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디그라운드(90)]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에 담긴 박근홍의 자신감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2.02.23 14:02 수정 2022.02.23 14:02

신보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 2월 18일 발매

타이틀곡은 '구호물품 파트2'

KBS2 ‘TOP밴드’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린 게이트 플라워즈의 멤버이자, 현재 ABTB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박근홍이 새 4인조 밴드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Overdrive Philosophy, 보컬 박근홍·기타 리치맨·베이스 백진희·드럼 강성실)로 대중을 만난다. 이들의 첫 앨범명도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다. 박근홍은 이 앨범을 ‘활어회 같은 생생함’에 비유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앨범의 수록곡들을 클럽이나 공연장에서의 연주를 모두 100% 라이브로 녹음한 점이다. 사실 밴드 음악을 100% 라이브로 녹음한다는 게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다. 밴드 구성원의 실력에 대한 신뢰와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바탕이 돼야 한다. 오히려 박홍근은 “과정이 힘들진 않았다”면서 새로운 밴드로서의 작업이 자신에게 새 생기를 찾을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고 말한다.


-새로운 팀을 꾸리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뭔가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난 뚱뚱해’로 유명한 블루스 뮤지션 최항석 형이 기획한 밴드가 있었는데, 그 밴드의 프로듀싱 비슷한 걸 제게 부탁했어요. 그래서 몇 번 멤버들과 만나고 보니 저도 모르게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의 보컬리스트가 되어 있더라고요(웃음).


-새로운 멤버들 소개도 해주세요.


기타리스트 리치맨은 그루브나이스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블루스 뮤지션입니다. 올해 5월에 미국에서 열리는 인터내셔널 블루스 챌린지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는, 젊은 블루스 뮤지션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친구입니다. 베이시스트 백진희는 각종 세션과 공연으로 잔뼈가 굵은 전천후 뮤지션입니다. 어떤 음악에도 맞출 수 있는 실력자죠. 드러머 강성실은 재즈와 힙합을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 테크니션입니다. 록 밴드 출신은 아무도 없네요. 하하. 최항석 형이 아니었다면 평생 볼 일 없었을 멤버들이죠(웃음).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 부르기엔 쉽지 않은 이름이네요.


저희도 너무 어려워서 ‘오버필’로 줄이려고 했는데 아직은 풀 네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게 또 은근히 입에 잘 붙더라고요. 요즘에는 쿨한 게 대세잖아요. 그런 흐름과 정반대로 뜨겁고 거친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의미로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 과잉의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새 앨범명도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죠. 어떤 앨범인지 소개해주세요.


막 썰어낸 펄펄 뛰는 활어를 맵싸한 와사비 간장에 찍어 소주 한 잔에 털어 넘길 때의 느낌을 재현한 앨범이라고 할까요? 생생하고 강렬한 록과 블루스, 그리고 소울 사운드를 공연장에서 직접 듣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00% 라이브 앨범으로 만든 건가요?


맞아요. 평소 잼을 하면 스마트폰으로 가녹음을 하는데, 나중에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녹음하면 음질은 확실히 좋아지지만 그때의 에너지는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느낌을 온전히 살리고 싶어 라이브 앨범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음악 대한 자신감, 밴드 구성원에 대한 신뢰 없이는 힘든 작업일 텐데요.


사실 처음에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멤버들과 평소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공연을 본 적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합주를 시작하자마자 느낌이 오더라고요. 결국 이 앨범을 완성한 것은 밴드 구성원들입니다. 만약 제 솔로 앨범이었다면 완전히 다른 음악이 됐을 겁니다.


-녹음 과정이 고되진 않았나요?


전체 녹음은 서울 남영동에 있는 코리아 블루스 씨어터에서 진행했습니다. 아예 라이브 공연 자체를 녹음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녹음과 달리 소리들을 분리할 수 없었습니다. 아예 후반 작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처음 녹음할 때 모든 파트가 완벽하게 연주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혼자서 반복 녹음하면 힘들고 지루하지만, 같이 연주하니까 재미있더라고요. 뭐,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웃음).


-수록곡들도 소개해주세요.


우선 ‘미세먼지’는 답답한 현실 속에서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처음 곡을 만들 때 드러머 강성실에게 미세먼지스러운 리듬을 쳐달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는데, 거기에 화답해서 브로큰 비트를 치더군요. 그러면 보통은 힙합이 나올 텐데 아무래도 노래를 제가 하다 보니 프로그레시브 록의 느낌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구호물품 pt.1’과 ‘구호물품 pt.2’는 제목 그대로 연작 느낌으로 만든 노래들입니다. 파트1에서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쉽게 희망을 노래한다면 파트2에서는 그게 헛된 희망이었음을 깨닫고 절규합니다. 1960년대 소울 음악을 흉내 내본 노래들입니다.


‘홀로디스코’는 절망 후의 체념이라고 할까, 굳이 예를 들자면 시험 포기하고 신나게 노는 심정을 노래했습니다. 1970년대 펑키-디스코 느낌으로 만들었는데, 앨범 수록곡 중 가장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모르는게약’은 이 모든 게 과연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된 건지를 반문하는 노래입니다. 블루스 뮤지션과 함께 하는 밴드인데 블루스 한 곡 땡기지 않을 수 없죠. 여기에 제 취향을 섞어서 나름 기묘한 곡을 만들어봤습니다. 마지막 부분 연주 때문에 멤버들이 고생 좀 했어요.


