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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발견⑲] 극적 김혜수 VS 사실적 이정은(소년심판)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2.03.12 10:37 수정 2022.03.12 10:38

김혜수 & 이정은 ⓒ출처=네이버 블로그 fallinhosuk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연출 홍종찬, 극본 김민석)에는 동갑내기 배우가 나온다. 김혜수와 이정은이다.


영화 ‘내가 죽던 날’로 호흡을 맞췄던 두 배우는 연화지방법원 소년부의 판사로 등장한다. 판사 심은석으로 분한 배우 김혜수는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책임지는 주연이고, 배우 이성민(부장판사 강원중 분)의 바통을 이어받아 등장하는 나근희 부장판사 역의 배우 이정은은 후반부의 공동 주연이다.


두 배우에게는 커다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시청자의 눈길을 붙들어 세우는 흡입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그 흡입력을 만들어내는 방식 혹은 드러나는 방식에 있다.


두 배우가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는 연기를 보면 김혜수는 매우 극적이고, 이정은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기자가 느낀 이 차이를 온전히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 말하자면 이렇다.


판사 심은석 역의 배우 김혜수 ⓒ넷플릭스 예고편 갈무리

배우 김혜수는 굳은 다짐이라도 한 듯 표정을 극도로 제한하고 걸음걸이조차 조금의 건들댐 없이 정갈하다. 옷도 무채색이다. 심은석 판사가 그나마 감정을 드러내는 건 목소리다. 그것도 평소엔 잔잔한 호수처럼 음의 장단과 고저, 강약에 별다른 변화가 없고 하이라이트에서야 포효하는 사자처럼 ‘으르렁’ 한다. 요동치지 않고 그저 치켜뜬 눈 하나면 매섭기 이를 데 없다.


배우 이정은은 예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선입견에 비춰 부장판사인가 싶게 헤벌쭉 웃다가도 일순간 얼굴을 바위처럼 굳히고 눈에서 레이저를 직선으로 쏜다. 다른 옷과 분장을 입히면 시장통 아주머니의 목소리와 말투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인위적 느낌 없는 자연스러운 발성을 구사하는데 영락없이 부장판사 각이다. 자신의 선택이 정답으로 보이게 하는 힘 덕분이다.


부장판사 나근희 역의 배우 이정은 ⓒ출처=네이버 블로그 gx85200

사실, 두 배우가 캐릭터에 접근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같은지 모른다. 자신이 맡은 인물에 극대의 동일시를 이뤄 극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하는 ‘메소드’ 연기를 통해 ‘박진감’(진짜에 가까운 느낌)을 높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결과는 전혀 다르다. 김혜수가 만들어 낸 심은석은 영원히 ‘소년심판’이라는 극 속에 존재할 것 같고, 이정은이 탄생 시킨 나근희는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만 같다.


어느 쪽이 더 잘한 것이냐, 더 빛나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김혜수식 연기는 고전적이고, 이정은의 연기는 현대적인데, 그 방식이 ‘소년심판’의 심은석과 나근희에 너무나 딱 맞아떨어졌다는 게 중요하다.


판관 포청천보다 엄한 심은석 판사, 고전적 연기의 김혜수 ⓒ넷플릭스 제공

“소년범을 혐오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심은석은 재판을 위해선 열정적으로 온 시간을 넘어 생명마저 마칠 만큼 몰두해 일하지만, 소년범이나 판결에는 언제나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차가운 듯하지만 ‘주먹보다 먼 법’으로 소년들과 우리 사회를 위한 정의를 타협 없이 행한다. 깊은 배려이고 어른의 사랑이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은 ‘판관 포청천’보다 엄격한 호령이다. 사회뉴스 속 판결에 갑갑함을 느꼈던 가슴을 뻥 뚫어 주는 판단력과 실행력,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한 소년부 판사, 이런 심은석을 빚는 데에는 김혜수식 고전 연기가 제격이다.


“소년범 재판은 속도전”이라고 말하는 나근희는 “내 법정엔 감정이 없다”는 원칙을 지니고 있다. 공정한 판결을 위한 신념이었지만 그것은 자신과 재판부의 현실적 편리를 위한 핑계로 종종 활용돼왔다. 나근희의 모습은 겉모습만 여자일 뿐, 생존과 승진에 능한 수컷의 특성이 투영됐다. 실제로 후임 부장판사는 남자였는데 홍종찬 감독에 의해 여성 배우 이정은에게 맡겨졌다. 이정은표 느물느물한 나근희의 모습은 실제 판사들의 모습과 다를지라도 성공과 권력의 속성에 빗대 사실적으로 다가오고, 마지막 반전을 고려하면 주연인 김혜수와 동성의 캐스팅이 적절했다.


현실적 고려가 앞서는 부장판사 나근희, 현대적 연기의 이정은 ⓒ 넷플릭스 예고편 갈무리

생각해 보면 배우 김혜수의 연기는 언제나 극적이었다. 드라마틱 한 인물, 변화무쌍한 인물, 완벽히 빚어진 캐릭터 표현에 김혜수의 정통 연기는 러브콜을 받았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방식이고 검증된 연기법이지만, 동시에 너무 익숙해 잘해 보이기 어려운 표현방식이기에 기본기 없이 덤벼들었다가 배우만 우스워 보이기 쉽다.


배우 이정은은 딕션이나 표정이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말투와 얼굴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처음엔 이 극에, 이 인물에 적합한가 싶은데 순식간에 자신만의 표현법에 우리가 동의하게 한다. 동의를 넘어 너무 리얼하게 느껴지고 이정은이 주는 예상 밖의 변칙 표현이 놀라움을 주기에 낯섦보다는 새로운 재미로 다가온다.


서로를 존중하는 동갑내기 두 배우 이정은과 김혜수 ⓒ김혜수 SNS

한 드라마에 두 배우가 있는데 달라서 너무 좋다. 시청자는 욕심쟁이여서 동시에 서로 다른 색깔의 연기를 볼 때 만족감이 배가 된다. 두 배우가 있는데 드라마 밖에서는 너무 친밀해서 좋다. 그 친밀함이 극 중 인물들의 대립과 반목, 화해와 용서에 복합적 긴장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색과 향이 다르고 연기 좌표가 다른 동갑내기 두 배우, 김혜수와 이정은, 이정은과 김혜수의 이중주를 계속 보고 싶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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