든, 빌딩 폭파범과 함께 있든, 귀신을 만나든 흥분은커녕 긴장조차 하지 않는다. 호랑이굴에 잡혀가서 정신을 바짝 차릴 인물이다.


5화까지 공개된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의 줄거리를 통해 본 쿠노의 성격이나 특성을 하나씩 짚어 볼까.


앞서 말했듯 쿠노는 차분하고 담대하다. 동창생의 살인 용의자로 잡혀가서 쿠노가 하는 일은 진범을 잡음으로써 자신의 혐의를 벗는다.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듯이 어떤 낯설고 당황스러운 순간에 처해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납치범에게 “납치를 3시나 3시반까지 끝내 줄 수 있느냐”고 말한다. 납치당한 날이 화가 세잔의 전시회 마지막 날이기에 어떻게든 미술관이 문을 닫기 전에 가서 보고 싶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납치당한 순간에도 실제론 납치범인 남자(가로 씨, 나가야마 에이타 분)의 직모를 보고 너무나 부러워하며 타고난 머리카락인지 퍼머넌트로 편 머리인지를 묻는다. “혹시 그 머리 본인 거예요? 직모라 좋겠네요”. 이 긴박한 상황에 그걸 묻나 싶은데 일명 ‘아줌마 파마’보다 심한 곱슬머리가 콤플렉스이기 때문이란다.


얼마나 심한 콤플렉스이기에 누가 납치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버스 안에서 이걸 묻느냐고. 아니, 유일한 콤플렉스라고 말하는 게 맞다.


쿠노는 중학교 때 곱슬머리를 펴러 간 미용실에 비치돼 있던 잡지에 실린 인터뷰 내용을 기억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고, 빌딩 폭파범이 보낸 메시지의 암호는 물론이고 그 함정까지도 예측할 만큼 분석력이 뛰어나고, 다년간 사건을 수사한 형사가 단 몇 가지 관련 내용만 설명해도 진범을 지목할 만큼 추리력이 뛰어나다. 줄줄이 난수표처럼 읊어대는 숫자들도 듣는 즉시 모두 기억해 복기해 내는 쿠노를 보노라면 ‘맞다, 천재지’ 수긍하게 된다. 귀여운 외모까지 말 그대로 다 가졌고, 한 가지 지니지 못한 게 직모일 뿐이다.


쿠노 토토노우는 카레를 좋아한다. 카레를 먹는 것뿐 아니라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오늘은 크로켓 카레로 할까”, 설렘 가득 오늘의 카레 메뉴를 정해 정성스레 채소를 썰고, 한 냄비 가득 국자로 카레를 젓는다. 요리마저 잘해서 보고 있노라면 침이 꼴깍 넘어가며 ‘나도 오늘 카레를 할까’ 생각하게 되는데, 즐거운 상상은 언제나 깨진다. 카레를 먹을라치면 체포가 되고 긴급한 수사 협조 요청이 온다.


우리는 쿠노가 카레를 만드는 것만 볼 뿐 먹는 건 볼 수가 없다. ‘아, 오늘도 또 못 먹겠네!’, ‘이제 곧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겠군’, 예상이 돼 시시한 게 아니라 카레는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하나의 기제가 되어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그런데도 매번 쿠노가 카레를 만들 때 같이 메뉴를 고르고 야채를 썰고 보글보글 끓는 냄비에 눈길을 붙들리는 건, 배우 스다 마사키가 ‘이제 나는 곧 아주 맛난 카레를 먹을 수 있어!’라는 진심을 담아 만들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만들기만 하고 먹지 못할 것임을 절대 들키지 않는다. 진심을 담은 연기는 통한다.


누구보다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지만 요란하게 잘난 척하는 법 없고, 타인의 눈에 띄지 않게 혼자 조용히 살아가는 쿠노. 맞다, 혼자다. 쿠노에게는 가족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고 친구고 애인이고 보이지 않는다. 너무 잘나서는 분명 아니다. 충분히 타인에 대한 존중과 사회적 배려를 갖춘 쿠노다. 앞으로 펼쳐질 얘기에 쿠노의 상처, 가려져 있거나 많이 극복했을 상처에 관한 얘기가 나올 것이다.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 그 어떤 일. 분명 일회적 사건은 아니고 지속적 가해가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어려움을 딛고 이렇게 멋진 청년, 스스로 삶을 풍부히 영위하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적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너무나 매력 넘치는 인물로.


다양한 변수가 포진된 흥미진진 사건, 복잡한 퍼즐을 풀어내는 스토리가 주는 묘미보다 쿠노 토토노우의 존재 자체가 주는 메시지가 상처받은 많은 이에게 용기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드라마 제목이 ‘미스터리라 말하지 말지어다’인가 보다. 미스터리 장르의 미덕을 능가하는 힐링과 회복의 의미가 담긴 작품이라서.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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