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히든캐스트㊾] 윤지인 “거대한 작품 ‘드라큘라’, 저도 한 숟가락 보탰죠”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1.07.09 13:08
수정 2021.07.10 20:44

8월 1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공연장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프롤로그 곡이 잔잔히 깔리고, 무대의 커튼이 올라가기 전 영상을 통해 커다란 십자가가 등장한다. 십자가는 피로 조금씩 물들고 더 이상 물들 곳이 없어질 때 즈음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흐느끼는 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뮤지컬 ‘드라큘라’의 첫 시작을 알리는 ‘프롤로그’ 아리아는 배우 윤지인의 목소리로 완성된다. 마치 녹음된 듯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목소리는 본격적인 막이 오르기도 전에 관객들을 몰입시키고 눈물을 쏟게 한다. 워크샵을 포함해 초연인 2014년 공연부터 2016년 그리고 올해까지 윤지인은 이 거대한 작품의 스토리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아리아를 통해 제일 먼저 관객들을 만난다.


-뮤지컬 ‘드라큘라’와 벌써 세 시즌을 함께 하고 계시죠.


2014년 초연 전에 진행한 워크샵을 포함한다면 총 4번째 공연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번의 공연 모두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 포지션이 색다른 설렘을 주는 한편 초연부터 맡아왔던 ‘프롤로그’(Prologue)와 ‘프레시 블러드’(Fresh Blood)의 하이소프라노 아리아가 저에게는 아주 특별한 순간이에요. ‘드라큘라’라는 거대한 작품의 완성도에 제가 한 숟가락을 보태는 마음이랄까요?(웃음)


-여러 시즌에 참여하면서 어떤 포지션들을 맡아왔나요?


워크샵에서는 루시로 참여했었고, 초연에서는 어린하녀, 재연과 이번 공연에서는 하녀장을 맡게 되었어요. 정신병원에서의 포지션도 재연과 이번 공연이 다르고요. 가발과 의상도 달라졌어요. 초연을 올린지 7년이 지남에 따라 저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귀엽고 생경한 연기보다는 노련하고 차분한, 그리고 조금 더 코믹하게 보일 수 있는 순간에는 극을 살릴 수 있는 감초연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모를 고충도 있을 것 같아요. 특히 무대를 여는 오프닝 아리아에 대한 부담도 있을 것 같고요.


제가 오늘(6월 30일)을 기준으로 초·재연포함 총 145번째 오프닝 아리아를 부르고 있네요(웃음). 길지 않은 멜로디지만 ‘드라큘라’ 공연을 여는 첫 번째 곡으로서 부담감이 매우 커요. 녹음인줄 아시는 분도 많으신데 매번 라이브로 지휘자 모니터에 맞춰 부르거든요. 짧지만 작품의 스토리와 분위기가 함축되어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엄습합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매번 다른 넘버가 좋아지고, 조금씩 작품에 대해 이해하는 정도도 달라진다고들 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윤지인 배우에게 ‘드라큘라’는 어떤가요?


워크샵에서는 루시의 노래들을 가장 좋아했어요. 이유는 단순했어요. 제가 배우면서 어렵다고 느꼈고 그래서 그걸 소화해내는 과정이 즐겁고 기뻤거든요. 하지만 앙상블로 바라본 초연부터 지금까지의 부동의 1위 곡은 조나단의 ‘Before the Summer ends’에요. 여름날 햇살을 지워내듯 사랑한 기억을 쉽게 지울 수 없다 말하는 조나단의 심정이 우리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400년 동안이나 지울 수 없었던, 신에게 도전하고 죽음마저 불사하는 그것, 바로 사랑이죠. 저에게 ‘드라큘라’는 그 무엇보다 강렬한 ‘사랑’을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무대에 오르면서 어떤 생각,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오르는지도 궁금해요.


매번 ‘이번 시즌이 내게 마지막 드라큘라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없던 힘도 솟아나거든요. ‘드라큘라’ 보러 오셔서 ‘윤지인’ 듣고 가세요(웃음).


