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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박영선 임대료 공약, 남대문시장 소상공인들에게 물어보니…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입력 2021.03.24 05:00
수정 2021.03.24 06:01

"숨통 틔워줄 것" "공짜 점심이 어디있나, 증세 부담으로 되돌아올 것"

"나랏돈으로 생색내며 임대료 깍아준다고 경기 살아나지 않을 것…비행기 떠서 외국인 다시 와야 살아날 것"

코로나19 민생위기 극복 위한 기자회견 갖는 박영선.ⓒ국회사진취재단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화끈 임대료 지원제' 공약을 발표했다. 소상공인의 임대료를 30% 감면해주는 임대인에게 감면액의 절반(15%)을 서울시가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임대료 지원을 신청하는 임대인은 감면 임대료의 절반을 지원받는 동시에 정부의 세액공제, 50~70%도 적용받을 수 있다.


박 후보의 공약에 대해 소상공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숨통을 틔워줄 것이다"는 긍정적인 반응에서부터 "실생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 "오히려 증세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불만까지 터져나왔다.


23일 점심시간에 찾은 서울 남대문시장 거리는 한산했다. 거리와 상가 곳곳에는 폐업한 점포들이 많았고, 임대 문의 안내문을 휘날리며 새 주인을 찾은 점포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옷가게 점주 안모(43)씨는 "코로나19도 엄연한 재난 상황이고, 소상공인들은 코로나19에 직격타를 맞은 재난 피해자"라면서 "매출이 거의 없고 생활 보전이 어려워 가게를 빼야 하는 상황에서 박 후보의 임대료 감면 공약은 그나마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안씨는 "전체 소득에서 임대료가 50%를 차지한다"며 "세 차례 지원받은 재난지원금 300만 원도 임대료에 다 보태 썼다"고 말했다.


한산한 남대문시장 거리.ⓒ데일리안

하지만 또 다른 소상공인은 박 후보의 임대료 30% 감면 공약은 현실 불가능한 공약이라고 비판했다. 정육점에서 30여 년 일한 배모(60)씨는 "매일 아침 6시에 나오지만, IMF 때보다 장사가 더 안돼 7~8시간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 일쑤"라면서 "임대료만 어느 정도 내려줘도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임대인들이 꼼짝도 하지 않을텐데 실현 가능성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배씨는 이어 "코로나19로 장사가 안 되는 지금도 임대료를 올린다는 임대인들 때문에 폐업 결정을 한 상인들이 부지기수다"고 토로했다.


인근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민모(53)씨도 "개인 사유 재산인데 (임대료) 삭감을 국가에서 강제할 수 없고, 임대료로 매달 생활하는 건물주도 많은데, 손해를 보면서까지 임대료를 감면해 줄 것 같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10년 동안 좌판에서 구제 가게를 운영해 왔다는 명모(61)씨는 "재난지원금을 세 차례 100만 원가량 받아 3개월 밀린 월세를 겨우 냈다"며 "장사도 안 되는 상황에서 임대료라도 해결되면 좋겠지만, 공약이 실현될 것 같지 않고 설사 실현되더라도 일회성 이벤트에서 그칠 것"이라고 낙담했다.


해당 공약이 상인들의 실생활에 큰 도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가방을 파는 정모(64)씨는 "후암동에 살다 월세를 내지 못해 1시간 지하철을 타야 하는 동네로 지난 11월 이사했다"며 "코로나19가 장기화돼 일시적인 임대료 감면으로는 하루 벌어 먹고사는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울먹였다. 정씨는 "차라리 신용과 상관없이 5000만원 무이자 대출을 해 줘 살 길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모(51)씨는 "임대료를 깎아줘도 물가가 너무 올라 6000~7000원 짜리 밥 한 끼 한 달 먹으면 사라질 돈"이라고 밝혔다.


남대문시장 상가 곳곳에 임대문의 안내문ⓒ데일리안

임대료 감면 공약이 증세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26년 동안 가방 가게를 운영한 이모(55)씨는 "후세대들에게 빚만 늘리는 정책"이라고 잘라 말한 뒤 "집값 올려놓고 자기 마음대로 임대료를 깎아준다는데 국민들을 개·돼지로 아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인 역시 "공짜 점심이 어디 있나. 나랏돈으로 임대료 마음대로 감면해주고 생색낸 다음, 100% 세금으로 더 뜯어갈 것"이라고 비판한 뒤 "공약 지킬 것이라고 믿지도 않지만, 국민 세금을 자기 쌈짓돈처럼 마구 써도 되는 것이냐"라고 화를 냈다.


이날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소상공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결같이 바란 것은 경기 회복이었다. 녹두빈대떡 가게를 운영하는 정모(69)씨는 "아침 9시에 나왔는데도 장사가 너무 안돼 하루종일 아무것도 팔지 못하고 집에 간 날이 허다하다"며 "임대료를 깎아준다고 해도 경기가 살아날 것 같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비행기가 떠야 남대문시장이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재래시장 1호인 남대문시장은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다. 정씨는 "외국인들이 다시 오면 남대문시장 상인들이 금방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며 "그것만 믿고 다들 버텨보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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