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일의 역주행] ‘기밀 유출에 보복구’ 이래서 흥미로운 메이저리그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1.09.24 09:18
수정 2021.09.24 09:22

키어마이어, 홈 슬라이딩 과정서 '기밀 문서' 슬쩍

담아두고 있던 토론토는 시리즈 마지막 경기서 보복구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보복’이 나왔다.


탬파베이의 케빈 키어마이어는 23일(이하 한국시간)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열린 '2021 메이저리그' 토론토와의 홈경기서 8회 상대 투수로부터 등을 강타 당하는 사구를 맞았다.


공에 맞은 키어마이어는 상대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 수긍하며 1루로 걸어 나갔다. 이에 토론토 포수와 주심이 키어마이어를 둘러싸 혹시 모를 충돌을 막는 모습을 보였다.


보복구가 자명한 상황에서 양 팀 벤치에서도 선수들이 몰려나왔다. 다만 서로간의 눈치를 본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갔고, 빈볼을 던진 투수였던 라이언 보루키와 필요 이상으로 흥분했던 토론토의 피트 워커 투수 코치가 퇴장하는 선에서 상황이 마무리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계를 지난 21일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 키어마이어는 토론토와의 시리즈 첫 경기서 홈으로 쇄도하다 상대 포수 알레한드로 커크와 충돌했다. 이때 커크의 암 밴드에서 쪽지 하나가 떨어졌는데 이는 토론토의 투구 계획이 담겨 있던 ‘기밀 문서’였다.


이를 발견한 키어마이어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슬쩍 집어 들었고 토론토는 황당하게도 작전을 유출하고 말았다. 이튿날 탬파베이의 케빈 캐시 감독이 사과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토론토의 뒤끝은 시리즈 마지막 경기서 나오고 말았다.


사실 이 경기를 끝으로 두 팀의 올 시즌 맞대결은 마무리가 된다. 따라서 토론토는 키어마이어의 마지막 타석 때 보복에 나선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미국 프로야구는 30개의 메이저리그 팀, 마이너리그까지 더하면 수천 명의 선수들이 뛰는 세계 최고의 야구 무대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선수들과 중남미 출신 선수들까지 더하면 그 수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부분이 얽히고설킨 인적 네트워크로 형성된 한국 야구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물론 일본 야구 역시 한 다리만 건너면 동료이자 선, 후배 관계로 이뤄져있다. 여기에 사회 구성원들이 예로부터 수직적인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어린 선수가 나이 많은 선수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사실상 매 경기 난생 처음 보는 선수들과 마주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빈볼이 아시아 야구에 비해 훨씬 자주 나오며 이를 방지하고자 ‘야구 불문율’을 만들어 암묵적 합의에 나설 정도다.


이번 키어마이어의 ‘기밀 유출’ 역시 충돌이 크게 번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3년 연속 지구 우승을 확정하며 자축연을 벌이고자 했던 탬파베이와 포스트시즌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토론토의 사정이 맞물리며 조용히 넘어가게 됐다.


그렇다고 ‘뒤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몬토요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서 “보루키의 손에서 공이 빠졌다. 탬파베이와 심판들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지난 이틀 동안 있었다”라며 사실상 보복구임을 인정했다.


보복구를 맞은 키어마이어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다가올 포스트시즌에서 진심으로 토론토와 맞붙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화를 잠시 참은 두 팀이 정말로 가을 야구서 맞붙게 된다면 더욱 뜨거운 혈전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메이저리그를 즐기는 묘미 중 하나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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