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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차량 지상통행 금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②] '고품격 상생 아파트'의 조건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입력 2021.04.07 05:00
수정 2021.04.06 18:37

지하주차장 높이 2.3m→2.7m 상향 의무화…법 시행 전 아파트는 여전히 '골머리'

거주 노인들이 단지 내 배송 맡는 '실버택배' 도입…낮은 임금과 낮은 서비스 품질 우려

"소모적 갈등 보다 머리를 맞대고 대화가 먼저…단지별 사정에 맞는 배송 매뉴얼 만들어야"

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 후문 인근에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어린이 교통사고가 우려된다며 택배 차량의 지상 통행을 금지하자 택배 기사들이 단지 내 배송을 거부하는 '택배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서울 강서구 한 아파트 단지에는 후문에 수백 개의 택배 상자가 어지럽게 놓였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택배 차량의 지하 진입만 허용하자 택배 기사들이 항의의 뜻으로 단지 내 배송을 거부한 것이다.


택배 차량의 아파트 지상통행 금지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8년 경기도 남양주시의 다산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도 엄청난 논란이 일었고, 이어 인천 송도 신도시, 울산 남구 신정동 신축 아파트 단지들도 비슷한 사태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양측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우선 지하주차장 층고 상향을 꼽고 있다. 최근에 지어진 지상공원형 아파트들은 긴급 차량 등을 제외하곤 모든 차량이 지하주차장을 통해 이동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주차장법은 지하주차장의 최소 높이를 바닥으로부터 2.3m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택배 기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차량의 높이는 2.5m이고, 냉장기능을 갖춘 탑차는 2.7m에 달해 지하주차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택배갈등이 계속되자 국토교통부는 2019년부터 지상공원형 아파트에 한해 지하주차장 높이를 2.7m 이상으로 짓도록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2019년 이후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관련 문제를 겪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법 시행 전 공사계획을 승인받은 아파트들은 여전히 주차장 높이가 2.3m에 그쳐 또 다른 대책이 요구된다.


5일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기사가 수레를 끌고 달려가고 있다. ⓒ데일리안

또 다른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이른바 '실버택배'다. 김승길 한국해양대 건설공학과 교수는 "택배차량이 아파트 단지까지 물건을 싣고 오면 인근 거주 노인들이 전동카트나 손수레로 단지 내 고객에게 택배를 배송하는 서비스"라며 "아파트 택배 차량진입 불가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최근 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른 노인 빈곤과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며 "택배기사, 아파트 경비원의 화물 운송·보관에 따른 업무 부담 감소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실버택배 시스템은 업무 강도 대비 낮은 임금과 낮은 서비스 품질 등이 우려된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금을 투입할 수 있지만, 민간 아파트 분쟁에 국민의 예산이 낭비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 다산신도시 아파트들은 택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실버택배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했지만 "아파트 단지 주민들만 특혜를 누린다"는 공적자금 투입 반대 여론이 거세져 결국 무산됐다.


무인택배함 자료사진 ⓒ뉴시스

무인택배함 설치도 택배 대란 해법으로 꼽힌다. 아파트 단지와 접근성이 좋은 곳에 무인택배함을 다수 설치해 택배기사가 물건을 넣고, 입주자는 택배 함에서 인증번호를 입력해 직접 물건을 찾아가는 시스템이다.


무인 택배서비스는 택배기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고, 택배 기사를 위장한 범죄행위, 택배 물품 도난 등을 방지한다는 부가적 장점이 있다. 아울러 택배 기사는 한 장소에서 여러 건의 택배를 전달할 수 있어 업무 부담이 대폭 줄어든다.


하지만 무인택배함은 초기 설치비용이 비싸고 고장이 잦다는 게 입주자들의 불만이다. 또한 설 명절 등 택배량이 급증하는 시기엔 택배 함의 수가 턱없이 모자라고, 부피가 커다란 물품은 함에 들어가지 않는 문제도 있다. 물건을 수령하기 위해 외곽까지 이동하는 것에 대한 입주민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5일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기사가 수레에 물건을 싣고 이동하고 있다. ⓒ데일리안

전문가들은 이처럼 아파트 단지마다 특수한 사정이 존재하는 만큼 입주민과 택배기사들이 협의를 통해 양보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택배사와 입주자대표회의가 협의해 시간대별로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허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소모적인 갈등을 계속 반복하는 것보다 택배 회사와 주민 간 대화의 기회를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 이를 바탕으로 단지별 사정에 맞는 배송 매뉴얼을 만드는 등 상생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권명희 울산대 주거환경학과 교수는 "진정한 품격을 갖춘 아파트가 되기 위해서는 관리사무소, 자치회장, 부녀회장 등이 머리를 맞대고 아파트 주민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면서도 택배 기사들이 편하게 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별도의 하역공간과 이동 경로를 모색할 수도 있고, 더욱 발전된 무인택배함과 높이 조절이 가능한 택배 운송차량 도입 등 기술적 노력들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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