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비틀쥬스’로 주종목 만난 정성화의 코미디론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1.07.25 09:15 수정 2021.07.25 09:21

악동 같지만 공감 가는 비틀쥬스, 즐겁고 유쾌함이 매력

8월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저는 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죠. 안녕하세요, ‘고생 전문’ 배우 정성화입니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블랙 코미디 ‘비틀쥬스’가 지난 6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작품은 1988년 제작된 팀 버튼 감독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98억 년을 살아온 외로운 유령 비틀쥬스와 세상을 떠난 엄마를 찾아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소녀 리디아, 갑작스러운 사고로 유령이 된 아담과 바바라 부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정성화는 산 사람과 유령 사이를 오가며 장난을 치고, 기괴한 행동을 하는 98억년 된 유령 비틀쥬스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자칭 타칭 ‘고생 전문 배우' 정성화 다운 선택이다.


“개인적으로 고생하는 역할을 제가 선호하는 것 같다”는 정성화는 그간 ‘킹키부츠’ ‘라카지’ ‘맨 오브 라만차’ 등을 통해 개성이 강하면서도 체력소모가 큰 캐릭터들을 너끈히 소화해냈다. 이번 ‘비틀쥬스’는 그 고생에 정점을 찍는 작품이다. 150여분 동안 진행되는 무대에서 의상과 가발 등을 수도 없이 갈아입고, 엄청난 양의 대사와 안무, 동선까지 해내야 한다.


“도전을 하고, 연습을 해서 인정받는 것만큼 짜릿한 순간은 없는 것 같아요. 평범한 역할 보단 도전적인 역할을 즐기는 이유죠. 더구나 ‘비틀쥬스’는 한국에서 공연을 한다면 읍소를 해서라도 꼭 도전하고 싶어 했던 작품이었어요. 진짜 하게 돼서 기분이 너무 좋네요. 코미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세종문화회관에서 코미디를 공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예상대로 ‘비틀쥬스’는 연습부터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당초 지난달 18일 막을 올리려 했지만, 기술적 문제로 두 차례나 개막이 연기돼, 지난 6일부터 공연을 진행하게 됐다. 그만큼 연습기간도 더 길었다.


“‘이런 일도 있구나’ 싶더라고요. 가장 크게 든 생각은 텐션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개막이 연기된 시점부터 공연이 시작될 때까지 연습을 쉬지 않았어요. 디테일한 연습들을 멈추지 않았던 거죠. 불행 중 다행으로 첫 공연은 나름 관객들에게 잘 전달된 것 같아요.”


“제일 처음 런스루를 했을 때는 얼굴이 하얘져서 누가 말을 걸어도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쳤어요. 나이가 마흔 후반이잖아요(웃음). 비틀쥬스 역할이 춤도, 대사도, 노래도 많아요. 그만큼 외워야할 것들, 신경써야할 것들이 많죠. 처음엔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근육들이 뭉치기도 했고요. 계속 연습을 하다 보니까 조금씩 늘긴 하더라고요. 지금은 문제없이 공연을 하고 있어요. 그건 확실합니다. 하하.”


연습과정에서도 가장 어려운 점도 역시 기술적인 부분이었다. 특수효과가 많고 무대가 전부 컴퓨터로 움직이기 때문에 배우의 대사와 춤, 노래가 모두 약속대로 진행이 돼야만 했다. 결국 배우의 움직임도 무대 장치의 일환이 되는 셈이다.


“커다란 세트들이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데, 배우가 살짝만 부딪혀도 중상으로 이어지게 돼 있잖아요. 혹시라도 기계들이 오작동이 되면 배우가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요. 정해진 자리에 서는 것이 저에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정성화는 비틀쥬스를 ‘악동’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배트맨’ 속 악당 조커의 기괴한 느낌을 참고삼았다. 그러나 그의 비틀쥬스는 단순히 기괴한 조커로만 해석되진 않았다.


“악동 같지만 공감이 가는 친구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기괴하고 악동 같지만 유쾌하고 즐거운 느낌의 비틀쥬스가 됐으면 했죠. 죽음에 대해 그로테스크하고 어둡게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걸 즐겁고 유쾌하게 풀어내고 전달하는 사람이어야 했거든요. 조커의 움직임이나 몸놀림을 활용하되, 캐릭터는 즐겁고 유쾌한 것이 매력이에요.”


연출가와 합의된 대사다. 애드립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 배우들의 목표였다. 두세번 보신 분들은 ‘어 이거 애드립이 아니었네’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다. 약속된 것들이지만 딱딱하고 계산된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2019년 브로드웨이 공연 이후 한국에서 최초로 라이선스 공연을 선보이게 된 터라, 작품이 국내 관객들에게 어떻게 읽혀질지에 대한 고민도 컸다. 제작진은 물론, 배우들도 작품의 현지화에 힘을 보탰다. 특히 미국의 블랙 코미디를, 한국 정서에 맞는 코미디로 바꾸는 과정에서 대사가 수없이 수정됐다.


“연습할 땐 정말 대사가 많이 바뀌었어요. 긴 대사를 꾸역꾸역 외워서 갔는데, 다음 날 대사가 바뀌었다는 거예요. 정말 고생스러웠던 기억이죠. 한 번이 아니라, 대사가 여러 차례 수정되길 반복하면서 힘들기도 하고 기분이 상했던 것도 사실이죠.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하고 받아들인 후에는 연습이 수월하게 진행됐어요. 서로 아이디어도 내면서요.”


이번 ‘비틀쥬스’에서 ‘약속’이 중요한 것처럼 정성화는 코미디 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약속’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극중 비틀쥬스의 여러 대사들 중에는 애드리브로 보여지는 것들이 상당하다. 그런데 이조차도 모두 약속에 의한, 정해진 대사들이었다. 정성화는 “약속된 대사를 애드리브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극적인 장치에 의해서 관객을 웃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가진 캐릭터를 충실히 소화하고. 관객이 웃을 수 있는 것이 코미디 연극의 정석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동안은 한 배우의 개인기에 의해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비틀쥬스’는 모든 배우의 약속과 호흡을 통해 매력을 보여줘야 하거든요. 합과 장치와 약속을 존중해야 하는 코미디라서 가장 진보된 뮤지컬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도 삶에 대한 희망을 찾아야 하는 시기잖아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만, 희망적인 에너지와 메시지를 전하는 ‘비틀쥬스’와 지금의 상황이 많이 닮아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모두가 힘드시겠지만, 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얻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비틀쥬스’는 8월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