-‘드라큘라’는 물론 ‘젠틀맨스가이드’ ‘시티오브엔젤’ ‘팬텀’ ‘모차르트’ ‘명성황후’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셨는데요.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과 캐릭터가 있나요?


하나의 작품을 꼽기는 너무 힘들지만 지금까지 출연해 온 작품 중 인생작을 고르라면 ‘타이타닉’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출연진 모두가 1인 2~3역을 하는 작품인데 원캐스트로 3개월간 공연했지만 맹세코 단 한 회차도 설레지 않은 적이 없었거든요.


-데뷔작도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2008년 ‘그리스’로 뮤지컬 무대에 처음 오르셨죠.


온통 행복했고 감사했던 기억뿐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21세의 저를 귀한 무대에 세워주신 신춘수 대표님, 정태영 연출님, 원미솔 감독님, 오재익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데뷔작에서 알게 된 언니, 오빠들이랑은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요. 지금도 만나면 21세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거든요. 매일이 새롭고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물론 언니, 오빠들은 그때의 저 때문에 참을 ‘인’(忍)을 1000번 정도 썼다고 하지만요. 하하.


-벌써 데뷔로부터 13년가량이 지났는데요.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뮤지컬 전공이 아니에요. 실용음악과 보컬 전공을 했고 뮤지컬은 사실 생각지도 못한 길이었어요. 우연히 딛게 된 이 길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 좋은 사람들과 멋진 무대를 만나며 저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예전에 비해 많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즐겁고 밝은 캐릭터로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려고 해요. 데뷔 초반에는 충고나 직언에 상처받고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철없이 굴었고 욕심만 많았거든요.


-반면,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것이 있다면요?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오디션 볼 때는 한 결 같이 떨린다는 것!


-활동해오면서 뮤지컬은 물론, 드라마 ‘시크릿부티크’(2019) ‘시그널’(2016), 영화 ‘소수의견’(2013) ‘파파로티’(2013) 등에서 출연하셨죠.


캐스팅 디렉터 분들이 공연을 보시고 선배님들을 통해 연락처를 받아서 출연하게 된 케이스에요. 첫 영화 데뷔작이었던 ‘파파로티’는 ‘몬테크리스토’ 초연 때 파리아 신부 역을 맡으신 조원희 선배님의 지인 분께서 오디션 기회를 주셨어요. ‘파파로티’를 시작으로 하나씩 출연하게 된 것 같아요.


-드라마 영화 촬영 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드라마나 영화는 처음이다 보니 몇 번씩 반복해서 촬영하는 것에 큰 이질감을 느꼈어요. 언제 ‘OK’ 사인이 날지 모르니 매번 최선을 다해 뛰고, 말하고, 연기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반복해서 촬영하다보니 기운이 빠지더라고요. 뮤지컬은 무대에서 음이탈이나 대사를 잊거나 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다보니 오늘, 지금 무대 위 순간에 모든 걸 다 바치는 뮤지컬과 여러 번의 시도 후 가장 좋은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와 영화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순간들이 있었어요.


또 다른 건 아무래도 영화관 스크린에서 제 얼굴이 나오고, TV에 나오고 하다 보니 주변인들이 신기해하시더라고요. 가족 친지들도 자랑스러워 하셨고요.


-앞으로도 방송이나 영화, 무대, 혹은 또 다른 어떤 것들에 대한 도전이 이어질까요?


좋은 기회로 주어지는 것들에 있어서는 감사히 그리고 기쁘게 도전할 생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서 좋아하는 노래들을 불러 기록해 둘 계획이에요.


-뮤지컬 배우로서 꼭 지켜나가고 싶은 신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거창하게 신념이라고 말씀드리기는 부끄럽지만 오래전에 원미솔 음악감독님이 저에게 ‘관객에게 어떤 아쉬움도 주지 않는 배우’가 되어보라고 하셨는데 아직까지 도달을 못했어요. 훗날 어느 관객분께서 제 공연을 보시고, 제 노래를 들으시고 어떤 아쉬움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배우가 되자는 것이 제 신념입니다. ‘믿고 보는 배우’ ‘자주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데일리안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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