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업계 또 임단협 고비…금속노조 9만9000원 인상 요구

기아 노조, 작년 교섭 타결 세 달 만에 올해 교섭 체제 돌입

르노삼성은 2020년도 교섭 늦어질 경우 2년치 얹어서 교섭할 판

매년 반복되는 소모적 줄다리기…"교섭 주기 늘리는 방안 고민해야"

현대자동차 노사 임단협 교섭 장면(자료사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매년 자동차 업계의 고충을 가중시켜온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시즌이 또 다시 다가왔다. 기아와 한국GM은 지난해 임단협을 마무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르노삼성자동차의 경우 아직 타결이 요원한 상태에서 올해분 교섭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노동계는 산별노조나 각 기업별 지부 차원에서 올해 임단협 교섭 전략을 수립하고 사측과의 교섭에 대비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기아 노조)는 이날 59년차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2021년 임금협상(임협)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

기아 노조를 시작으로 다른 완성차 업체 노조들도 조만간 임단협이나 임협 대비 체제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의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혼란으로 교섭 착수 시점이 전반적으로 늦어졌지만, 통상 5월 현대차를 시작으로 완성차 업체들이 순차적으로 교섭 테이블을 마련해 왔다.

올해는 지난해 교섭 경험이 있었던 만큼 예년과 같은 시점에 교섭이 개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달 남짓 남은 현 시점부터 요구안 마련이 필요하다.

◆금속노조, 기본급 9만9000원 인상·산재사망 유가족 채용 등 공동 요구안 확정

앞서 현대자동차와 기아, 한국GM 노조의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는 지난 2일 54차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올해 공동 요구안을 기본급 9만9000원 인상으로 확정했다.

금속노조의 공동 요구안은 산하 지부와 지회가 교섭권을 갖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 완성차 3사 뿐 아니라 현대중공업 등 조선업체나 중견·중소기업들까지 업종이나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동일한 요구안을 사측에 제시한다.

지난해의 경우 12만304원, 2019년은 12만3526원이 금속노조 공동 요구안이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기업 실적 악화 등을 감안해 액수를 낮췄지만 여전히 기업들에게는 부담이 큰 금액이다.

금속노조는 이 외에도 ▲교섭주기·교섭시기 통일 ▲조합간부 유급 교육시간 확보 ▲산재사망시 유가족 우선, 특별 채용 등을 필수요구안으로 확정했다.

지난해 교섭 과정에서 발생한 노사 갈등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짧은 냉각기를 거쳐 다시 교섭에 나서야 하는 상황은 완성차 업체들에겐 큰 고역이다.

기아와 한국GM은 지난해 말 가까스로 임단협 타결에 이르렀고, 르노삼성은 지난해 교섭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올해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교섭이 계속해서 늦춰진다면 올해 교섭분까지 2년치 교섭을 동시에 진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2019년도 교섭을 지난해까지 마무리짓지 못한 채 2020년도 교섭과 묶어서 2년치 진행한 바 있으며, 그마저도 아직까지 타결에 이르지 못해 2021년도 교섭까지 얹어 3년치 교섭을 진행할 상황까지 놓였다.

◆전기차 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임금인상 등 쟁점 산적

노사간 접점을 찾기 힘든 쟁점 사안도 산적해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전용 전기차 생산에 나서면서 향후 전기차 전환에 따른 인력투입 감소가 고용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사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미 현대차는 아이오닉 5 출시를 앞두고 생산라인 투입 인원 수(맨아워)를 놓고 노사가 줄다리기를 하느라 양산이 늦어지기도 했다.

한국GM 역시 내수와 수출이 동반 감소를 보이고 일부 차종이 단종되면서 고용불안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흑자 전환에 실패한 가운데 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 측의 비용절감 압박이 심해지면서 임금 인상 여력도 없는 형편이다.

금속노조 산하가 아닌 기업노조가 교섭권을 가진 르노삼성과 쌍용자동차도 올해 교섭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르노삼성의 경우 극심한 경영난으로 전사적 차원의 비용절감 계획 ‘서바이벌 플랜’에 나선 상태다. 전체 임원의 40%가 짐을 쌌고, 남은 임원들도 임금을 20% 삭감했다. 일반 직원들도 희망퇴직을 통해 400~500명이 구조조정됐다.

모기업인 르노 그룹이 수익성 중심의 경영 전략 ‘르놀루션(Renaulution)’을 발표하고 르노삼성 부산공장을 ‘수익성을 더욱 강화해야 할 사업장’으로 지목하며 비용절감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임금인상 여력이 없어 교섭 타결을 마무리 짓지 못한 가운데 올해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쌍용차 노조는 대표노조인 기업노조 집행부가 그동안 ‘고용안정’에 중점을 두고 회사의 생존을 위한 사측의 노력에 힘을 보태는 경향을 보여 왔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쌍용차 회생의 키를 쥔 산업은행이 단체협약 주기를 3년 단위로 연장할 것을 자금지원의 전제조건 중 하나로 제시한 가운데, 노조가 이를 수용할지 여부에 따라 노사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각종 쟁점사안들로 인해 올해 임단협 교섭은 지난해보다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게 완성차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자동차 패러다임 급변 속 소모적 줄다리기 멈춰야 노사 모두 생존"

재계에서는 노사가 매년 한 해의 절반 이상의 기간을 소모적인 힘겨루기로 보내는 비효율적인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노동법상 임협은 1년 주기, 단협은 2년 주기로 교섭하게 돼 있지만 통상 노조 측에서 임협 과정에서도 단협성 요구안을 내놓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매년 임단협을 치르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된다.

올해는 임단협이 예정된 현대차를 제외한 나머지 4사는 임협만 타결하면 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단협까지 놓고 줄다리기를 벌여야 할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한국GM은 노조에 단협이 포함된 해에만 교섭을 진행하는 2년 주기 교섭을 제안했으나 노조의 반대로 무산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하는 상황에서 매년 노사가 임단협 교섭으로 연말이나 이듬해 초까지 줄다리기를 벌이고 몇 달 지나 또 교섭을 시작하는 소모적 행위가 반복돼서는 생존할 수 없다”면서 “노조도 고용안정의 측면에서 교섭 주기를 늘리는 방안에 대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