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4300억' 즉시연금 1심 패소…항소 유력
입력 2021.07.21 14:43
수정 2021.07.21 14:46
소송 시작 2년 9개월 만에 첫 판결
최종 패소 시 생보업계 1조 '폭탄'
삼성생명이 4000억원대의 보험금 지급 여부가 걸린 즉시연금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소송이 시작된 지 2년 9개월 만이다.
삼성생명을 비롯해 즉시연금 소송에 연루돼 있는 여러 생명보험사들이 모두 항소에 나설 것으로 보여 최종 결론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끝내 결과가 뒤집히지 않을 경우 생보업계 전체가 부담해야 할 추가 보험금은 1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판사 이관용)는 21일 즉시연금 가입자 57명이 삼성생명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지급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18년 10월 금융소비자연맹 주도로 해당 가입자들이 공동소송을 제기한 후 법원의 첫 판단이다.
쟁점은 즉시연급 고객들이 낸 보험료에서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 마련을 위해 연금월액 일부가 공제된다는 내용이 약관에 제대로 기술돼 있었느냐다. 즉시연금은 고객이 목돈을 맡기면 한 달 후부터 곧바로 연금 형태의 보험금을 매달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원고들은 즉시연금 중에서도 일정 기간 연금 수령 후 만기 도달 시 원금을 환급받는 상속만기형 상품 가입자들이다.
생명보험사들은 만기환급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납입보험료에서 사업비를 뺀 순보험료에 공시이율을 적용한 금액에서 일부를 공제하고 연금액을 산출해 왔다.
하지만 가입자들은 약관에 이런 공제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고 보험사의 명확한 설명도 없었다며 2017년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소비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나머지 가입자들에게도 보험금을 주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동양생명, 미래에셋생명, KB생명 등이 이를 거부하면서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금감원이 2018년에 파악한 즉시연금 미지급 분쟁 규모는 인원으로 16만명, 액수로 8000억~1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삼성생명이 5만5000명에 4300억원으로 가장 많다.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은 각각 850억원과 700억원으로 파악됐다.
◆생보사 항소 잇따라
이날 법원의 선고를 앞두고 보험업계에는 삼성생명이 패소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동양생명과 미래에셋생명, 교보생명이 앞서 열린 즉시연금 보험금 1심 소송에서 삼성생명과 비슷한 논리를 펼쳤지만 모두 패소해서다.
삼성생명은 즉시연금 약관에 '연금계약 적립액은 산출방법서에 정한 바에 따라 계산한다'는 표현을 적시했고, 실제로 이를 제대로 명기했다는 입장이다. 또 원고 측 입장을 그대로 따르면 형평성에 문제가 발생해 다른 고객들에게 역차별이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가입자 측을 대변하고 있는 금융소비자연맹은 삼성생명의 산출방법서가 보험사 내부의 계리적 서류일 뿐으로, 공식 약관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금감원 분조위의 판단대로 삼성생명이 보험금을 추가 지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즉시연금 소송에 따른 보험금 지급액이 4000억원을 넘을 정도로 거액인 만큼, 항소에 나설 공산이 크다. 패소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면 주주들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즉시연금 소송이 최고법원까지 이어질 경우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앞으로 2년이 넘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앞서 패소한 동양생명, 교보생명 등 3개 보험사도 항소에 나선 상태다.
보험업계에서는 향후 2심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패소한 쪽이 항소하며 소송전이 장기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즉시연금과 관련해 이처럼 대규모 소송이 벌어졌던 전례를 찾기 힘든 만큼 어느 쪽도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삼성생명이 패소할 경우 다른 관련 보험사들도 같은 판결을 받을 공산이 크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판결문을 받아본 후 내용을 면밀히 살펴 공식 입장을 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