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초점] 흥행 어렵다는 스포츠 드라마, 필승 콘텐츠 되려면
입력 2021.06.15 09:18
수정 2021.06.15 09:19
'스토브리그' 이어 '라켓소년단'도...스포츠 드라마 실패 불문율 깼다
“스포츠 드라마는 흥행이 되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있죠….”
SBS 드라마 ‘라켓소년단’ 제작발표회 당시 연출을 맡은 조영광 PD의 말이다. 실제로 앞서 농구나 야구, 피겨스케이트, 역도, 골프, 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앞세운 드라마들이 다수 등장했으나 성공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농구 붐을 일으켰던 ‘마지막 승부’(1994) 정도가 유일했다.
이후로도 스포츠 드라마가 나오지 않은 건 아니다. 드라마 ‘버디’ ‘역도요정 김복주’ ‘트리플’ ‘맨땅에 해딩’ 등이 만들어졌지만 잇따른 부진 탓에 스포츠 드라마의 흥행 실패는 업계의 불문율로 자리 잡았다. 오죽하면 벌써 30년 가까이 된 ‘마지막 승부’가 현재까지 나온 한국 스포츠 드라마 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남아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 면에서 ‘라켓소년단’의 등장은 꽤 흥미롭다. 최근 드라마에서 미스터리, 살인, 범법 등 자극적인 소재가 트렌디로 읽히고, 실제 이런 종류의 드라마들이 성공을 거둬왔다. 그런데 ‘라켓소년단’은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그리고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스포츠 종목인 배드민턴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첫 방송부터 호평을 얻었다. 첫 방송에서 최저시청률 3.6%(1부, 전국기준)를 기록했지만 꾸준한 흥행을 이어가며 최고시청률 5.8%까지 끌어올렸다.
스포츠 드라마의 중심축은 당연히 스포츠 종목 자체의 매력에 있다. 드라마에서 비인기 종목, 혹은 소외된 종목을 소재로 가져오는 건 몇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소외된 종목에 대한 대중의 관심, 그리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뛰는 선수들의 성장 스토리를 극적으로 그려내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스포츠 드라마의 실패 원인으로 실감나지 않는 경기 장면은 늘 문제점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라켓소년단’은 첫 회부터 셔틀콕 하나를 두고 벌이는 다이내믹한 영상들을 담아냈고, 이런 장면들을 보완하는 등장인물들의 성장 스토리, 배경이 되는 시골 마을의 정감 있는 풍경들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흥미진진한 드라마로의 모습을 갖췄다.
이 부분은 작품을 쓴 정보훈 작가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 작가의 첫 드라마였던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역시 감옥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 평가되지만, 사실 그 안에 스포츠와 역경을 이겨낸 인물들의 성장 스토리가 담겨 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라켓소년단’의 차이라면, 스포츠를 전면에 내세웠는지 후면에 배치했는지의 차이일 뿐 결국은 스포츠 선수가 사람냄새 나는 주변 환경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라켓소년단’에 앞서 지난해 종영한 ‘스토브리그’도 대표적인 스포츠 드라마 성공 사례로 이름을 올렸다. 본래 2016년 MBC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극본이었으나, 스포츠 드라마는 제작비에 비해 성공하기 힘든 작품이라는 이유로 방영을 거절했고, 편성이 미뤄지다가 SBS에서 내용을 다듬어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스포츠 드라마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첫 회 시청률 3.3%로 시작한 ‘스토브리그’는 마지막회에서 20%에 달하는 시청률까지 끌어올리면서 흥행 불가 장르로 여겨졌던 스포츠 관련 드라마로서는 역대 최고 수준의 흥행 성적을 썼다. 사실상 ‘마지막 승부’ 이후 26년 만에 대박을 터뜨린 스포츠 드라마로 봐도 무방하다.
‘스토브리그’는 인기 장르인 야구를 소재로 하면서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앞서 ‘내일은 야구왕’ ‘2009년 외인구단’ 등 기존 야구 드라마의 잇따른 실패를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뚜껑을 연 ‘스토브리그’는 ‘야구 선수’가 아닌, ‘프런트’에 중심을 뒀다. 실제 구단 내부를 들여다 보는듯한 몰입감이 느껴진단 평이 많았던 이유다. 이 안에는 일반 직장인들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 많아 공감을 사기도 했다.
실제와 괴리가 큰 경기 장면도 물론 큰 걸림돌이지만, 스포츠 드라마들의 성공 사례를 보면 그 이유는 스포츠 외적인 것들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다고 하지만 순수하게 치열한 경기 장면만 원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시청자들은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는 공감과 위로, 혹은 판타지와 같이 절정에 순간에 맛보게 될 카타르시스를 기다린다.
한 작가는 “스포츠 드라마의 성공 조건을 예능과 비교하는 게 적절한진 모르겠지만, 일정 부분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본다. 최근 성공한 스포츠 예능을 보면 실력이 없는, 혹은 전혀 해당 종목을 접해보지 않은 방송인들이나 타 종목 선수들을 데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식의 프로그램이 많다. 스포츠 드라마 역시 단순히 그들의 경기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성장 과정을 보길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면서 “다만 예능은 그 성장 과정을 웃음으로, 드라마는 공감과 위로, 힐링으로 그려내는 것이 다를 뿐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