-수록곡들이 대부분 현 시대의 삶에서 겪고 있는 이야기들을 주제로 엮여 있어요.


특별한 의도라고 할 것까진 없어요. 뭔가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가 없다 보니 아무래도 제 삶의 이야기들을 또 하게 되었습니다. 현실에 답답해하면서도 앞으로 나설 용기는 없는 내 자신에 대한 답답한 심정, 그리고 그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을.


-앨범 작업 과정도 궁금해요.


예전에는 보컬 멜로디나 기타 리프 같은 것을 먼저 만들고 거기에 살을 더하는 방식으로 곡을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이야기나 상황에 맞춰 곡을 만들었습니다. ‘미세먼지 하면 떠오르는 리듬을 쳐봐’하는 식으로요. 그렇게 하니까 새로운 음들이 나오더라고요. 여기에 즉석에서 곡의 후렴을 만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잼 방식으로 작곡을 해도 후렴은 나중에 만들었거든요. 이번에는 잼을 하면서 전렴을 만든 후에, 마음에 드는 후렴 연주가 나올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예를 들어 녹음 전 멤버들에게 어떤 요구를 했나요?


‘과잉의 철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밴드이고 록의 존재의의가 결국 ‘과잉’에 있으니, 멤버들에게도 최대한 과하게 열정적으로 연주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외에는 전부 연주자 본인에게 맡겼습니다. 그런 능력이 있는 친구들이니까요.


-앨범을 작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자랑은 아니지만, 평소 연습할 때 제가 제일 늦게 오는 편입니다. 그것 때문에 많이 혼나기도 했죠. 그래서 요즘에는 아예 보컬리스트들은 원래 그렇다고 설파하고 다닙니다. 그런데 이번 앨범 작업할 때는 제가 항상 제일 먼저 왔습니다. 뭔가 뿌듯한 동시에 예전에 저를 혼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하.


-새 밴드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한 수록곡은?


타이틀은 제 스타일의 처절함을 잘 표현한 ‘구호물품 pt.2’로 정하긴 했지만, 결국 밴드의 정체성은 ‘미세먼지’에서 가장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서로 잘 모르는 연주자들이 모여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미세먼지’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 완성한, 밴드가 추구하는 가치인 거친 날것의 감성이 잘 살아있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아무래도 ‘구호물품 pt.2’에 정이 갑니다. 제가 가장 잘 표현하는 감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노래니까요.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보여요. 아쉬움은 없나요?


연주도 좋았지만 스털링 사운드의 마스터링 작업이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제가 의도한 1960~70년대 스타일의 균일화되지 않은 역동적인 사운드를 너무 잘 살려주더군요. 보컬리스트가 소리를 지르면 그 압력이 바로 느껴지고 드러머가 필인을 할 때 톰톰의 울림이 온 몸으로 전달되는 그런 것들을. 아쉬움도 물론 있습니다. 아무래도 노래를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죠. 하지만 100% 라이브 녹음으로 앨범을 만들었으니 앞으로 공연을 하면 할수록 더 좋은 소리를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게이트플라워즈, ABTB로도 활동하고 계신데요.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의 음악은 앞선 활동들과 어떤 면에서 차별을 뒀나요?


우선 좀 더 많은 분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같이 따라 부를 수 있는 후렴구를 강조한 노래를 만들기도 했고, 공연에서 많은 분이 공감할 수 있도록 커버 곡도 많이 연주하려 합니다. 이전에 교류가 없었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뮤지션들과 같이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그럼에도 달라지진 않는 보컬로서의 신념이 있다면?


새로운 음악에 대해 동경과 갈망으로 쭉 고민해왔지만, 결국 지금까지 했던 음악이 가장 잘 어울리더군요.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 열심히 활동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열심히 활동하려 합니다.


-새 밴드가 박근홍 님에게 어떤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는지.


실질적으로 제가 모든 책임을 지는 밴드가 처음이라 마치 솔로 데뷔를 한 것 같습니다. 집안의 가장이 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조금은 철이 든 것 같습니다. 물론 밴드 멤버들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죠. 다시 한 번 멤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여러 밴드 활동을 하면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는데요. 이번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라는 밴드로는 어떤 평을 얻고 싶으신가요?


어떤 평을 듣고 싶다기보다는 어떤 평이라도 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로의 새로운 활동도 기대해도 될까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활동이든 하려 합니다. 소규모 단독공연도 자주 하고 싶구요. 우선 3월 11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코리아 블루스 씨어터에서 ‘We Are Heroes’라는 타이틀로 사전예약 무료 공연을 합니다.


-박근홍 씨의 계획, 목표도 궁금합니다.


그간 상황이 상황인지라 거의 활동을 못 했는데, 올해는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 외의 다른 공연도 많이 하고 싶습니다. 아직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게이트플라워즈 활동도 슬슬 준비 중이고요.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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