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정치노트] 윤석열의 '정의'를 흔드는 손
입력 2021.06.07 07:00
수정 2021.06.07 05:50
與 파상공세에 그간 침묵모드 깨고 공개 방어전 나서
尹 법리적방어에…정치권 "네거티브엔 무대응이 정석"
"정의라는 가치‧이미지는 법리적 방어로 지킬수 없어"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의 언행이 오히려 도를 넘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이 여권의 공세에 첫 공개 반론을 편 것을 두고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논의의 핵심은 '방어전략이 적절했느냐'였다. 야권 공보전문가로 꼽히는 한 인사는 "대선주자 위기관리 차원에서 본다면 실책에 가까운 대응"이라고 혹평했다. 다른 정치권 인사들도 "아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동안 침묵모드를 유지해온 윤 전 총장측은 왜 공개대응에 나선 것일까. 윤 전 총장측 손경식 변호사는 지난 3일 입장문을 내고 여권 인사들이 제기한 장모 의혹과 발언을 법률 논리에 따라 조목조목 반박했다. "도를 넘었다"며 강한 어조로 반박한 것은 여권의 공세가 법리적 사실마저 호도하고 있다는 데 따른 인내심 폭발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법과 정치의 영역은 엄연히 다르다. 야권 한 인사는 "여당이 던진 '악마의 유혹'에 끌려갔다"고 표현했다. 제 아무리 억울한 입장이더라도 상대의 네거티브에 섣불리 대응했다가는 그들의 논리에 끌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그 정도 공격 갖고 '도 넘었다'고 하면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더욱이 여권의 전방위 공세에 지원군도 없이 보도자료 한 장으로 대응한 것은 번지는 들불에 물 한바가지 끼얹는 것에 가까웠다. 기세를 올린 여권은 윤 전 총장을 겨냥해 '윤로남불'이란 표현을 확산하고, 윤 전 총장을 10원짜리 지폐 등장인물로 그린 패러디물을 공유하는 등 네거티브 캠페인을 본격화했다.
야권에선 훈수가 쏟아졌다. "네거티브에 대응하는 정석은 네거티브 맞불이고, 차선은 무대응이다", "법리로 해명하려 들다가 상대의 프레임에 휘말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대선을 '장모 선거'로 치르려는 여권의 진흙탕에 끌려간다"….
윤 전 총장측 대응이 낙제평가를 받은 핵심배경에는 정치공세에 대해서도 법조문부터 따지는 '법률가 마인드'가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악의 네거티브 예고됐는데…방어전략 마저 공정‧법치 내세워
정치권의 네거티브 공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엄연한 선거전략으로 인정받는 네거티브 캠페인은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대선에선 더욱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선거전략 분석서 <네거티브 아나토미>(글항아리)는 "선거에서는 누구도 네거티브의 칼을 피해 갈 수 없다. 네거티브는 필수적인 차원을 넘어 승패를 가름하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현실적 당위' 차원에서 인정하고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캠페인 컨설턴트인 커윈 스윈트는 저서 <네거티브, 그 치명적 유혹>(플래닛미디어)에서 "선거 전략가들이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집착하는 까닭은 그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메시지보다 부정적인 메시지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더 정확하게 더 오랫동안 간직한다"고 했다.
앞으로 윤 전 총장이 대선무대에 올라서면 격투기 못지않은 거친 태클, 여권 지지층과 친여언론 등이 스크럼을 짠 전방위 전술적인 공격이 펼쳐질 게 뻔하다. 지난 4.7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생태탕 선거'로 만든 정치적 기술은 대선을 앞둔 몸 풀기 수준에 불과했다.
여권 한 원로인사는 "이번 대선은 1987년 직선제 이후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여당 대표까지 나서서 '윤석열 파일'을 거론하며 진흙탕 선거를 예고했다. 윤 전 총장이 시대정신으로 선점한 정의라는 가치와 이미지를 뒤흔들겠다는 노골적 선전포고다.
윤 전 총장 측은 법률가들을 중심으로 네거티브 대응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정치적 공세가 적법한지 여부를 따져봐야겠지만, 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적 계산 없이 원칙을 지켜온 결과물이 현재 윤 전 총장의 지지율로 나타났지만, 그 지지층이 바라는 것은 더 이상 '검사 윤석열'이 아니다. 기존 정치 문법과는 다른 방어전략이 통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