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배우발견⑱] 주말까지 기다리기 힘들어~김태리!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2.02.22 08:23
수정 2022.02.22 11:45

‘스물다섯 스물하나’ 펜싱은 소재일 뿐, 실패 극복의 힐링 드라마


주말까지 기다리긴 힘들어!

시간아, 달려라~ 시계를 더 보채고 싶지만! mind control!!

1분 1초가 달콤해, 이 배우 도대체 뭐야.

사랑에 빠지지 않곤 못 배기겠어!

온종일 내 맘은 저기 시곗바늘 위에 올라타 한 칸씩 희도에게 더 가까이….


정말이지, 겨우 기다렸다. 일주일, 정확히 6일이 왜 이리 긴지. 1, 2화를 까르르 깔깔 보고 다시 토요일이 되기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정말 더디 갔다.


근데, 토요일 3화, 일요일 4화, 이틀은 어찌 이리 빨리 가는지, 벌써 금주 분을 다 봐 버렸다. 이제 다시 주말을 기다려야 한다. 아이유는 주말까지 기다리긴 힘드니 ‘금요일에 만나요’라고 말했지만, 김태리는 토요일이 돼야 만날 수 있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연출 정지현, 극본 권도은) 얘기다. 처음엔 김태리에게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나희도(김태리 분)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아니, 헷갈린다, 둘 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 맞다 김태리가 나희도이고 나희도가 김태리일 만큼 배우와 캐릭터가 혼연일체 돼 있다.


처음에 김태리표 나희도에게 빠진 이유는 미소가 너무 해맑아서다. 배우 김태리의 딕션(확성과유창성을두루갖춘발음)이 좋은 거야 만인이 다 알지만, 이토록 밝은 에너지를 가진 줄은 몰랐다. 천방지축 개구쟁이의 에너지와 장난기가 보는 이마저 미소 짓게 한다. ‘아! 미소만큼 아름다운 건 없구나!’를 김태리가 나희도를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


약간 비뚤어진 듯 투박하게 자른 똥짤막한 앞머리마저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미소다. 아니, 눈썹 위로 바짝 올라간 앞머리여야 반짝이는 눈과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는 미소가 가림없이 더 잘 보인다. 1960~70년대 ‘검정고무신’ 시절의 앞머리여서 더 아름답다.


두 번째 마음을 빼앗긴 이유는 몸을 잘 써서다. 국내 랭킹 26위의 펜싱선수를 자연스레 연기해서가 아니고, ‘7반 이쁜이’ 문지웅(최현욱 분)과 댄스를 잘 춰서가 아니고, 마치 투스텝을 하는 듯한 리듬감 있는 걸음걸이와 넘어져도 제대로 꽝 넘어지는 몸짓이 그렇게 유연할 수가 없다. 팔을 벌려도 있는 힘껏 활짝, 다리를 뻗어도 허리를 젖혀도 한계까지 쭈~욱 늘린다. 스트레칭 자세를 할 때 그렇다는 게 아니고 연기를 하는 내내 그렇게 몸을 한계치까지 쓴다.


몸만 그러는 게 아니다. 얼굴 표정근육, 고함치는 목청도 아낌없이 다 쓴다. 기뻐서 날뛰어도, 분해서 발을 동동 굴러도, 부끄러워 엉엉 울어도, 다음번을 위해 남겨두지 않고 자신의 전부를 쓰는 모습은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바로 이 순간 내 전부를 쏟아붓는 것도 대단하지만, 지금이 최대치인 것 같은데 다음에 더 보여 줄 게 있다는 자신감도 읽힌다. 사실, 배우 김태리 자신에게는 이런 계산이 없을 수 있다. 매번 최선을 다하는데, 그 속에서 스스로 성장해 최대치가 더 크고 높아져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이런 배우를 보는데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나. 너무 사랑스러워서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다. 아낌없이 장면 장면에, 캐릭터에, 작품에 자신을 던지는 배우, 그렇게 완성된 캐릭터. 김태리와 나희도에 반해버린 세 번째 이유다.


혼자 잘하는 건 절대적으로 어렵다. 둘이 있을 때만큼은 함께 행복하기로 한 백이진(남주혁 분), 엄한 듯하지만 엉뚱하고 엉뚱한 듯하지만 치밀한 코치 양찬미(김혜은 분)가 액션과 리액션의 호흡을 기막히게 맞장구치고 있다.


