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홍종선의 배우발견⑰] ‘동-정’에 능한 김남길, 이번엔 고독한 프로파일러(악마음)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2.02.11 11:20 수정 2022.03.04 09:17

배우 김남길, 프로파일러 송하영 ⓒSBS 제공


사람 생각은 참 비슷하다. 지난 화요일 기사 계획을 보고하고 첫 문장을 뽑느라 고민하는 사이, 10일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 방영 중인 SBS에서 ‘연기 천재 김남길’에 관한 스페셜 영상을 올렸다. 영상을 보니 기가 죽는다. 배우 김남길의 극과 극 두 연기를 비교한 영상보다 효과적으로, 명징하게 잘 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벌써 고심해서 뽑은 첫 문장도 포기하고 다른 말을 쓰고 있다. 그래도 써야 한다. 김남길이라는 배우를 좋아해서기도 하지만 시즌2(파트2 아니고 시즌2^^)가 반드시 나와야 하고 꼭 보고 싶으니까, 모래알만 한 응원이라도 보태야 한다.


사실 처음엔, 방영을 시작하자마자 얼른 시청하지 못했다. 김남길에 진선규 두 배우 이름만 봐도 1회부터 본방사수해야 마땅하고 김원해에 이대연이 나오는데, 김소진을 TV에서 볼 수 있는데 봐야 마땅했다. 아동 납치, 성폭행 살인…소재가 이를 막았다. 나이 들수록 잔인한 소재를 다룬 콘텐츠들을 주저하게 된다. 그래도 배우들을 믿고 ‘웨이브’에서 시청 시작, 잠을 잊고 6회까지 내달렸다. 베이징 2022 동계올림픽으로 6회에서 방영을 멈춘 게 아쉬울 만큼 시청자를 붙들어 세우는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볼 때는 드라마 자체에 몰입해 봤다. 숨을 죽이고 감상했다. 이미 기대했던 배우들은 기대 이상을 보여 주었고 려운, 정순원, 공성하 등 백지의 마음으로 만난 배우들도 새로이 기대를 줬다. 이제 재개될 파트2를 기다리며 자꾸 곱씹게 됐고, 악의 마음을 읽는 자 ‘프로파일러’의 탄생 과정을 송하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형상화해낸 김남길에 대해 더욱 혀를 내두르게 됐다.


배우 김남길, 사제 김해일 ⓒSBS 제공

간단히 말하면 ‘스페셜 영상’의 내용처럼 극과 극의 캐릭터를 소화하는 김남길의 연기 스펙트럼에 대해 다시금 각인한 것인데. 영상은 소스의 원활한 이용상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열혈사제’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하 ‘악마음’)의 비슷한 장면-전혀 다른 연기를 비교 편집했고, 기자의 머릿속에선 김남길의 데뷔작부터 현재까지의 출연작들에 대한 분류가 이뤄졌다. 그래서 기사 첫머리에 사람 생각이 비슷하다고 적은 것이다. 이런 마음은 영상을 기획하고 편집자나 기자뿐 아니라 ‘악마음’ 시청자분들 역시 이미 느꼈을 대목이다.


배우들에게는 각자 잘하는 영역이 있다. 그 영역이 형성되지 못하면 배우로서 살아남지 못한다. ‘형성하지’가 아니라 ‘형성되지’라고 적은 이유는, 배우들은 모두 자신의 특장을 표현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려 하지만 그럴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그것을 관객과 시청자가 인지하고 인정해서 ‘그의 영역’으로 자리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배우 김남길, 사랑에 빠진 형사 정재곤 ⓒ영화 '무뢰한' 스틸컷, CGV아트하우스 제공

수학으로 치면, 1사분면에서 4사분면에 이르는 XY-평면에서 배우로 살아남은 배우들은 각자의 좌표를 지닌다. 실제로는 X값과 Y값이 만나는 지점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지닌 재능과 매력, 장단점의 여러 요소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좌표를 띤다. 그 배우들 가운데 우리가 스타라 부르는 배우들은 유달리 그 좌표가 빛나기도 하고, 명배우로 인정하는 배우들은 점이 아니라 선을 그린다. 흔히 연기 스펙트럼이 넓다고 하는 배우들로, 여러 좌표의 값을 훌륭히 소화해 그 점들을 이었을 때 하나의 선, 그래프를 그린다.


배우 김남길 역시 하나의 점만을 찍고 있지 않다. 명징하게 두드러지는 두 좌표는 오두방정을 떨며 액션을 하는 김남길, 깊은 상처를 안으로 감추고 애잔한 눈빛으로 오늘을 견디는 김남길이다. 시뻘겋게 뜨겁고 움직임이 많은 ‘동’(動)의 캐릭터와 차가운 잿빛으로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는 ‘정’(靜)의 캐릭터, 그 극과 극의 캐릭터도 한 가지 모습은 아니어서 여러 ‘동’과 여러 ‘정’을 우리에게 보여 왔다. 그 점들이 이어져 자신만의 그래프를 그릴 날이 올 것이다.


배우 김남길, 명의 허임 ⓒ드라마 '명불허전' 포스터, tvN 제공

극과 극으로 보이는 좌표들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화산이다. 활화산 또는 휴화산으로 언뜻 보면 매우 달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용광로가 끓고 있다. 용암을 그 누구보다 맹렬히 발산시켜 드라마 ‘열혈사제’ ‘명불허전’이나 영화 ‘클로젯’ ‘해적: 바다로 간 산적’과 같은 통통 튀는 코믹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터져 나오려는 용암을 꾹꾹 누르다 못해 마치 사화산인 것처럼 영화 ‘후회하지 않아’ ‘폭풍전야’ ‘어느 날’ ‘살인자의 기억법’ ‘무뢰한’ 같은 공허한 캐릭터를 빚기도 한다.


그저 활화산과 사화산이면 보는 재미가 덜하고 배우 김남길이 특별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배우 김남길은 ‘정’의 캐릭터일 때, 휴화산이다. 진짜로 안이 텅 빈 게 아니라 용암이 끓고 있는데 이를 눌러 감추는 데에 그 묘미가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동’의 캐릭터일 때보다 ‘정’의 캐릭터일 때를 더욱 좋아하고, ‘무뢰한’의 정재곤 이후 오랜만에 깊은 물 속이나 늪에 침잠한 채로 혹은 아직 물에 젖어 있고 진흙이 묻은 채로 이 세상을 거니는 것만 같은 ‘악마음’의 송하영을 보는 게 반갑다.


배우 김남길 ⓒ

그 누구보다 뜨거운 온도의 용암을 그 누구보다 멀리 또 힘차게 쏘아 올릴 줄 아는 김남길. 사실 이거 하나만 잘해도 김남길은 배우로서 살아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연기에 대해서만은 은근한 야심가인 김남길은 또 다른 패를 쥐고 있다. 앞으로 이 서늘하면서도 어딘가 인간의 온도가 느껴지고 무채색인 듯하면서도 어딘가 색감이 느껴지는 연기를 할 줄 아는 재능이 큰일을 해내리라 기대한다.


향후를 내다보기 전에 먼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부터 만나보자. 결코 악이 아니지만 ‘악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 자의 특성, 세상과 인간의 정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임무와 소명을 꿋꿋이 행하는 인물을 보는 묘미가 상당하다. 재미있는 건 뜨거운 ‘열혈사제’일 때는 정갈한 가르마 머리, 고독한 ‘프로파일러’일 때는 장발의 퍼머넌트 머리. 그 뒤바뀐 듯한 조합이 적절한 선택이었음을 직접 확인해 보자.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