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노조, 사망 직원 원인 조사 결과..."사측, 괴롭힘 피해 묵인"
입력 2021.06.28 14:33
수정 2021.06.28 14:35
업무 과중에 '야간·휴일·휴가' 구분 없이 일했다…"임원들, 상습적인 모욕과 협박"
수년간 신규 인력 배정 없어…임원 A씨 "조직원 이탈은 고인 탓"
임원 B씨, 고인의 상급 조직장 아님에도 상습적인 업무 지시
노조 "2년 이상 사측에 괴롭힘 피해 호소"…사측, 묵인·묵살로 일관
네이버사원노조 공동성명(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은 28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 2층에서 ‘네이버 동료 사망 사건, 노동조합의 진상규명 최종보고서 및 재발방지 대책 요구안 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노동조합이 발표한 진상규명 최종보고서는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23일까지 총 24일에 걸쳐 고인의 전·현직 동료 60여 명을 대상으로 전화 심층 면접, 대면 인터뷰를 통해 확보한 증언, 메일·메신저·녹취·동영상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지난 25일 노조는 사측이 발표한 징계 조치에 대해 전형적인 ‘꼬리자르기’라며 비판했다. 최인혁 전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도의적 책임’을 지고 COO 직위 사임을 밝혔지만 해피빈, 네이버 파이낸셜 등 주요 계열사 경영진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노조는 최인혁 전 최고운영책임자(COO)가 ▲평가 ▲업무지시 ▲보직 ▲인센티브 ▲스톡옵션 등 조직원들의 인사권 유지하고 있는 임원 B의 문제 언행에 대해 낮은 수준의 징계 조치를 내린 것에 대해 ‘약하고 형식적인 징계 조치’라며 지탄했다.
이에 노조는 오늘 열린 최종보고서 발표회를 통해 고인의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되는 임원 A씨 가해 정황과 고인을 비롯해 직원들 다수에게 업무·정신적 스트레스를 가한 임원 B씨의 괴롭힘 정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임원 A씨, 고인에게 불분명한 업무 강요…"조직원 이탈 책임까지 물게 해"
노조는 고인의 사망 원인에 대해 ▲야간, 휴일, 휴가 중에도 지속되는 과도한 업무 ▲상급자의 불분명하고 부당한 업무지시 ▲임원의 절대적인 인사권으로부터 수반되는 모욕적인 언행과 협박 ▲직원들의 문제 제기와 고통 호소에도 사측의 일방적인 묵살 등의 정황을 제기했다.
앞서 고인은 2019년부터 네이버 지도 중 내비게이션을 담당하며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 그러나 고인이 근무한 해당 부서엔 수년간 신규 인력이 배정되지 않았다.
또한 노조는 고인은 임원 A씨의 불분명한 업무지시로 인해 기존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고, 조직원 이탈에 대한 책임도 임원 A씨는 고인에게 전가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노조는 “고인이 평일 가장 이른 시각부터 업무를 시작해 밤 10시, 11시까지 업무를 진행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고, 올해 들어 지난 5월 초 출시 목표 및 출시 후 이슈 대응을 위해 강도 높은 업무가 지속돼 왔다”고 폭로했다.
아울러 노조는 “임원 A씨가 신규 채용과 관련된 회사 면접 가이드를 무시한 채 채용 전권을 쥐고 있어 인력충원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임원 A씨의 반복된 모욕적인 언행은 고인을 고통스럽게 해왔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임원 A씨만 가해자 아냐"…임원 B씨도 업무·정신적 가해 정황有
고인을 향한 가해 정황은 임원 A씨 뿐만 아니라 임원 B씨에게도 포착됐다.
노조에 따르면 임원 B씨는 고인의 상급 조직장이 아님에도 고인에게 상습적인 업무 지시를 내렸다.
오세윤 네이버노조 지회장은 “임원 B씨는 고인에게 즉답을 요구하는 업무지시, 다수의 직원이 공유하는 업무 메신저 창에서 공개적인 비난과 모욕 등을 통해 업무·정신적인 학대를 가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임원 B씨는 고인뿐만 아니라 다수의 조직원에게도 부당한 업무지시와 무리한 일정 요구를 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공개적으로 자리에 없는 사람을 험담하거나, 초과 근무 시 ‘돈이 없어서 주말 근무를 신청하는 것이냐?’는 등 모욕적인 발언을 일삼고, 초과 근무에 대한 결재도 승인하지 않는 등 기본적인 노동 인권을 무시해온 점들이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노조는 임원 A씨와 임원 B씨의 괴롭힘으로 인해 일부 직원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었으며 일부 직원은 퇴사와 휴직을 신청했다고 강조했다.
임원의 절대적인 인사권…"직장 내 괴롭힘 피해 묵인"
노조는 임원 A씨의 부당한 지시와 모욕적인 언행에도 불구하고 임원 A씨가 고인의 ▲인사 평가 ▲연봉인상률 ▲인센티브(성과급) 수준 ▲스톡옵션 부여 여부 ▲조직 해체 등 인사 조치를 할 수 있는 전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경영진 면담, 인사조직 면담, 상향평가를 통한 부정적 의견 전달, 사내 신고채널을 통한 직원들의 피해 호소에도 회사는 어떠한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원 A와 임원 B에게 더 강한 인사권이 부여됐다.
노조는 “인사 조치에 대한 전권을 임원이 가지고 있었기에 고인을 비롯해 부서원들이 강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없었다”며 “그럼에도 직원들이 2년 이상 문제의 임원들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으나 경연진는 이를 묵살하고 문제 제기를 했던 직원들을 해고했다”고 추가 폭로했다.
이와 관련해 서승욱 카카오지회장은 “이번 조사 과정과 결과 발표 후 사측의 대책은 IT 노동자들에게 본보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네이버가 보여준 대책은 이런 희망을 무참히 짓밟았다. 조사 과정을 구성원들이 함께 했어야 했으나 네이버는 회사의 변론을 먼저 발표했다”며 비판했다.
한편 이날 네이버 노조의 진상규명 최종보고서 발표회 이후 네이버 이사회는 새로운 조직문화와 리더십을 만들이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의 경영진은 실무 TF를 구성해 연말까지 새로운 조직체계와 리더십 구축을 완성하겠다고 설명했다. 진행 과정에서도 이사회와 충분히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변대규 의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뤄지는 경영 체계의 변화가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는 소중한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새로운 체계에서 네이버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단계의 도약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성숙 대표이사는 사내 메일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깊은 사과를 전하며 이번 일을 계기로 회사 전체 문화를 다시 들여다보고 점검하면서 네이버가 생각하는 리더십과 건강한 문화는 어떤 것일지 등을 고민하고 세워나가는 노력을 CEO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