남주혁은 또래 남자배우들 가운데 독보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데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십분 발산하고 있다. 잘생긴 것도 사실, 연기를 안정적으로 잘하는 것도 맞지만 그 뽀얀 피부와 모델 같은 체형과 전혀 다른 오래된 습지의 고즈넉한 느낌을 지니고 있는데 백이진에게 제격이다. 깊은 내면을 지녔으나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차가워 보이지만 넉넉한 품을 백이진이라는 캐릭터에 남주혁이 드리우고 있다.


무엇보다 나희도가 어떤 인물인지, 우리가 나희도에게 느끼는 해맑은 행복을 시청자를 대표해서 느끼고 표현해 주고 있다. 중요한 건, 더 못난 자가 더 잘난 이를 부럽다는 듯 건네는 말이 아니라 상대의 장점을 헤아릴 만큼 높은 안목을 지녔고 그것을 마음을 다해 칭찬해 줄 만큼 아량을 갖춘 어른이 하는 말로 느껴지도록 전한다. 남주혁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희도: 내가 26등이잖아. 평가전에서 1등을 꿈꾸는 게 말이 안 돼.

이진: 근데, 넌 꾸잖아.

희도: 그치. 난 꿈이 이뤄지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거든. 지고 실패하는 데에 익숙해서.

이진: 그걸 사람들은 정신력이라고 불러. 지는 게 두렵지 않고 실패해도 겁내 하지 않는 그 단단한 마음을 모두 갖고 싶어 한다고. 뺏어오고 싶을 정도로 탐나. 그래서 나도 약해질 때면 네가 보고 싶은 거겠지.


남녀 사이에 멜로 말고도 가능한 장르가 있고, 그런 휴먼 드라마의 와중에도 달달한 멜로를 예고할 줄 아는 힘이 배우 남주혁에게는 있다.


코치와 선수 간에도 참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보일 수 있고, 그 참됨이 흔히 봐오던 ‘진지형’이 아니라 색다른 긴장감을 줄 수 있음을 배우 김혜은이 보여주고 있다. 양찬미 코치는 선수와 수직 관계에 서지 않고 친구처럼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면서도 엄해야 하는 순간엔 타협이 없다. 자칫 일관성이 없어 보일 수 있는 캐릭터를 양찬미의 ‘개성’으로 녹여 내고, 걸쭉한 사투리로 감싸 정이 가는 인물로완김혜은이 완성했다.


그 밖에도 펜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고유림 역의 보나, 전교 1등 지승완 역의 이주명, 백이진의 구김살 없는 동생 이현 역의 최민영이 싱그러운 에너지를 극에 보태고 있다. 특히 보나를 좋아하는 문지웅 역을 통해 이상형 남자의 모습을 느끼함 없이 상큼하게 표현하고 있는 최현욱은 드라마 ‘라켓소년단’ 때보다 한층 살아 있어 반갑다.


물론 아쉬운 대목도 있다. 나희도의 엄마 신재경(서재희 분)은 젊은 앵커일 때는 당차고 멋지지만, 할머니 시절에는 중년이 된 희도(김소현 분)보다 어려 보여 어색하다. 분장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다. 뮤지컬배우 김소현은 장르가 다른 무대에 대한 적응이 덜 끝난 듯 장면마다 연기 편차가 있다. 보는눈이 비슷하다는 건 시청자 평에서도 확인된다.


옥의 티 정도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옥’ 같은 작품이다. 은은한 색감에 매끈한 자태, 뽐내지 않지만 ‘보석’ 같은 드라마다. 펜싱을 소재로 하지만 스포츠 드라마는 아니다. 1998년 IMF 외환위기로 당연하기만 한 일상이 삽시간에 무너졌던 그때를 배경으로, 실패를 극복한 우리의 이야기를 청춘들을 통해 활기 넘치게 그린다.


‘너는 나의 봄’의 정지현 연출가여서 믿고,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함께했던 권도은 작가와의 재회여서 기대가 크다.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하는 캐스팅과 찰떡 연기, 벌써 쏟아지는 명대사들. 이 사랑스러운 배우들을 어떻게 또 주말까지 기다릴지… 시간아, 걷지 말고 달려라!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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