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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의 디스] 르노삼성 노조, 폭주의 끝은 어디인가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1.05.10 07:00 수정 2021.05.09 05:27

노조 집행부, 조합원 대다수 불참 불구 무기한 파업 '독단'

물량배정 불이익, 한국사업 철수 등 미래 불안감 커져

안정적 일자리 지킬 수 있도록 정영정상화에 협력해야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서 생산된 XM3(수출명 뉴 아르카나)가 2020년 12월 25일 유럽으로 향하는 자동차운반선에 선적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

#202X년 어느 날. 르노가 한국 철수를 결정한다. 르노삼성자동차의 해외 수출이 전면 중단되고 내수 시장에서도 조에, 캡처, 마스터, 트위지 등 르노 브랜드 차종 판매가 올스톱된다. 르노 아르카나를 베이스로 개발된 주력 모델 XM3 역시 지적재산권 문제로 판매 중단 위기에 놓인다. 르노의 르노삼성 지분 매각 작업은 지지부진해지고 적자는 쌓여간다. 결국 덩치를 줄여 매각 작업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이 단행된다. 르노삼성 협력사들과 부산 지역 민관을 중심으로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줄파업으로 시끄러웠던 르노삼성의 과거를 떠올린 국민들 사이에서 반대 여론이 확산된다. 회사를 나온 르노삼성 출신 대다수 근로자들은 파업이나 시위에 참여한 전력이 없음에도 불구, 강성노조라는 낙인이 찍혀 재취업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위 이야기는 ‘다행히도’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실화될 개연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르노삼성 노동조합 집행부가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면.


국내 5대 완성차 업체 중 하나인 르노삼성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노조 집행부는 전면파업을 선언했고,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했으나 여전히 80%가량의 근로자들이 출근해 공장을 정상적으로 돌리고 있다.


노동조합원 중 일부가 파업 기간 중 ‘무노동 무임금’으로 인한 생활고를 못 이겨 이탈하는 경우는 있어도, 대다수의 인원이 단순 파업 불참도 아니고 사측이 요구하는 근로희망서까지 써 가며 근무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노조원들이 파업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집행부가 무리하게 파업으로 이끌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사실 르노삼성 노조원들은 지난 2월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절반 이상이 파업에 찬성했다. 하지만 이는 자동차 업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과정에서 관례적으로 이뤄지는 일이다.


통상 노조원들이 집행부에 파업을 단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사측과의 교섭 테이블에서 더 좋은 조건을 이끌어낼 지렛대로 활용토록 하기 위함이다. 진짜 생산라인을 멈춰가며 파업을 하자는 의미로 찬성표를 던지는 이들은 극히 일부다.


르노삼성 노조원들 대다수가 파업에 불참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하지 않으면 임금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회사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조합원들을 이끄는 집행부로서는 과거 2년간 기본급을 동결한 상태에서 지난해와 올해까지 4년간 기본급을 묶어 놓겠다는 사측의 제시안에 반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은 ‘때문에’가 아니라 ‘그래서’를 생각해야 할 상황이다. ‘어떤 이유로 파업을 하느냐’가 아니라 ‘파업을 해서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하다.


르노삼성은 외국계 회사다. 대주주는 프랑스 르노 그룹이다. 르노는 프랑스와 한국 외에도 세계 곳곳에 생산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즉, 르노삼성은 르노의 여러 생산기지 중 하나다.


전세계 공장을 풀가동해도 부족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되지 않는 한(물론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가장 싸고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곳을 골라 물량을 배정하게 마련이다. 고임금에 줄파업으로 생산 차질을 빚는 공장은 당연히 후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계속해서 물량 배정에서 제외되는 공장은 전기차 전환 추세에 따라 남아돌게 될 내연기관차 생산시설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장 먼저 찍혀 나갈 여지가 다분하다.


한국에서 노조가 떼를 쓰고 파업을 하고, 표를 의식한 정치인이 와서 한마디 거든다고 해서 르노그룹의 결정이 뒤바뀌진 않는다. 르노그룹 CEO를 국회로 불러 면박을 주며 결정을 철회하라고 겁박할 수도 없다.


즉, 노조 집행부의 총파업, 그리고 무기한 파업 선언은 노조원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결과물도 안겨줄 수 없다. 그저 르노삼성이 처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 아니라 미래까지 불안하게 만드는 폭주에 불과하다. 노조원들도 이를 모르지 않기에 집행부의 지침을 외면하고 근무에 나서는 것으로 생각된다.


“근로자들은 열심히 일만 했을 뿐인데 경영진의 잘못으로 인한 실적부진의 책임을 전가해선 안된다”는 논리는 어리광에 불과하다. 수많은 중소기업 직원들도 ‘열심히 일했지만’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었고, 수많은 자영업자들도 ‘열심히 사업을 꾸려나갔지만’ 불황으로 가게를 접어야 했다.


르노삼성 근로자들은 ‘열심히 일한’ 대가로 지금의 고연봉 직장을 유지하고 있음에 긍지를 느낄 만한 자격이 있는 이들이다. 노조 집행부가 할 일은 이들이 앞으로도 오랜 기간 일자리를 지켜낼 수 있도록 회사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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